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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29일(水)
자기 확신 강한 권력자·정치인, ‘정박효과의 오류’ 빠지기 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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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12) 마음의 기준과 지나친 확신

어떤 사안을 판단할때, 주어진 기준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경향
정책 결정·임금협상 등 오판 가능성… 높은 지위 있을수록 신념 틀릴수 있다고 생각해야


대부분의 독자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직접 혹은 영상으로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먼저 다음 질문들에 답을 해 보기 바란다. “파리 에펠탑의 높이가 100m보다 높을까 혹은 낮을까?” “만일 높다면, 혹은 낮다면, 에펠탑은 몇 m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여러분이 98% 확신할 수 있는 에펠탑의 높이 구간은 어느 정도인가? 즉, 에펠탑의 높이가 최소 몇 m에서 최대 몇 m 정도면 98%의 정확률로 실제 에펠탑의 높이가 그 구간 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기억하고(혹은 종이에 적어 놓고) 다음을 계속 읽어 보기 바란다.

만일 필자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질문을 했다고 치자. “파리의 에펠탑 높이가 500m보다 높을까 혹은 낮을까?” “만일 높다면, 혹은 낮다면, 에펠탑의 높이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처음 질문과 나중 질문의 차이는 에펠탑의 높이를 각각 100m와 500m를 기준으로 높은지 낮은지를 먼저 물어본 것뿐이다. 그런데 이 질문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추측하는 에펠탑의 높이는 큰 차이를 보인다. 100m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생각한 사람들은 500m를 기준으로 생각한 사람들보다 에펠탑의 높이를 훨씬 더 낮게 판단한다. 강의실에서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100m를 기준으로 높낮이를 먼저 판단하도록 한 경우 평균 140m 정도로 에펠탑의 높이를 추정했고, 심지어 에펠탑을 직접 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실제 에펠탑의 높이는 324m이다). 여러분의 대답을 다시 기억해 보라. 실제 에펠탑의 높이와 유사한가? 아니면 필자의 대학생들 수치와 유사한가? 그리고 여러분이 설정한 최저에서 최고 높이의 범위에 실제 에펠탑의 높이가 있는가? 마지막 질문과 관련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에펠탑의 높이가 100m보다 높은지 낮은지를 먼저 물어봄으로써 많은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100m를 기준으로 에펠탑의 높이를 위나 아래로 조절하는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됐다. 마치 배가 정박할 때 닻(anchor)을 내리고 그 주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판단이 사전에 주어진 기준을 중심으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정박 효과(anchoring effect)라고 부른다. 이러한 정박 효과는 일찍이 1974년에 인지심리학자인 트버스키(Tversky)와 카너먼(Kahneman) 교수가 실험 연구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당시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에는 유엔 회원국 중 아프리카 지역 회원국의 비율이 10%보다 높은지 낮은지를(낮은 정박 조건), 나머지 집단에는 아프리카 지역 회원국의 비율이 65%보다 높은지 낮은지를(높은 정박 조건) 먼저 판단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최종 추정치를 보고하게 했는데, 낮은 정박 조건의 참가자들은 평균적으로 아프리카 지역의 유엔 회원국 비율을 25%로 판단한 반면, 높은 정박 조건의 참가자들은 약 45%로 판단했다. 처음에 어떤 기준이 주어졌느냐에 따라 무작위로 할당된 두 집단 간에 무려 20%의 추정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에펠탑의 높이를 추정하는 실험이나 아프리카 지역의 유엔 회원국 수를 묻는 질문의 경우, 어쩌면 독자들은 대부분의 사람이 잘 모르는 분야라서 기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연구를 살펴보자.

2001년 독일의 심리학자 엥글리히(Englich)와 무스바일러(Mussweiler)가 수행한 연구는 15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고등법원 판사들의 형량 판단 역시 기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험에 참여한 판사들에게 동일한 성폭행 사건에 대한 자료를 주고 검토하게 한 후, 컴퓨터과학 전공 대학생이 검사 역할을 해 피고에게 구형한 형량을 알려줬다. 이때 한 집단의 판사들에게는 검사 역할을 한 대학생이 피고에게 34개월을 구형했다고 알려줬고(높은 정박 조건), 다른 집단의 판사들에게는 12개월을 구형했다고 알려줬다(낮은 정박 조건). 그러고 나서, 각 조건에 할당된 판사들에게 ‘대학생 검사’의 구형량이 높은지 혹은 낮은지를 판단하게 하고, 본인이 담당 판사라면 형량 선고를 어떻게 할지 물어봤다. 결과는, 34개월 구형 조건에서의 판사들은 평균 36개월을 선고했고, 12개월 구형 조건에서의 판사들은 평균 28개월을 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집단 간에 무려 8개월의 형량 차이가 난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제 법정에서 검사의 구형은 해당 사건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지니고 있으며 검사 역시 법 전문가로서 이들의 구형은 판사의 판단에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검사 역할을 하는 대학생은 법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는 것을 실험에 참여한 판사들도 알고 있었고, 더욱이 판사들은 이 가상의 대학생 검사가 구형한 형량이 자신의 형량 판단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즉, 임의의 구형 기준에 판사 본인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실험 결과는 임의의 기준조차 전문가의 전문분야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사회, 경제, 정치, 교육 등 인간의 판단이 관여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이러한 정박 효과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와 30분 후에 자주 가는 식당에서 만나자고 하면, 우리는 기껏해야 40분 후 정도에 만나자고 약간의 조정을 하고, 하던 일을 서둘러 마치고 나가려고 하지만, 강아지 물도 주고, 마스크도 챙기고, 택배도 옮겨 놓는 등의 일을 고려하지 못해 허겁지겁 약속 시간에 늦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백화점에서 쇼핑할 때 점원이 처음에 아주 비싼 상품을 먼저 보여줬다면, 여러분은 어쩌면 자신이 사려고 했던 가격보다 더 비싼 상품을 구매해 백화점을 나오게 될 수 있다. 그 점원이 여러분에게 만들어 놓은 매우 높은 가격의 기준 때문이다.

