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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29일(水)
“韓·美훈련 하고 안하고는 천지 차이… 한번만 쉬어도 연합전력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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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권오성 육군협회장이 자신이 근무하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 유엔참전국 전사자 명비 앞에 서서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는 한·미 연합 전력이 발휘되기 위한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 권오성 육군협회장 · 前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지휘관 2년·참모 1년 주기로 교체
훈련을 한 번 빼면 모두 기회 잃어
韓·美軍 단절 생겨 기능 발휘 못해

북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 철수 등 동맹 와해 저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시킨 건
北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


지난 10일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의 조사가 더 관심을 끌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우리는 그를 전쟁영웅 그 이상으로 존경한다”며 “백 장군이야말로 대한민국을 위해 일생을 바친 진정한 애국자였다”고 평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 역시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고 했고, 버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백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빈소를 찾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미 동맹의 상징이시고, 한국군 발전의 증인”이라고 평가했다.

권오성(65) 육군협회장은 “백 장군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권 협회장은 백 장군이 초대 회장을 맡은 육군협회 3대 회장을 지내며 그를 가깝게 모셨다. 권 협회장은 백 장군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지 못한 것에 대해 “우리 곁에 있었던 영웅을 대우하지 못한 것을 서글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협회장은 한·미 연합훈련 축소 움직임과 관련, “군대가 전투력을 발휘하려면 훈련이란 필수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며 “훈련을 해본 군인과 안 해본 군인은 천지 차이가 난다”고 우려했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사령관도 나와 똑같이 인식하기 때문에 훈련을 쉬거나 축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협회장은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의 북한 비핵화 주장을 거부하는 내용으로 미국의 핵 확장억제 보장 철회,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한반도 내 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을 와해하려는 저의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지난 24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진행했다.

―백 장군이 한국군에 끼친 업적을 평가해 달라.

“백 장군 100년의 삶은 ‘구국 영웅’과 ‘국군의 아버지’란 두 단어로 요약된다. 객관적 사실을 기초로 이분을 평가하고 싶다. 전쟁 발발 당시 1사단장으로서 서울이 3일 만에 적의 손에 넘어갔다. 하지만 백 장군의 진술과 전사를 보면 북한군 침공 이전에 임진강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게 나온다. 그것도 민·군 합동으로 공사했다고 한다. 전쟁을 미리 대비한 것이다. 백 장군이 38도선에 전진 배치했던 포병도 후방으로 옮겨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인천의 예비연대도 1번 국도 쪽으로 빼냈는데, 전투 종심(縱深·전투력의 중추부)을 증가시키기 위한 조치였다. 백 장군은 탁월한 전략가였으며 놀라운 예지력을 가진 분이었다.”

―낙동강 전선을 사수한 다부동 전투가 백 장군의 전적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백 장군 공적이 다부동 전투다. 백선엽 1사단이 인민군 3개 사단과 벌인 처절한 전투다. 사실 전투는 8월 15일부터 30일까지가 치열한 전투였지만, 전체적 국면인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오려는 것까지 합치면 55일 전투라 부른다. 북한군 2만4000명이 죽었고 국군은 1만여 명이 사상당한 혈전으로, 공격을 막은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다부동 쪽으로 인민군이 몰려오니 미 2개 연대에서 지원을 받아서 방어했는데, 초반에 미군 연대 쪽에서 ‘한국군이 무단이탈한다’는 보고가 오니까, 백 장군이 ‘내가 물러나면 나를 쏘라’고 외치자 후퇴한 장병들이 따라와서 고지를 점령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당시 전장의 처절함, 소름 끼치는 공포 속에서 사단장 위치의 장군으로서 평소 사생관·군인관이 없었으면 할 수 없는 행위다.”

“6·25영웅 백선엽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마지막 예우 못해 서글퍼”

北의 공격 막아낸 다부동 전투 · 美에 한국군 사단 증강 요청 등 공적 쌓아
군복 벗은 뒤엔 韓·美 연합방위체계 구축 주도하며 ‘동맹발전’에 헌신
서울현충원 모시지 못한 건 ‘절차’아닌 정부의 ‘의지’문제

한국군 창설을 친일파가 주도했다는 건 잘못된 얘기
美군정 요청으로 김구 선생 등이 日육사 출신들과 논의해‘친일논란’불거져
功過 객관적인 파악 없이 진영·이념 논리로 ‘편 가르기’하면 안돼


―백 장군이 평양탈환 진격의 최선봉에 서게 된 사연은.

