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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10문10답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14일(火)
조직 사유화가 ‘만악의 근원’… 선수 선발권·위계질서 앞세워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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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가운데) 미래통합당 의원이 고 최숙현 선수의 동료들과 함께 지난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주시청팀 가혹행위 추가 피해를 폭로하고 있다. 뉴시스

■ 스포츠계 폭력, 끊이지 않는 이유는

10대부터 합숙으로 공동생활
훈련·경기력 제고 순기능 불구
24시간 선수감시 수단화 폐단

‘저항 = 운동 포기’분위기 탓에
인권유린 묵인하거나 동조
내부 문제 외부 발설 차단

처벌만큼 예방 시스템도 중요
지속 면담 등 모니터링 절실



맞고 또 맞으면서도 버텨왔다… 운동을 포기할 수 없기에…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2세 꽃다운 나이, 미래의 한국 여자철인3종 간판을 꿈꿨지만 그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하늘로 떠났다.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잔인한 폭행, 폭언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기에 그의 마음은 너무 여렸다.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의 손을 잡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렇게 그의 청춘은 빛을 잃었다.

그가 저세상으로 가기 직전, 어머니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였다.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에야 경주시청팀의 폭력, 폭언, 횡령 등에 대한 적극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경주시청팀에서 팀닥터로 불렸던 안주현 씨가 구속됐다. 안 씨와 김규봉 감독, 주장 장윤정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조금 더 서둘렀다면, 안타까운 일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스포츠계 폭력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매우 뿌리가 깊은 관행이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 몸 관리를 위해서, 기량 향상을 위해서라는 등 때리는 핑계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폭력에 시달리면서 운동선수의 삶은 멍들어간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폭력, 폭언이 자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1. 조직 사유화

폭력을 포함한 스포츠계의 비정상적인 관행은 조직 사유화에서 시작된다. 팀을 내 것으로 만들곤 좌지우지한다. 일부 몰지각한 경기단체장, 감독 등은 동업자 또는 심복을 코치나 주장 자리에 앉혀 경기단체, 팀을 장악한다. 최숙현 선수 사망으로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경주시청 철인3종팀 역시 사유화됐다. 김규봉 감독과 주장 장윤정 선수, 그리고 팀닥터로 불린 안주현 씨는 경주시청에서 운영비를 받아 쓰는 팀을 쥐락펴락했다. 셋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김 감독은 기량이 뛰어난 장 선수 덕분에 좋은 팀 성적을 유지할 수 있고, 장 선수는 김 감독의 특별우대로 여왕처럼 군림했다. 의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 자격증이 없는 안 씨는 완력을 앞세워 선수들을 벌벌 떨게 했고 감독, 주장, 그리고 자신에게 복종하도록 했다. 병원에서 청소를 하고 물리치료사 보조로 일했던 안 씨는 그 대가로 팀닥터로 불리면서 안정적인 직장을 확보했다.


2. 폐쇄적인 운영

사유화된 스포츠 조직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성이다. 피해자인 선수들을 외부와 단절시켜야 나만의 왕국, 그들만의 왕국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폭력, 폭언, 횡령 등을 자행하기 위해서라도 외부와는 담을 쌓고 지내야 한다. 기밀이 새어나갈 틈을 꽁꽁 막으면, 완전범죄를 완성할 수 있다는 헛된 믿음이 있기에 폐쇄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안 씨가 선수를 폭행하면서 “아빠한테 문자 하고 그런 건 별 이유 없는 거지?”라고 물은 것도 마찬가지. 이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부모 등 외부에 알리지 말라는 엄포이기도 하다. “그 집단(경주시청팀)이 폐쇄적인 집단이거든요”라는 동료 선수들의 증언에서 선수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조직 사유화, 그리고 폐쇄적 운영을 막기 위해선 상부의 지속적이고 면밀한 관리가 요구된다.


3. 폭력, 그리고 횡령

스포츠계 폭력의 특징 중 하나는 횡령과 함께 발생한다는 점이다. 폭력으로 선수들을 지배하는 조직에선 횡령도 자행된다. 내 마음대로, 우리 마음대로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시청팀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선수들을 갈취하는 건 가장 악질적인 범죄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경주시청팀 선수들, 그 가족은 전지훈련을 떠날 때 항공료 등의 명목으로 돈을 입금했다. 하지만 항공료 등은 경주시청에서 지원했다. 최 선수와 부모는 주장인, 그러니까 같은 선수인 장윤정의 계좌로 경비를 입금했다. 게다가 안 씨는 선수들에게 치료비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으면서도 선수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장 선수를 제외하고 선수 대부분은 연봉 3000만 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연봉 중 상당액을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김 감독, 장 선수, 그리고 안 씨 사이의 금전거래도 철저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4. 선수는 소유물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는 선수를 하나의 인격체, 제자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한다.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할 수 있는 수단으로 여긴다. 그래서 마음대로 쥐고, 흔들며, 때린다. 특히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강압적인 훈련방법, 즉 폭행과 폭언을 동원한다. 선수는 지도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지도자가 선수를 기용하고 팀을 운영하며 또 선수를 선발할 권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눈 밖에 나는 순간부터 지옥이 찾아온다. 최 선수처럼. 저항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대개 선수층이 얇고, 그래서 이 바닥은 무척 좁다. 대한철인3종협회에 등록된 엘리트실업팀은 12개고 선수는 남녀를 합해 60여 명이다. 여기서 폭력, 폭언, 성추행, 횡령 등 부당함에 저항하게 되면 금세 소문이 퍼진다. 즉, 선수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 없다. 지도자끼리는 선후배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선수가 아닌 지도자 편을 드는 이유다.