협상 과정에서도 (가령, 얼마 전 있었던 최저임금 협상을 생각해 보라) 최종 조정된 안이 나오기까지 어떤 기준이 처음에 제시되느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금융 투자나 심지어 군사적 판단에도 정박 효과가 작용한다.

최근에 독일 쾰른대의 심리학자 라머스(Lammers)와 부르그너(Burgner)는 에펠탑의 객관적 높이 판단뿐 아니라 과제에 대한 주관적 판단, 임금 협상 판단 등 다양한 의사결정에서 정박 효과가 나타나며, 특히 권력(power)이 정박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음을 일련의 실험을 통해 밝히고 있다(2017년). 다양한 판단 상황에서 권력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높은 정박 조건과 낮은 정박 조건 간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 것이다. 즉, 권력이 있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주어진 기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조절을 잘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이 맞는 것인지 혹은 틀린 것인지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어떤 정보든지 당장 있는 것만으로 쉽고 자동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경향은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이미 보고된 바 있다. 반면에 지위가 낮고 권력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일수록 주어진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정보에 좀 더 신경을 쓰고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정치 지도자, 재계의 총수, 조직의 리더가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처음 독자들에게 했던 질문 중에 마지막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필자는 에펠탑의 높이 구간을 설정해 보라고 했고, 그 구간 안에 실제 에펠탑의 높이가 있을 확률이 98%가 되도록 요청했다(이것을 신뢰구간이라고 부른다). 만일 여러분이 에펠탑의 높이를 최소 50m에서 최대 250m라고 생각했다면, 여러분의 판단은 틀린 것이다. 신뢰구간이 98%라면 98%의 응답자가 맞혀야 하지만, 아마도 독자들 중 반 이상은 틀렸을 것이다(실제로 필자의 강의를 수강하는 대학생들도 반 이상 잘못된 구간을 설정했다).

▲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우리는 에펠탑 높이를 추정할 때도 주어진 기준에 영향을 받는 ‘정박 효과의 오류’에 빠지곤 한다.
기준을 주지 않고 일반적 판단 문제들(가령, 2015년 인도네시아의 총 인구 수는 최소 몇 명에서 최대 몇 명일까?)을 신뢰구간 98%로 범위를 판단하게 한 연구에서도, 사람들은 약 40%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음을 인지심리학자들은 발견했다. 이 발견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판단이 맞을 거라는 과도한 확신을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잘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신념에 지나치게 의존, 자신의 신념을 지지해 주는 증거들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증거들은 무시하거나 예외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더욱이, 높은 지위에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 특히 정치인들은 자신의 판단을 지나치게 확신한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 상·하원 의원들이 섹스 스캔들이나 부적절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킨 예는 부지기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님을 우리는 이미 뉴스를 통해 알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정치인이 자신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들통나지 않을 것이라는 지나친 자신감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지위가 높고 주변에 자신의 생각에 도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더욱 지나친 자신감에 더해 다른 사람도 자신의 생각과 같을 것이라고 착각할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정치인들의 과신은 또한 정책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자신들이 생각하는 근거나 자료가 매우 정확하다는 과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많은 정책의 실패(가령, 정부의 주택가격 안정 정책들)를 보고 있고, 여전히 확신에 찬 정치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국에서 고위 정부 관리나 정치 외교 분야 전문가 및 교수들, 대중매체의 이름난 전문가들에게 앞으로 10년 안에 한반도나 중국, 중동 지역 등 세계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예측해 달라고 1992년 당시 필립 테트록(Philip Tetlock)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요청했는데, 놀랍게도 이들의 예측 정확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더욱 흥미로운 것은 확신에 찬 예측들이 더 정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라고 크게 다를까? 확신에 찬 정치가들의 주장이 미덥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과거의 자료들은 이미 답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자신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자신감은 분명 적응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긍정적 효과를 준다. 같은 난도의 과제 수행을 할 때에도 자신감이 있을 때 더 잘한다. 스포츠 경기나 정신건강, 사업이나 심지어 전쟁에서도 자신감은 도움이 되고, 승패의 주요 요소이다. 그 이유는 자신감이 성취동기와 사기도 높여주면서 더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일하게 만들고, 과장된 표현을 해도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에서도 자신감이 높은 후보가 이길 확률이 높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가 대다수 국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지나친 자신감은 이득보다는 손실이 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미 겪은 국가 재정 붕괴나 수많은 정책 실패와 커다란 인재들, 그리고 전쟁도 그러한 막대한 손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정박 효과(anchoring effect)

마치 배가 정박할 때 닻(anchor)을 내리면, 닻과 배를 연결하는 밧줄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듯 우리의 판단이 사전에 주어진 기준을 중심으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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