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역사… 그 위대한 순간들>2000년 여름… 우즈, US오픈·디오픈·PGA챔피언십 ‘석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2000년 PGA챔피언십 플레이오프 16번 홀에서 4m 버디 퍼트 후 손가락으로 공을 가리키며 걸어가고 있다. PGA투어 홈페이지

PGA챔피언십서 메이와 대결
3홀 플레이오프 접전 끝 우승
한해 ‘메이저 3연승’ 금자탑
1953년 호건 이어 두번째 기록

발할라(Valhalla)는 북유럽 게르만 민족의 신화에 나오는 전사들의 궁전을 뜻한다.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발할라골프장에서 밀레니엄의 첫해인 2000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챔피언십이 열렸다. 21세기 벽두부터 기념비적인 대결이 펼쳐졌다. 8월 중순의 따가운 늦더위에 결투를 벌이는 두 전사는 타이거 우즈와 보브 메이(이상 미국)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인세 골프역사칼럼니스트

우즈는 4일 내내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았다. 하지만 메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선수가 바짝 뒤를 쫓아왔다. 상금 랭킹 48위였던 메이는 단 한 번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없었다. 12언더파인 메이와 13언더파인 우즈는 4라운드에서 챔피언 조로 묶였다. 첫 홀에서 모두 파. 우즈는 긴장한 듯 2번 홀에서 보기를 기록했고 메이는 버디를 낚아 1타 차로 역전했다. 6번 홀까지 우즈는 보기 1개를 더해 메이가 2타 앞섰다. 다행히 우즈가 7, 8번 홀에서 연속 버디를 기록해 13언더파로 동타를 이룬 채 전반 9홀을 마쳤다. 후반에도 메이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10번 홀은 나란히 버디였다. 메이는 11, 12번 홀까지 3홀 연속 버디를 낚았다. 이젠 우즈가 추격자 신세가 됐다. 2개 홀을 남겨 놓고 메이는 17언더파로 1타 앞섰다. 17번 홀(파4)에서 우즈는 승부를 걸어야 했다. 97야드를 남기고 친 2번째 샷을 홀 1m에 붙여 버디를 잡아 다시 동타.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메이가 3번째로 샷한 공이 프린지에 붙어 있었다. 홀까지는 다소 먼 3m 거리. 버디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우즈는 핀에서 1m 남짓이었기에 우세했다. 메이는 체념한 듯 무표정하게 퍼트 자세를 취하더니 이내 공을 밀었는데, 좌우로 흔들리듯 굴러가더니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함성이 터졌고, 우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즈가 1.2m 버디 퍼트를 예상대로 넣으면서 동타가 됐고 3홀 플레이오프를 벌여야 했다.

둘은 다시 16번 홀(파4)로 향했다. 메이의 드라이버 샷이 러프에 빠진 반면 우즈는 2번 아이언으로 페어웨이에 안착시켰고 세컨드샷을 홀 4m에 붙여 극적인 버디를 만들었다. 긴장한 메이는 러프와 벙커를 오갔지만 파세이브. 17번 홀은 둘 다 파. 우즈가 1타 앞선 채 플레이오프 마지막 3번째 홀인 18번 홀로 갔다.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드라이브샷이 흔들렸다. 우즈의 공은 카트도로에 맞고 왼쪽으로, 메이의 공은 깊은 러프에 빠졌다. 세컨드샷 역시 모두 페어웨이하곤 거리가 멀었다. 우즈는 142m를 남기고 친 3번째 샷마저 그린 앞 벙커에 빠뜨린다. 메이는 3온했지만 홀과의 거리는 8m나 돼 버디를 장담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우즈는 벙커 샷을 홀 30㎝에 붙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단 그린 아래쪽에서 메이의 버디 퍼트. 버디가 되면 플레이오프마저 동점이 되는 상황. 메이의 공은 힘차게 홀을 향했다. 하지만 공은 홀 앞에서 멈췄고 메이는 고개를 떨궜다. 우즈의 30㎝ 파퍼트가 ‘위닝 샷’이 됐다.

우즈는 1953년 벤 호건(미국) 이래 6월의 US오픈, 7월의 브리티시오픈(디오픈), 그리고 8월의 PGA챔피언십 등 한 해 3개의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2번째 선수가 됐다. 우즈는 이날 승리를 디딤돌 삼아 이듬해 4월 마스터스까지 제패하며 ‘타이거 슬램’을 달성했다.

골프역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