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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17일(金)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준 적 있나”…우리는 이 노래로 ‘천국’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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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마천국’

“넌 참 기억력도 좋다.” 이 말은 칭찬일까. 기억력이 좋으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기억난다. 그래서 신조어를 생각해냈다. 추억력(追憶力). 추억은 기억이 편집된 것이므로 미련한 과거보단 아련한 과거를 되살리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정신건강에도 좋을 듯하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 6년 개근(대단하다!) 상품으로 붉은색 표지의 명언집을 받았다. 나의 ‘추억력’으로 첫 페이지를 복원해본다. ‘세상의 드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말없이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움에서 이기는 영웅이 돼라’. 롱펠로(1807∼1882)의 ‘인생찬가’(A Psalm of Life)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인생의 목표가 무덤은 아니며 인생은 한순간이지만 예술은 길다는 조언도 나온다. 그가 이름처럼 오랜 친구(long fellow)가 된 건 ‘화살과 노래’(The Arrow and The Song)의 영향도 있다. ‘내가 쏜 화살은 날아가 나무에 박혔지만 내가 부른 노래는 친구의 가슴에 남아있더라’는 내용의 시다. 명색이 노래채집가라면 밑줄 그을 만하지 않은가.

7월 초 로마에서 한 노인이 죽었다. 어디 이탈리아의 노인만 죽었겠는가. 또 비단 노인만 죽었겠는가. 그런데 세상의 미디어는 한 노인의 죽음을 콕 집어서 만방에 알렸다. 나도 부고를 접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 항상 내 곁에 있는, 혹은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친구에게 이를 알린다.” 놀랍게도 이건 망자의 아내, 혹은 지인이 쓴 글이 아니다. 죽음에 임박해 본인이 직접 쓴 거다. 이 마지막 편지가 그의 삶을, 아니 죽음을 예술로 완성시켰다. 살면서 수없이 들었던 그 말,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에는 인생을 짧지 않게 만드는 비결이 드러나 있다. 인생을 예술로 만들어버리면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고 비공개 장례를 치르려는 단 하나의 이유는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과 이별하는 겸손한 방식을 그는 보여줬다. 세상이 냇물이라면 세월은 강물이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세월은 그를 품었다. 그는 눈을 감았지만 우리는 눈을 떴다.

죽는다는 건 이승의 여행을 마친 것이다. 죽을 때 여권을 챙길 필요가 있겠는가. 이력서도, 재산세 납입증명서도 필요 없다. 그러나 검색대를 지날 때 이런 질문은 받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살면서 누구를 행복하게 해준 기억이 있나요?” 단지 괴롭혔던 기억만 무성하다면 무사히 천국의 심사대를 통과하긴 어려울 것이다.

음악동네 옆에는 영화마을이 있다. 그쪽 사람들은 다른 말을 할 것이다. 자기네 도시 안에 음악동네가 있다고. 어쨌든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는 두 곳의 접경을 평생 떠나지 않았다. 오프라인 장례식장엔 가족과 친지 등 40여 명만 참석했지만 비대면으로 문상 온 사람들의 면면은 상상을 불허한다. 부고를 알리는 자료화면이 이처럼 풍성한 예는 앞으로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총잡이(황야의 무법자), 성직자(미션), 전과자(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살인자(천국의 나날들), 경찰(언터처블), 전직 미식축구 선수(러브 어페어), 경매사(베스트 오퍼), 보석전문 강도(시실리안), 현상금 사냥꾼(헤이트풀8), 연주자(피아니스트의 전설). 그래도 눈길이 머무는 조문객은 두 사람이다. ‘시네마천국’의 토토와 알프레도. 영화는 2시간 남짓에 끝나도 영사기는 지금도 돌아간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여행스케치 ‘별이 진다네’ 중). 별이 진 걸까. 아니다. 별이 진 게 아니라 별이 된 거다.

살아서 많은 돈을 남기면 죽은 후에 다툼이 생긴다. 좋은 음악을 많이 남기면 소란스러운 세상이 천국 쪽에 가까워진다. 지옥엔 말이 많지만 천국엔 음악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포스터에 배우보다 더 큰 글씨로 이름이 적혔던 그 사람. ‘기억 속의 멜로디 나를 깨우고 가/ 너의 미소도 못 잊을 이름도’(오태호 ‘기억 속의 멜로디’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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