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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7월 31일(金)
김용희 “경기운영 걱정 품고 살지만… 50년 그라운드 지키는 행복한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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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희 KBO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선수 시절로 돌아간 듯 배트를 든 채 활짝 웃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munhwa.com

프로야구 강타자 출신 KBO 경기운영위원장 김용희

190㎝ 키로 ‘사이다 스윙’ 인기
프로 8년간 61홈런·260타점에
1982·1984년 올스타전 MVP

경기운영 위원 3년만에 승진
시즌 안정적 관리·감독이 역할
올핸 코로나로 방역업무 추가

‘그라운드의 신사’라는 별명
과분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어

한국야구 성장·발전 과정에
김용희가 있었다 기억해주길


김용희(65) 한국야구위원회(KBO) 경기운영위원회 위원장은 1970∼1980년대를 주름잡은 강타자였다. 특히 지금의 ‘잣대’에 비춰도 큰 190㎝ 키로 호쾌한 장타를 펑펑 뿜어냈다. 호쾌한 스윙은 ‘사이다’에 비유할 수 있다. 당시엔 흔치 않던 대형 내야수였고, 아시아 최고의 3루수로 꼽혔다. 실업팀을 거쳐 1982년 KBO 탄생과 함께 프로무대를 가꾼 원년 멤버다. 김 위원장은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겸비했고, 지금까지 늘 반듯한 신사의 이미지를 지켰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그라운드의 신사’. 지난 9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과분하고,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이라면서 “사실은 속으로는 걱정을 많이 품고 사는 스타일”이라고 귀띔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프로야구의 역사다. 원년 멤버에 사령탑까지 지냈고 지금은 경기운영위원회를 이끌고 있다. 김 위원장은 롯데 창단 멤버였으며 1989년 플레잉코치로 기용됐고, 시즌 후 타격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그런데 프로 8년간 3할 타율을 넘긴 시즌은 없다. 통산 타율은 0.270이다. 8년간 61홈런을 날렸고 260타점을 올렸다. 하지만 묵직한 무게감은 단연 으뜸이었다. 꼭 필요한 순간 시원한 한 방을 날리는 클러치 능력을 보유했다. 180㎝가 넘는 선수가 드물던 시기에 키가 큰 그는 방망이를 길게 잡고 타석에서 투수를 위협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단기전에 강했다. 롯데 소속이던 1982년과 1984년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뽑혀 ‘미스터 올스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1982년 올스타 3차전에선 만루홈런을 포함해 홈런 3개를 터뜨렸고, 1984년 2차전에선 4타수 4안타를 휘둘러 MVP의 영예를 안았다.

김 위원장은 34세이던 1989시즌을 마치고 현역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지금은 한창때 나이지만, 당시엔 노장으로 분류됐다. 게다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좀 더 길게 선수생활을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프로 데뷔 후 고질적인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프로야구 출범 1년 전인 1981년 실업팀에서 경기하다 심각한 허리부상을 입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운동을 그만 포기하라’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진단을 내렸지만 김 위원장은 프로가 되는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허리를 다쳤을 때 수술까지 염두에 뒀지만, 의사인 지인이 ‘용희야, 수술하면 야구 이제 못한다’고 진단했다. 야구를 그만두기 싫었고, 그래서 수술을 포기했다.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아플 때마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겠다는 오기를 부렸고, 그렇게 해서 프로야구인 김용희의 자취를 남겼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현역 시절 파스를 달고 다녔다. 경기 전에는 침을 맞았다. 허리에 좋다는 각종 민간요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김 위원장은 “허리통증 탓에 페넌트 레이스에서 꾸준하게 성적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올스타전, 포스트시즌 등 단기전은 달랐다. 단기전이기에 바짝 긴장하게 돼 아파도 집중할 수 있었다. 코칭 스태프는 ‘넌 타석에 나가기만 해도 투수를 주눅 들게 한다’면서 격려했다”고 기억했다.

아마추어 시절 김 위원장은 일본에서 더욱 후한 점수를 받았다. 1973년 청룡기고교야구대회는 김 위원장이 전국구 스타로 도약한 무대였다. 당시 경남고 4번 타자였던 김 위원장은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쳐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22타수 12안타를 날려 최우수타자상을 받았고 고교대표팀에 선발, 한·일 교환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일본엔 에가와 스구루라는 괴물투수가 에이스였다. 사쿠신가쿠인 고교 소속이던 에가와는 1973년 한 경기에서 21삼진을 빼앗아 화제가 됐다. 김 위원장은 “에가와 때문에 우리가 무조건 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일본전은 가위바위보를 하더라도 이겨야 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웠고 2-1로 승리했다”고 말했다. 에가와는 일본프로야구에 1979년 데뷔했고, 9년간 135승 72패를 거둔 슈퍼스타였다.