“애초 평양 진격부대에 백선엽 1사단은 포함이 안 됐고 뒤따라가게 했다. 백 장군이 당시 미 1군단장인 프랭크 밀번 소장을 찾아가 평양을 먼저 점령하게 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한 뒤, 평양을 먼저 점령한 사연은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미군은 항상 융단폭격과 포격을 먼저 하고 들어가는데, 백 장군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명 피해와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 장군은 33세에 육군참모총장이 됐는데 사단장을 할 때는 28세에 불과했다. 평양에 들어갈 때도 미군 차량은 400대, 우리 차량은 100대였지만 진격 속도를 유지했다. 평양에 가서 한 말이 백미다. ‘일개 월남 청년이 장군이 돼 1만5000여 명의 한·미 장병을 지휘하며 고향을 탈환하러 진군하는 감회를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가슴이 뜨거웠겠나! 조만식 선생 비서를 하다 남쪽으로 내려와 부산까지 쫓겨 내려갔다가 다시 그 땅을 밟은 감회가 어떠했겠는가.”

―왜 국군의 아버지라 불리는가.

“백 장군은 7대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한 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하자 한국군 10개 사단을 20개 사단으로 증강시켜 달라고 요청한다. 그 건의와 내용 때문에 우리 군 규모가 굉장히 확장됐다. 미군들이 알아서 우리 군을 확장한 게 아니라 백 장군의 간곡한 설득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말이 확장이지, 제2 국군창설에 버금간다. 훌륭한 발자취다. 국군의 아버지란 말을 들을 만하다.”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공개적으로 백 장군에게 조의를 표시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백 장군은 전쟁 때부터 한·미 동맹의 산파 역할을 했다.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육군참모총장 자격으로 한·미를 오가며 활동했다. 1960년 군복을 벗은 후에는 한·미 연합방위체계 구축을 주도했다. 그것 때문에 미 NSC, 연합사령관, 국무부가 모두 고인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

―최근 한·미 연합훈련 축소 또는 폐지로 연합 전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크다.

“군대가 전투력을 발휘하려면 훈련이란 필수요소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한·미 연합 전력이 발휘되려면 훈련이 있어야 한다. 특히나 참모나 지휘관은 교체 주기가 있다. 참모는 1년, 지휘관은 2년이다. 금년도 훈련을 한 번 빼면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훈련할 기회를 잃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세대 보직에게 넘겨줄 것이 없게 된다. 시스템상 구축은 되겠지만, 이 시스템도 결국 사람이 운영한다. 한·미 간 단절이 생기는 것이고, 뒤에 오는 사람은 그 공백을 채우기 힘들어진다. 군의 특성이 그렇다. 한·미 연합 시스템이 민간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복잡하다. 이 시스템이 한 번 쉬거나 축소되면 다음에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40년 군 생활 동안 작전 계통에서 근무했다. 훈련을 해본 군인과 안 해본 군인은 천지 차이가 난다.”

―미군은 훈련에 적극적인 반면, 한국 측은 소극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미군 사령관인 연합사령관들은 나와 똑같이 인식하기 때문에 훈련을 쉬거나 축소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투력 발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기 때문이다. 연합훈련이 미·북 협상 테이블에서 다뤄지는 사실 자체가 안타깝다.”

―북한의 비무장지대 전방초소(GP) 도발 의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이 문제는 군사적인 관점에서 매우 단순하게 해석할 수 있다. 군대는 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현상을 바라보고 대비해야 한다. 또한 우리 언론이 이 문제와 관련해 그토록 심각한 쟁점으로 부각해서 보도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이 한마디도 없다는 것은 우발이 아니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본다.”

―북한은 ‘조선반도 비핵화’, 우리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라고 부르는데 차이점 등을 설명해달라.

“북한이 주장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우리의 북한 비핵화 주장을 거부하는 내용으로 미국의 핵 확장억제 보장 철회, 한·미 연합훈련 중단, 한반도 내 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을 와해하려는 저의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는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북한의 핵 위협이 확실한 상황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라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해 국제적 협력을 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북한 핵이 우선 포기돼야 한다. 선 핵포기 후에 나머지는 여러 방법으로 구사할 수 있다. 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다음번 조치들은 다 허구다. 핵을 포기하게끔 하는 노력에 중점을 두고 국내적·국제적 협력도 거기에 포커스를 둬야 한다. 대북 제재도 그런 차원이 아닌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북한의 의도와 행태를 어떻게 보는가.

