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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10일(金)
“바둑엔 성별차 없고 실력차만… 女帝 아닌 皇帝 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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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 9단이 지난 1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에서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흑 돌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김호웅 기자
■ ‘바둑 여제’ 프로9단 최 정

아홉살때 유창혁 9단 제자
2010년 14세 나이로 입단
여자랭킹 1위 80개월째 질주
비공식대회서 中 커제 꺾기도

바둑의 수에는 끝이 없듯
즐거운 도전에도 끝 없을 것


최정(24) 9단은 여자바둑계에서 ‘천하무적’이다. 별명은 ‘바둑여제’. 최 9단은 국내 여자기사 최다 타이틀(17회) 보유자이고, 2013년 12월부터 80개월 연속 여자랭킹 1위를 지키고 있다. 국내 여자기사를 상대로 무려 53연승 무패 행진을 펼쳤다. 최 9단은 프로에 입문한 뒤 여자기사를 상대로 344승 73패를 거둬 승률은 무려 82.5%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내 여자기사를 상대로 212승 39패, 승률 84.5%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이유. 지난 1일 한국기원에서 만난 최 9단은 “바둑에서 성별의 차이는 없고 실력의 차이는 있다고 믿기에 여제를 넘어 황제라는 칭호를 얻고 싶다”면서 “남녀 통합 메이저대회에서 꼭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다. 최 9단은 “앞으로도 제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면서 “슬기롭게, 즐기면서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1996년생인 최 9단은 14세이던 2010년 5월 입단했다. 입단 첫해 성적은 1승 6패. 어린 나이에 처음 경험하는 슬럼프였기에 주눅이 들 법도 하건만, 최 9단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활짝 날개를 펼쳤다. 2011년 제5기 지지옥션배에서 8연승을 달렸다. 지지옥션배는 여류기사 12명과 45세 이상 남자기사 12명이 팀을 이룬 반상의 성 대결. 지지옥션배는 승리하면 계속 바둑을 두고, 패하면 탈락하는 연승 방식으로 진행된다. 당시 입단 2년 차였던 ‘햇병아리’ 최 9단은 쟁쟁한 아저씨 선배들을 연달아 쓰러뜨렸다. 그때 ‘소녀장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최 9단은 “지지옥션배를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큰 자신감을 얻었고 그때 바둑 팬들께 내 이름이 널리 알려진 듯하다”면서 “입단 첫해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을 안겨드렸는데, 이듬해엔 마음이 놓였다”고 설명했다. 최 9단은 2012년 1월 여류명인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최 9단은 남자기사들 사이에서도 ‘기피대상’으로 떠올랐다. 최 9단은 남자기사와 맞붙은 대국에서도 166승 160패를 올려 승률은 5할(0.509)이 넘는다. 최 9단은 지난해 12월 여자기사로는 사상 처음으로 남녀를 망라한 전체 랭킹에서 20위권에 진입했다. 지난달 최 9단의 랭킹은 16위였다. 최 9단은 특히 중국의 구쯔하오 9단과 스웨 9단, 그리고 강동윤 9단 등 세계대회 타이틀을 획득한 남자 강호들과의 대국에서 승리를 거둬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 9단은 지난해 중국랭킹 1위인 커제 9단과의 비공식 인터넷대국에서 승리했다. 커제 9단은 “최정 기사와 나는 클래스 차이가 없다”면서 “최정 기사는 이미 강자”라고 극찬했다.

국제대회 대진 추첨에서 최 9단을 피하게 된 남자기사들이 기뻐하는 건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최 9단은 지난달 13일 열린 조훈현 9단과의 특별 이벤트대국에서도 승리했다. 조 9단은 국내 통산 최다 타이틀(160회), 세계 통산 최다승(1949승) 기록을 보유한 한국 바둑의 전설. 최 9단은 조 9단을 상대로 17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당시 빨개진 얼굴로 헛웃음을 짓는 등 조 9단이 진땀을 빼는 장면은 고스란히 TV 중계에 잡혔다. 최 9단은 “조훈현 국수께서 너무 오랜만에 바둑을 두셨기에 내가 이길 수 있었다”면서 “워낙 유명하신 분이셔서 어떤 스타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9단은 “최근 몇 년간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바둑이 엄청 바뀌었고 바뀐 스타일의 바둑으로 조 국수를 공략했다”면서 “조 국수께서 오랜만에 돌아와 첫 대국을 저와 두고 싶다고 하셔서 굉장히 감사했고, 제겐 의미가 큰 대국이었다”고 덧붙였다.

