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빅토르 위고 프랑스의 정신, 40×30㎝, 종이에 혼합재료, 2019.
■ (40) 佛 대문호 빅토르 위고
수많은 여인들과 염문 뿌리고
친정부·반정부 오락가락 행보
머나먼 건지 섬으로 추방된 뒤
16년에 걸쳐 ‘레미제라블’ 완성
약자에 대한 따뜻함 잃지 않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았던 인생
문호(文豪)라고 하면 우선 몇 사람이 생각난다.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발자크 그리고 빅토르 위고. 그런데 문학의 작위 같은 ‘문호’라는 수식어와 함께 위고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이라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붙는다. 프랑스인들은 위고를 두고 위대한 시인, 위대한 극작가, 위대한 소설가, 위대한 혁명가, 위대한 인생 그리고 위대한 프랑스의 자산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위대한, 위고의 아우라는 세기를 두고 계속되는데 그래서일까, 파리는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정신적 영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파리성 성주 위고의 아우라를 나는 로댕 기념관의 위고 초상 조각에서도 만났다. 오버코트 속에 얼굴을 숨겨버린 발자크 기념 조각과 함께 로댕의 손끝에서 빚어져 나온 위고의 얼굴은 차디찬 돌 속에서도 뜨거운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추방돼 살았던 건지섬은 오늘날 위고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렇다. 위고만큼 천둥과 번개의 삶을 산 문인이 또 있었던가. 귀족계급부터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그만큼 스펙트럼 넓게 팬덤을 지녔던 사람이 또 있었던가. 그처럼 삶 자체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고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작가가 있었던가. 그리고 위고만큼 수많은 조각가, 화가, 사진가의 예술작품 속 피사체와 오브제가 됐던 문인이 또 있었던가. 위고처럼 머나먼 섬으로 추방돼 갔던 문인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 바람 부는 섬에서 ‘레미제라블’ 같은 불세출의 대작을 건져 올린 작가가 또 있었던가.
그런데 그 위대한 위고를 전혀 다른 쪽에서 조명해보면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위대하기만 한 것일까. 우선 그는 정치적 관점이 상황에 따라 크게 출렁거렸고 갈지자를 걸어갔던 정치인이었다.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그리고 태연하게 그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친정부 쪽이었다가 반정부 인사로 바뀌는가 하면 왕당파 쪽이었다가 파리코뮌의 지지자로 몰리기도 했다. 그래서 왕왕 대중의 열광과 비난 사이에서 파도를 탔다.
여인과의 염문사 또한 현란하고 다채롭다. 본처 아델 푸셰와 자녀를 넷이나 두었지만 서른 살 갓 넘어 만난 여배우 쥘리에트 드루에와 기나긴 불륜을 이어갔고 그 와중에도 수없이 많은 다른 여인과 염문을 뿌렸다. 국외로 추방돼 어느 음악가의 이름을 빌려 벨기에로 잠행했을 때의 동행자 역시 쥘리에트였다. 화려할 때가 아닌 고난의 때에 만난 어린 그녀는 눈부신 젊음과 미모를 그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면서 ‘레미제라블’의 초고를 정리하는 등 유배지 생활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
그러다 터진 것이 당대 여배우 레오니 당트와의 간통사건. 바로 직전인 1845년에 왕실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아 화려하게 재기하나 싶었지만,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은 눈멀고 중독된 사랑이었다. 불세출의 대문호가 간통 혐의로 수감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한 것이 왜 그토록 큰 죄가 되는지 한탄했다. 비극은 늘 홀로 오지 않는 법. 간통사건으로 온 파리가 들썩이던 바로 그 무렵 참척(慘戚)의 아픔을 겪는다. 가장 사랑하던 딸 레오폴딘의 익사와 아들의 죽음을 연이어 겪게 된 것. 