“우리가 늘 불리하다. 북한은 의도된 정보만 우리에게 준다. 하지만 우리는 각 언론에서 의도를 분석해 준다. 우리는 북한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 필요한 것만 주지 않나. 고도의 심리전이다. 확성기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일상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면 북한은 경우에 따라 위협 영상, 대화 메시지 영상 등 하고 싶은 것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감 없이 언론에서 내보낸다. 북한 측은 이것을 다 분석한다. 북한은 수집요원이 필요 없다. 우리 언론이 다 내보내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국가적 심리전으로 보면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 버텼다. 어찌 됐든 최근 상황을 보면 그들의 뜻대로 되고 있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내부적인 것이냐, 외부적인 포션이 더 크냐, 아니면 두 가지가 합쳐졌느냐. 이런 3가지 범주 속에서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것인데, 뭔가 그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권 협회장은 백 장군이 사후에도 국가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부 인사가 확인되지 않은 친일 행적을 끄집어내 폄훼하는 것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공과 과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념과 진영 논리에 따라 편을 가르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미국도 인정하는 영웅을 폄훼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한 세기를 살아온 인물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양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현재 기준, 일부분만 두고 한 인간의 전체를 조명하고 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태적 관점에서 현재를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동태적으로 역사의 흐름을 보며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보면 결론은 자명하다. 육군을 있게 한 몇 안 되는 영웅, 전쟁 영웅,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킨 영웅이란 공적은 명확하다. 그래서 1920년 시대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한 젊은이가 치열하게 살아왔는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다음에 나라를 구해내 구국의 영웅이 된, 정말 대하드라마 같은 스토리다. 이런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조망해야 하고, 무엇보다 없어질 뻔한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적을 조명하고, 기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자세 아닌가 싶다.”

―광복회와 여당 일각에서 친일 군인 파묘(破墓) 논란까지 제기해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우리 군대에 왜 이런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지, 내가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창군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8·15광복 후 3년간 미 군정 시기에 우리는 창군 과정을 겪었다. 광복 후 미 군정 시절에 상하이임시정부 요인이 들어오는 데 몇 개월이 걸린다. 내 기억으로는 당시 김구 선생 등이 1945년 11월 국내에 들어온다. 그리고 광복군은 1946년 4월까지 계속 들어온다. 그런데 조선경비대는 1946년 1월에 창설된다.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지고 군대를 만드는 데 깊이 관여하지 못했다.”

―당시 얘기를 좀 더 해 달라.

“내가 알기로는, 김구 선생이 이응준·신태영 등 일본 육사 출신 장교들과 창군 과정을 논의했다. 그래서 일본 육사 출신과 창군을 논의했다고 한국군 창설을 친일파가 주도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김구 선생이 그 일을 했다. 그리고 당시 미군정사령관인 존 하지 중장이 김구 선생에게 논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응준 회고록을 보면, 이응준도 김구 선생에게 ‘이건 우리가 하면 안 되고 광복군들이 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해서 한국군이 만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당시 하지 중장 시절에 좌익과 우익 모두 창군 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좌익 사고를 지닌 사람이 군에 많이 들어왔다. 미 군정하에서 우리 주도로, 우리 생각으로 나가지 못했고, 좌와 우 모두 인정하는 가운데 한국군이 창설되는 과정에서 친일 문제, 좌익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백 장군이 서울현충원에 묻히고 싶어 한 뜻을 못 이루고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데 대한 육군협회의 입장은.

“육군협회는 백 장군이 소천(召天)하시자마자 입장문을 먼저 냈다. 첫째는 서울현충원이나 대전현충원이나 다 현충원이다. 관리부서만 국방부냐 보훈처냐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분의 경우는 다르다. 6·25전쟁 영웅, 구국 영웅으로 모셔왔다. 6·25전쟁 이후 국군묘지를 만들 때 이승만 전 대통령과 같이 동작구 흑석동 서울현충원 지금의 자리를 찾게 도운 분이 백 장군이다. 6·25전쟁 전사자 16만여 명이 서울현충원에 모셔져 있다. 사람이 나이 들면 부모 곁, 형제 곁에 묻히고 싶은 것처럼 군인도 전우 곁에 묻히고 싶어 한다. 한 노병의 작은 소망으로,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도리다. 외국에서 추앙도 하고 사절이 오면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이건 절차와 법규 문제가 아니고 의지 문제, 결단 문제였다. 이미 우리 곁에 있었던 영웅을 대우하지 못한 것을 서글프게 생각한다.”

―백 장군과의 인연은.

“백 장군은 전쟁 영웅이기도 하지만 1960년 5월 군 생활을 마치고 평범한 생활로 돌아온 뒤에도 국가 발전, 한·미 동맹, 군 발전에 일생을 헌신했다. 특히 육군을 참 많이 사랑했다. 우리 협회 차원에서 보면 미 육군협회(AUSA)를 보고 우리나라 육군단체 창설의 필요성을 느끼고 2007년 국방부의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함께 육군협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초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10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셨고 2대 회장으로 김판규 전 육군참모총장, 내가 올해 3월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정리 = 정철순 기자
인터뷰 = 정충신 선임기자 csjung@munhwa.com
e-mail 정충신 기자 / 정치부 / 부장 정충신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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