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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김병종의 시화기행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04일(火)
디아스포라의 기억… 色의 언어로 고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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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커스의 추억_러시아 기행, 93x128cm, 한지에 먹과채색, 2000.


■ (41) 샤갈을 품은 니스

유대인으로 태어나 러시아서 자랐지만
예술세계 인정해준 프랑스에 ‘뿌리’

시골성당 같은 분위기의 ‘성서 미술관’
창세기부터 신약까지 12개 이야기 눈길
아이의 눈으로 사랑·이별 대상 바라보며
꿈의 왈츠처럼 감미롭게 펼쳐내


현대인의 영적 구루(guru·스승)의 한 사람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호크니는 ‘나의 눈(The eye of the I)’에서 말한다. “창조는 내적이고 신적인 지시 혹은 의도들을 이행하는 일.” “시각 예술은 정지된 시간상의 어느 한순간을 포착해서… 프레임을 끼우는 일”이라고. 내게는 그의 책이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눈과 마음’ 이래 ‘시각’을 ‘의식’ 깊은 곳까지 데리고 간 길라잡이로 느껴진다. 그는 부드럽고 온화한 신성(神性)이 만물에 두루 존재하기 때문에 그 터치를 체험한 사람과 사물마다 그 신성의 오라(aura)가 깃들어 있다고 봤다. 일찍이 만물에는 지성(知性)이 있다고 했던 인도의 학자 디팩 초프라의 견해와 같았던 것이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 앞에 서면 ‘나의 눈’의 구절구절이 떠오른다. 둥둥 떠다니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 사람들 아래로 조개처럼 엎드려있는 집들이며 나무들도 신성의 오라에 반사되고 혹은 둘러싸여 있는 것만 같다. 집들이 말하고 나무는 노래한다. 색채의 낱말들이 저희끼리 만나 시가 된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빛과 색으로 그런 오라를 만들어 낸 걸까. 그도 그 위대한 분의 ‘만지심’을 체험했던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사진으로 대하는 모습이지만 샤갈에게는 얼핏 유대교의 랍비나 가톨릭의 사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샤갈의 행로를 따라 니스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머릿속으로는 열심히 토라를 읽는 유대인 가정의 한 가난한 아이가 지나간다. 신을 찬양하라. 그분을 경배하라. 프랑스가 부러운 것은 기차를 타고 창밖으로 스치는 초록 풍경들을 볼 때이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지는 그 초록의 풍경과 함께 떠오르는 상념들이다. 바로 이 풍경과 상념을 위해 나는 늘 돈을 지불하고 시간을 내어 여행길에 오르는 것일 터이다. 끝없는 푸른 들판과 그 속에 간간이 박힌 프티 프랑스로 불리는 작고 예쁜 도시들. 그 들판과 마을들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질 때면 풍경은 그림이 된다. 니스는 바로 그렇게, 물과 태양과 초록이 만들어내는 풍경화이다.

샤갈은 러시아의 한 유대인 마을에서 유년을 보낸다. 춥고 가난했다. 음산했던 그곳의 기억도 파리에서 떠올렸을 때는 설탕처럼 감미롭게 바뀌었다. ‘빛의 푸스크 위에서’라는 그림을 보라. 유년의 음울한 풍경들이 햇살로 눈부시고 초록으로 출렁거린다. 모든 ‘과거’는 이처럼 ‘지금’ 어디에 서서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에서의 삶을 늘 고맙고 기쁘게 생각했다. 니스의 샤갈 성서 미술관은 내가 가본 세상의 미술관 중 가장 편안한 곳 중의 하나였다. 세상의 모든 유명한 미술관들은 건축가의 명패가 붙은 미술가의 무덤이다. 건축가의 이름이 우뚝할수록 미술관은 가라앉고 관객은 주눅이 든다. 소외감과 불편함도 크다. 그러나 니스의 샤갈 미술관은 시골 성당이나 유대교 교회당 같은 분위기이다. 예컨대 작품의 신성(神性)이, 오라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은 주로 성화(聖畵)들이어서 ‘샤갈 성서 미술관’으로 명명되는데 이 작품들은 디아스포라인 자신을 품어주고 그 예술세계를 기려준 프랑스와 프랑스인에 대한 헌증의 의미가 담겨있을 뿐 아니라, 개인적 신앙 고백의 그림들이기도 하다. 생전에 모두 프랑스에 기증했던 작품들이다. 뿌리 뽑힌 삶을 사는 자는 안다. 어느 곳이든 받아주고 안아주는 곳이 고향이다. 쫓기는 삶의 역사를 지닌 유대인은 그래서 세계 어디서건 정착을 위한 뿌리 내림을 시도한다. 샤갈 또한 유대인으로 나서 러시아인으로 살았지만 그 정신적 뿌리는 이스라엘과 러시아에, 육체적 뿌리는 프랑스에 내렸다. 그리고 세계 미술의 수도에서 인정받게 되면서 그는 행복했다.