▲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어머니에게 보낸 메시지. 최숙현 부모 제공
5. 위계질서라는 명분

이번 경주시청팀을 포함해 국내 스포츠계에선 폭력, 횡령 등의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국내에선 중학교부터 엘리트스포츠로 분류한다. 그리고 엘리트스포츠에 포함되는 순간, 엄격한 위계질서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개인종목이든 팀종목이든 대부분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조직력을 살린다면서 위계질서를 강조한다. 하지만 핑계일 뿐이다. 팀을 통제하는 데 위계질서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지도자, 즉 선생님의 말은 물론 선배의 말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제자, 후배의 복종이 미화되고 지도자는 물론 선배는 훈육이라면서 폭력을 정당화한다. 최 선수를 폭행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던 김모 선수가 잘못을 인정하면서 “선배의 잘못을 들추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한 건 위계질서가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6. 삐뚤어진 합숙 문화

합숙은 훈련량을 늘리고, 조직력을 강화한다는 순기능이 있다. 그래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도 합숙훈련을 진행한다. 하지만 역기능도 있다. 한곳에 몰아넣으면 통제하기가 쉽다. 24시간 선수들을 감시할 수 있다. 폭행, 폭언, 성추행 등을 은폐하는 데도 합숙이 효과적이다. 그런데 10대 사춘기 시절부터, 혈기왕성한 20대까지 한곳에 있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엉뚱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스포츠 분야 폭력·성폭력 판례 분석 결과’에 따르면 1997∼2019년에 발생한 폭력 43건 가운데 8건(18.6%), 성폭력 136건 가운데 49건(36.0%)이 합숙 과정에서 발생했다. 합숙, 폐쇄적인 운영이 만연하기에 밝혀지지 않은 폭력, 성폭력은 더욱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경주시청팀 역시 합숙훈련을 이어왔으며 최 선수와 동료들은 갇힌 상태에서 전횡에 시달렸다.


7. 방관, 제2의 고통

최 선수는 살기 위해, 악몽을 잊기 위해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은 없었다. 스포츠인권센터 조사관은 폭행당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추가 자료를 모아달라고 최 선수에게 요구했다. 조사관은 또한 최 선수가 가해자들에게 입금한 내용 등 증거자료를 요청했고, 최 선수는 “그런 게 없다”고 답하며 낙담했다. 최 선수의 동료들은 지난 6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주경찰서 참고인 조사 때 담당 수사관이 ‘최 선수가 신고한 내용과 관련되지 않은 진술은 더 보탤 수 없다’ ‘(가해자들에게) 20만∼30만 원의 벌금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체육회도, 경찰도 적극적으로 선수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8. 한계를 지닌 스포츠윤리센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일 오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체육계와 함께 실질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달라”고 지시하자 이날 오후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검찰, 경찰 등 관계기관 회의가 열렸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회의 직후 “오는 8월 출범하는 스포츠윤리센터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뢰를 얻기는 힘들었다. 새로울 게 없기 때문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스포츠인권센터의 업무를 통합한 기관이다. 기존 기관 2곳을 통합했을 뿐이다. 그리고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은 체육계 인권침해에 대한 ‘신고 접수와 조사’다. 강제로 피신고자의 출석을 요구할 수 없고,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벌써부터 ‘신고해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9. 최숙현법, 언제쯤 나올까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이용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10일 최 선수의 부친인 최영희 씨와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최숙현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체육계 성폭력 및 폭력 전담기관인 스포츠윤리센터가 문을 열더라도 피해자 보호와 권한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숙현법은 스포츠윤리센터에 직권조사권한을 부여하고, 신고자를 빠르고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보복 등 2차 피해를 방지하고, 가해자를 엄벌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의원 외에도 최숙현법을 발의한 의원들이 있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국회에서, 정치권에서 스포츠계 폭력, 성폭력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긍정적이다. 하지만 정쟁 등으로 인해 최숙현법 탄생이 지연된다면 정치권 역시 최 선수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화살을 받을 수밖에 없다.


10. 상시 감시 등 예방책이 시급

법으로 운동선수들을 보호하고 적극적으로 조사해 가해자를 엄벌하더라도 체육계의 뿌리 깊은 폭력, 성폭력, 횡령 등의 범죄를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신고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폐쇄적으로 팀이 운영되기에 신고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신고된 사례보다 신고되지 않은 사례가 훨씬 많다. 신고가 있든 없든 폭력, 성폭력, 횡령 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관계기관들이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실질적으로 운동선수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벌백계, 무관용 원칙 등 강력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예방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다. 일이 터진 뒤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등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라, 평소 꾸준하게 팀의 지출을 모니터링하고, 선수들을 면담한다면 그 뿌리를 도려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정세영·허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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