▲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첫 올스타전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당시 롯데의 간판타자 김용희. 연합뉴스

1980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김 위원장은 다시 한 번 일본에 충격을 안겼다. 한국은 9승 1패로 쿠바에 이어 준우승을 차지했고 김 위원장은 베스트9의 3루수로 선정됐다. 당시 일본대표팀엔 불세출의 스타 하라 다쓰노리가 3루수였다. 그는 현재 일본프로야구의 명문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감독이다. 하라 감독은 아마 시절부터 일본야구의 희망으로 꼽혔고, 요미우리에 1순위로 지명돼 프로에 입문했으며 4번 타자로 활약했다. 하라 감독이 김 위원장에게 밀려 베스트9에서 탈락하면서 일본야구는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김 위원장은 “지금은 없어진 고라쿠엔 구장에서 세계선수권 일본과의 경기를 치렀는데 김재박, 김일권, 김봉연 등 쟁쟁한 멤버가 많아 제압할 수 있었다. 1980년은 프로 출범 전이기에 국가대표는 야구선수에게 최고의 영예였다. 그리고 3루수로 베스트9에 뽑혀 주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롯데 코치로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누린 뒤 미국으로 지도자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미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한국야구를 잘 몰랐다. 김 위원장은 쌍방울 코치였던 조 알바레스의 주선으로 메이저리그(MLB) 텍사스 레인저스의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에서 선진야구를 익혔다. 그런데 처음엔 무시당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캐치볼을 하니까 이상하게 보더라. ‘어, 쟤도 캐치볼 할 줄 아네’라는 반응이었다. 주루 연습을 하는데 ‘헤이, 미스터 김. 외야로 한 번 쳐봐’라고 하더라. 그래서 공을 쳤는데 팍하고 멀리멀리 날아갔다. 그러자 ‘우아~’라는 탄성이 나왔고, 그때부터 ‘대우’가 달라졌다”고 떠올렸다.

1년간 미국야구를 몸으로 익힌 김 위원장은 1994년 롯데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의 나이 39세. 롯데 출신 선수로 첫 프로야구 감독이었다. 김 위원장은 1995년 롯데를 정규리그 3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면서 지도력을 입증했다. 1998년까지 롯데를 이끈 김 위원장은 2000년엔 1년간 삼성 1군 사령탑을 맡았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다시 롯데로 돌아와 1군 수석코치, 2군 감독을 지냈고 2010년 1월부터 2011년 9월까지 SBS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구수한 입담을 자랑했다. 2012년 SK 2군 사령탑으로 현장에 복귀한 김 위원장은 2015년과 2016년 2년간 SK 1군 감독을 맡았다. 김 위원장은 지도자로 정상에는 오르지 못했다. 특히 1995년 OB(현 두산)와의 한국시리즈는 잊지 못한다. 당시 2차전에서 롯데는 OB에 1-2로 패했다.

김 위원장은 1-1이던 9회 말 2사 주자 2, 3루의 실점 위기에서 김종석을 고의4구로 내보내는 만루 작전을 펼쳤다. 타석에는 뛰어난 선구안을 자랑하는 김민호가 들어섰다. 투수 강상수가 볼카운트 2-3에서 밀어내기 볼넷을 내줬고, 경기는 끝났다. 당시 1차전을 4-2로 승리했던 롯데는 2차전에서 제동이 걸렸고 3승 3패로 맞선 7차전에서 2-4로 패했다. 2차전을 이겼더라면 흐름이 달라졌을 터. 김 위원장은 “그때는 경험이 부족했던 감독이었다. 그런데 강상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차전이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다. 2017년부터 KBO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지난해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1982년 KBO리그 출범과 함께 그라운드에 선 김 위원장은 올해까지 40년 가까이 프로야구인의 삶을 살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떤 야구인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김 위원장은 “한국야구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김용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야구팬들이 기억해주면 좋겠다. KBO리그가 항상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운 고집 있는 야구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글=정세영 기자, 사진=김낙중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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