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내 편’은 성범죄도 덮는 뒤집힌 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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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옳고 그른 것도 ‘편’이 기준
4년 지속된 성추행 혐의조차
가해자를 되레 美化하기까지

文대통령 “오랜 인연” 지침처럼
피해 조작론 들먹여 2차 가해도
더 늦기 전에 빨리 바로잡아야

문재인 정권의 ‘거꾸로 뒤집힌 정의(正義)’가 점입가경이다. 위선(僞善)이 지나치다 못해,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기준조차 ‘내 편’ 여부로 삼는 행태도 공공연하다. ‘내 편’이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으며 피해자에게 평생 씻기 어려울 상처를 준 권력형 성(性)범죄까지 덮으려고 시도한다.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며 성추행을 자행해온 혐의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태에 대한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언행이 대표적이다. 박 전 시장 비서로 일하며 4년 동안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해 왔다는 서울시 여직원에 대한 2차 가해(加害)에 앞장서다시피 한다.

청와대가 박 전 시장이 지난 8일 피소(被訴)된 당일부터 사실을 알고도 “드릴 말씀이 없다”고 해오다, 13일 영결식 후에야 출입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는 이랬다. ‘피해 호소인의 고통과 두려움을 헤아려, 피해 호소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를 중단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박 전 시장 혐의는 언급 않고, 상궤(常軌)를 벗어난 ‘피해 호소인’ 호칭을 동원한 것은 ‘피해는 일방적 주장일 뿐,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취지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행정 공백이 발생한) 이런 상황에 대해 통절한 사과”를 한다면서 발표한 입장도 그 연장선이다. “피해 호소인이 겪는 고통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그러니 여권에선 너도나도 ‘피해자’ 아닌 ‘피해 호소인’이나 ‘고소인’으로 부른다. 되레 박 전 시장을 미화(美化)하고, 피해 여성은 비방·매도하기까지 한다. 반(反)사회적이다. 민주당 명의로 서울 곳곳에 ‘님의 뜻 기억하겠습니다’ 현수막도 내걸었다. 민주당 대변인은 “지금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전혀 다른 얘기도 나온다”고 했다. 피해 여성의 잘못일 수 있다는 의미다.

피해 여성이 성추행당했다는 기간에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었던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고인은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침실’ 등 언어의 상징조작에 의한 오해 가능성에 대처하는 것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몫”이라며, 낯뜨거울 ‘박비어천가’를 부르고, 황당한 피해 조작론까지 들먹였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피해를 호소하는 분의 피해와 박 시장이 가해자라고 하는 점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사자(死者) 명예훼손”이라고 했다. 친문(親文) 성향의 진혜원 대구지검 부부장검사는 페이스북에서 박 전 시장을 ‘우리의 소중한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또 다른 남성과 함께 찍은 사진에 덧붙여 이런 글도 올렸다. ‘냅다 달려가서 덥석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성인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했다. 페미니스트인 제가 추행했다고 말했으니 추행이다. 권력형 다중 성범죄다.’ 피해 여성뿐 아니라 그를 대리해 기자회견을 연 변호사와 여성단체 간부들도 싸잡아 조롱한 셈이다. 그런 행태들은 모두 문 대통령이 박 전 시장 빈소에 조화를 보내고, 노영민 비서실장을 통해 조문하면서 “박 시장은 사법연수원 시절부터 참 오랜 인연을 쌓아온 분인데 너무 충격적”이라는 말을 전하게 한 일이 지침처럼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 편’ 혐의엔 대응이 전혀 달랐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 때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의혹에 대해 지난해 3월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공소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는 반드시 엄정한 사법처리를 해 달라”고 했다. 박 전 시장의 서울특별시장(葬)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57만 명을 넘었어도 강행한 사실을 두고, 피해 여성은 ‘피해자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50만 명이 넘는 국민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권력형 성추행을 당할 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 이런 절규도 했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힘들다고 울부짖고 싶었다. 법치 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

문 대통령부터 ‘내 편 무죄, 네 편 유죄’ 식으로 ‘뒤집힌 정의의 실상’을 더 늦기 전에 깨닫고, 한시바삐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잖으면, 누군가가 서울시청 정문에 청테이프로 크게 붙인 ‘더러워’ ‘토 나와’ 하는 글에 공감하는 국민이 더 많아질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