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인터뷰-지영미>“이젠 ‘백신 확보 전쟁’… 韓, 일반인 위한 플랜 있는지 의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영미 한국국제교류재단 보건외교 특별대표는 지난 15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경 없는 바이러스에 대한 초국가적 협력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나가는 해답”이라면서 “결국 백신이 확보되지 않으면 코로나19 사태는 종식될 수 없으므로 모든 국민이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의 백신 확보가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 WHO ‘코로나19 긴급委’ 위원 지영미

코로나 백신 年內 나온다지만
대량생산 체제까지는 먼 얘기

美는 3억명 분량 백신 선구매
英도 1억명분 확보 나서기로

現시스템으론 자급화율 한계
美처럼 개발-임상 같이 가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전 세계가 ‘백신 확보’를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는 초기 방역에 실패한 대신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의 장기화 조짐에 백신 확보는 이제 국가 안보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전 국민을 위한 백신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국내와 국제무대를 오가면서 바이러스와의 전쟁 한복판을 뛰어온 지영미 한국국제교류재단 보건외교 특별대표를 지난 15일 서울 신림동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만나 코로나19 해법을 물었다. 지 대표는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코로나19 긴급위원회 소속 위원 15명 중 1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얼마나 더 견뎌야 하나.

“최소한 1년 이상이다. 일부 국가에서 집단 면역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실제 면역도 조사에서 항체 양성률이 10∼20% 수준에 불과하다고 나왔다. 우리나라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나 외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라 자연감염으로 집단면역을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 백신이 개발돼도 모든 국민이 안심하고 맞을 수 있는 시기는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국가안보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미국은 백신 개발을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해 자국민 3억 명 분량을 확보하려 한다. 영국도 1억 명 분량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달 개최된 ‘글로벌 백신 서밋’에서 고소득 국가들이 백신을 독점하지 않고 저소득 국가에도 백신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고 결의했고, 한국도 동참키로 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한 국가 계획에는 500만 명 분량을 2021년 말, 2022년 초까지 확보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한다. 500만 명 분량이면 의료진과 노령층, 기저질환자 등 고위험군만 접종할 수 있을 정도다. 접종을 원하는 모든 국민을 위한 백신을 확보하려면 다양한 플랫폼의 백신 개발과 생산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 플랜은.

“아직 구체화돼 있지 않아 보인다. 전 세계 동향을 보면 백신 회사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리면서 개발과 생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최대한 속도를 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시험을 승인하고 신속허가 또는 긴급사용승인을 한다고 해도 실제로 국민이 원하는 만큼의 백신을 생산하려면 훨씬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투트랙으로 국내 개발과 해외 수입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는데, 모든 국가가 백신을 확보하려 할 것이기 때문에 해외개발사들과 적극적으로 협상해 투자를 함께해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 이노비오 등 해외 유력 개발사와 협력해 다양한 플랫폼의 백신개발과 생산에 국내 백신 회사가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백신은 언제 나올까.

“전 세계적으로 현재 200개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이 다양한 플랫폼을 이용해 개발되고 있고 이 중 27개가 임상시험에 진입했다.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 전례 없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몇개는 성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당장 올가을부터 생산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긴급승인제도를 통해 사용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하나 WHO가 제시한 안전성과 효능 기준 또한 만족시켜야 한다. 국내에서는 10개 이상의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있고 1개가 임상시험 중이나 아직은 초기 단계다.”

―백신 확보 전쟁에서 국가 대응 전략을 어떻게 재편해야 하나.

“국가가 연구·개발(R&D)을 제대로 추진했으면 한다. 감염병 분야 R&D를 조정하는 기능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국립보건연구원은 백신 자급화율을 높이기 위해 2020년 말까지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 설립을 목표하고 있으나 현재의 계획으로는 센터를 만들어도 한계가 있다. 요즘 유명한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수장으로 있는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내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를 보면 연구센터와 임상연구병원, 임상시험용 백신을 만들 수 있는 파일럿 플랜트가 같이 있어 한곳에서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해결해 빠른 속도로 연구를 추진할 수 있다. 한국의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는 전임상시험까지만 지원하며 임상연구병원이나 파일럿 플랜트 등은 계획에 들어 있지 않다. 당연히 효율성과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세가 더 폭발하는 이유는.

“무증상감염, 잠복기 감염 등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부족해 모든 국가가 적절한 대응을 못 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경험을 가진 중국, 한국과 달리 신속한 조기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초반 대응에 실패한 여러 국가가 뒤늦게 ‘봉쇄(lockdown)’ 조처를 했지만, 경제적·사회적인 영향을 고려해 ‘개방(open)’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단계별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성급한 개방,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지도자의 메시지로 인한 국민의 마스크 미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불참 등이 빚어졌다. 일부 국가는 국민 기본권을 고려해 강제적인 조처를 하지 못하고 자발적인 참여를 요청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무증상감염자로 인한 바이러스 확산 사례가 많아지자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적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WHO가 보수적으로 대응하다가 실기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있다.

“마스크 착용, 공기감염, 무증상감염 등에서 보듯이 WHO가 확실한 근거가 확보될 때까지 보수적으로 권고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권고의 내용도 저개발국의 눈높이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 WHO는 코로나19의 유행을 인지하고 메르스 경험에 기초한 가이드라인을 1월 10일 제공했으나 코로나19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가이드라인이나 권고안을 여러 번 수정했다. WHO의 난항을 보면서 대안적 국제협력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5월 호주 정부가 WHO의 감염병 위기대응을 보완할 지역 내 국가 간 이니셔티브로서 가칭 아시아-태평양 질병통제예방센터(CDC)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는데, 당시에는 WHO 밖에서 그러한 시도를 하려는 것에 의구심이 일어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을 통해 그런 이니셔티브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을 통해 지역 내 감염병 대비와 대응, 지역 데이터의 적극적 공유 및 플랫폼 확립 등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 향후 국가 간 논의가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그간 WHO 긴급위원회 분위기는 어땠나.

“1월 22일에 첫 회의를 했다. 그때만 해도 비상사태 선포 여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위원회는 사무총장에게 회의 결과를 전달하면서 10일 이내에 다시 회의를 소집할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1월 23일 0시 기준으로 중국이 우한(武漢)을 폐쇄하면서 사무총장이 위원회를 긴급하게 재차 소집했다. 한국시간으로 23일 오후 8시에 시작해 새벽 2시까지 전화 회의가 이어졌다. 그때도 비상사태 선포에 대해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 그 후 바이러스가 주변 국가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1월 30일 2차 회의가 소집돼 비상사태 선포로 의견이 모였고, 사무총장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4월 30일 3차 회의에서는 비상사태 유지에 합의했고 권고를 업데이트했다. 4차 회의는 3차 회의로부터 3개월 후 시점인 오는 31일에 소집될 예정이다.”

―4차 회의 의제는 무엇이 될 것으로 예상하나.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확진자 수가 계속 늘고 있고 장기화에 대비해 각국이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할지를 고민 중이다. 공중보건에의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필수적인 국제 여행과 무역을 허용하는 방안, 현재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는 미주와 아직 본격적인 유행이 시작되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대책이 논의에 포함될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바이러스의 근원을 밝히기 위한 조사단이 중국에 파견됐으니 그 결과도 청취하게 되지 않을까 하며, 국가 간 적극적 정보 공유를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될 수 있다.”

이관범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