최 9단은 7세 되던 해 바둑을 시작했다. 그의 부친은 평소 바둑을 즐겼고, 딸에게 권유했다. 최 9단의 아버지는 인터넷 바둑 3단의 아마 고수다. 최 9단은 “아버지께서 처음엔 어머니를 가르치시려고 했지만, 어머니께서 ‘바둑을 못하겠다’고 하셔서 제가 대신 배웠다”면서 “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모님께선 제가 처음엔 바둑을 무척 싫어했다고 기억하신다”고 말했다. 최 9단은 “제가 바둑이 재미없다고 투덜댔는데, 아버지께서 ‘이왕 배운 거 6개월은 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셔서 할 수 없이 더 배웠다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었다”고 덧붙였다.

최 9단은 2005년 유창혁 9단(전 한국기원 사무총장)의 제자가 되면서 급성장했다. ‘세계 최강의 공격수’로 불린 유 9단은 메이저 세계대회 6회 우승을 비롯해 통산 26번 정상에 오른 거물. 최 9단의 성향은 스승을 닮았다. 타고난 공격수였던 최 9단은 유 9단처럼 수읽기에 강하고 전투적이다. 그래서 ‘여자 유창혁’으로도 불렸다. 최 9단은 “유 사범의 제자가 되기 전엔 끊을 때 있으면 끊고, 싸울 때 있으면 싸우는 무식한 스타일이었다”면서 “하지만 유 사범의 지도로 실력이 늘면서 약점을 메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9단은 타고난 승부사다. 지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성격. 그런데 프로 11년 차인 올해는 다르다. 패배를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최 9단은 “사실 바둑에서 지는 건 일상이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힘들어진다”면서 “요즘 들어 ‘승리에 너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비우려 한다”고 설명했다. 최 9단은 “이기고 지면서 일희일비했다”면서 “더 넓게, 더 멀리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최 9단의 롤모델은 중국의 전설적인 여기사 루이나이웨이 9단이다. 1988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9단이 됐고, 중국을 떠나 한때 한국에서 활동했다. 한국 무대에선 2000년 제43기 국수전에서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을 연파하고 정상에 올랐다. 전성기를 맞이한 최 9단이 전성기 시절 루이나이웨이 9단에 뒤지지 않는다는 게 바둑계의 평가다. 하지만 최 9단은 손사래를 친다. 최 9단은 “루이나이웨이 9단은 저보다 훨씬 대단하신 분이고 그분을 닮고 싶다”면서 “어릴 때 그분이 우승하시는 걸 보곤 ‘참, 멋있다. 나도 꼭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최 9단은 바둑의 세계로 이끈 아버지와 친구처럼 지낸다. 물론 지금은 최 9단이 훨씬 더 강하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SOS 신호를 받기도 한다. 최 9단은 “가끔 아버지가 인터넷 바둑을 두시다가 한 수만 도와달라고 부탁하신다”면서 “TV를 봐야 하는데 아버지가 요청하면 할 수 없이 달려간다”고 말했다. 최 9단은 “그런데 한 수를 가르쳐드리면, 넌지시 다음 수도 물어보신다”면서 “그러면 기량이 늘지 않기에, ‘아빠가 직접 두시라’고 훈수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오늘날 최 9단이 스타로 자리 잡기까지는 가족의 힘이 컸다. 최 9단은 “가족은 존재 자체로 든든하고, 가족의 헌신과 뒷바라지가 없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특히 아버지께서 제게 많은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최 9단은 “아버지께서 늘 ‘큰 꿈을 가져라’ ‘꿈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라고 강조하셨다”면서 “그래서 지금도 꿈을 키우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 9단은 “바둑이 너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최 9단은 “바둑은 처음 배우는 게 어렵지만, 배우고 나면 바둑돌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면서 “바둑은 나이 제한이 없고, 작은 체격도 상관없기에 누구와도 겨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9단은 “수를 읽는 재미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바둑의 변화에 끝이 없듯이 즐거운 제 도전에도 끝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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