▲  김병종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시골 학교의 교실 같은 단층의 미술관은 어쩌면 샤갈에게는 그가 자란 러시아의 농사 창고처럼 편안했을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창세기에서 신약까지 열두 개의 방에 12개의 성서 이야기가 있다. 성서의 세계가 눈으로 보고 만질 수 있듯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예컨대 ‘샤갈 복음’으로 그려 놓은 것이다. 푸른색, 붉은색, 물과 불, 초록과 마을, 모자이크 작가 리노 벨라노와 함께 제작한 환상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보인다. ‘하나님의 인간창조’ ‘십계명을 받은 모세’ ‘모세와 불타는 떨기나무’ ‘야곱의 꿈’ ‘십자가 위에서 내려진 그리스도’…. 그가 그려낸 성서의 세계는 신의 위엄있는 메시지라기보다는 마치 꿈의 왈츠와 같다. 그만큼 감미로운데 그 위에 약간의 유머가 있다. 푸른 공기, 붉은 사랑, 분홍빛 기억을 둥둥 떠가며 그는 ‘누워있는 시인’ ‘초록색 바이올리니스트’ ‘세 개의 양초’ ‘나와 마을’ 같은 것을 그렸다. 이 행복한 늙은 아이는 우리 나이로 99세까지 살며 끝없이 경이로운 눈으로 세계의 조국을 떠올리며 그리고 사랑과 이별의 대상들을 떠올리며 고해성사처럼 그림을 그렸다. 크레용으로 도화지를 색칠하는 소년처럼 그렇게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기억과 세상을 바라봤다. 유랑하는 삶이었지만 행복한 여정이었다.

화가·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성당·오페라극장 등에 남은 그의 흔적… 전쟁속에서도 지켜낸 낭만

- 마르크 샤갈의 성서, 꿈, 사랑


러시아 출신의 유대인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샤갈은 그림, 판화, 모자이크, 스테인드글라스 등 광범위하게 작업을 했다. 특히 성당이나 오페라극장 등 종교와 예술시설에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를 많이 남겼다. 러시아에서 20대 때인 1910년 파리로 건너온 그는 줄곧 고향의 추억과 유년의 그리움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이 담긴 그림을 많이 제작했다.

그는 마치 지상의 중력 바깥에서 부유하는 생물들 같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풍경을 많이 그려서 환상과 동화, 사실과 초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보였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체험했지만 그의 작품세계는 늘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영원한 사랑 그리고 낭만적 상상력의 서사로 가득했다.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와 같이 러시아 발레의 기억과 그 무대, 그리고 유년의 추억과 사랑의 기쁨과 상실에 대해서 자전적인 그림을 많이 남겼다. 병으로 죽고만 첫 아내 벨라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림과 두 번째 연인이자 아내였던 바바를 기념해 ‘바바를 위하여’ ‘바바의 초상’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현실과 꿈을 오가는 샤갈의 그림은 삶에 지친 많은 사람에게 치유와 위로가 됐고 특히 니스의 미술관에는 이런 그의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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