남달리 기가 센 위고였지만 출옥 후 한동안 그는 우울증으로 무너지며 칩거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든 도덕적·인간적 결함이 오히려 매력이 되는 기이한 반전이라니. 아무래도 그의 워낙 큰 문학적 승리 때문이었을 터다. 스무 살 무렵에 쓴 첫 시집 ‘오드’(1822)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그는 20대 중후반에 연달아 쓴 문제작들인 희곡 ‘크롬웰’(1827)과 시집 ‘동방시집’(1829)으로 이미 하나의 문학적 산맥이 됐고 20대 중반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다. 특이한 것은 그가 시인이나 소설가보다는 한사코 극작가로 더 알려지기를 원했다는 점. 이것은 당시의 흐름이기도 했는데 같은 문학이라 해도 소설보다는 희곡을 훨씬 품위 있고 수준 높은 장르로 생각했던 통념 때문이었다. 소설을 산만하게 지껄이는 잡담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데 반해 희곡은 걸러내고 다듬어진 문장 세계가 배우의 억양과 행동을 통해 보다 차원 높게 펼쳐지는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우리가 뛰어난 소설가로 알고 있는 발자크나 스탕달도 사실은 극작가로서의 입지가 쉽지 않게 되면서 소설가로 ‘셀프디스’한 경우였다. 위고는 그러나 가장 나중에 뺀 ‘소설’이라는 카드로 급기야 ‘파리의 노트르담’(1831)을 썼고 망명지 건지섬에서 무려 16년에 걸쳐 쓴 소설 ‘레미제라블’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위고 집은 마레(Le Marais) 지구 보주 광장에 있었다. 마레는 프랑스어로 ‘늪’이라는 뜻. 시테섬과 가까운 습지여서 유래된 말이라지만 지금은 하얀색과 회색 건물들로 구획돼 있다. 위고가 16년을 살았던 집도 그 보주 광장의 고급 주택가에 있었다. 건물의 아래층에는 상가들이 있고 그가 살던 공간에는 마호가니빛 고풍스러운 색채와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다. ‘레미제라블’을 그린 그림들, 그리고 중국 도자기며 흉상, 가구, 책자들이 소박하게 전시돼 있다. 그의 질풍노도 같은 삶에 비하면 공간은 기이할 만큼 소박하고 적막하게 가라앉아 있다.
보주 광장은 행인들과 노는 아이들로 소란한데 한적한 전원이 아닌 이 도시의 한가운데서 이 위대한 작가는 가끔 창밖을 보며 삶은 결국 눈물겹지만 아름다운 것이고 자신에게는 그것을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핍진한 삶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듯한 기척이 들린다. 금방이라도 파이프 담배를 문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설 듯하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시인·극작가·화가·정치인… 문학세계만큼 방대했던 삶
빅토르 위고 (1802년 2월 26일∼1885년 5월 22일)
시인, 극작가, 화가, 정치인…. 흔히 문학사에서 낭만주의 작가로 명명되는 빅토르 위고의 문학세계나 삶은 어느 하나의 명칭으로 분류될 수 없을 만큼 다채롭고 방대했다. 우선 시, 소설, 희곡에 걸쳐 엄청난 양의 문학작품을 남긴 데다 화가로서도 많은 그림을 남겼다. 20대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가였는가 하면 간통죄로 수감생활을 했고 국외로 추방을 당해 20년 가까운 세월을 죄수로 절해고도 건지섬에서 보낸다. 그러나 이러한 굴곡진 삶에도 불구하고 그의 예술세계와 가슴은 늘 가난한 자, 약한 자들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아서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인의 사랑을 받았다.
그의 80세 생일을 프랑스 정부에서는 임시공휴일로 지정했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진행됐는데 파리시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인파라는 200만 명이 몰렸으며 유해는 판테온에 묻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한다.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교회의 추도식은 거부하되 영혼으로부터의 기도는 요청한다. 신을 믿는다.” 1885년 5월 눈을 감으며 남긴 유언이었다. 그의 산맥 같은 문학세계에 비하면 생의 방점을 찍는 유언은 너무도 짧고 간결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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