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할아버지 속깊은 애정 모르고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것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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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균(1938∼2016)

할아버지껜 ‘그냥’ ‘대충’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원칙적으로 흘러가야 하고 명확한 이유 없이는 어떠한 행동도 용납하지 않으셨으며, ‘그냥’ 해본 일, ‘대충’ 넘어가는 일이 절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았던 터라 그런 할아버지의 성격은 다 나를 향했다. 초등학생이 문구점에서 장난감 팽이 한 개 사는 데도 그것을 꼭 사야 하고 필요한 이유를 서술형 시험 답안 작성하듯 명확하게 전달해야 했고, 친구 생일파티에 가기 위해 학원에 딱 하루 빠지는 일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를 성인이 될 때까지 많이 미워했다.

‘할아버지는 꽉 막힌 사람이야’라는 생각으로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중 성년의 날을 맞았다. 밤늦게 집에 들어와 보니 책상 위에 ‘지예 보거라’고 쓰인 흰 봉투가 놓여 있었다. 봉투 안엔 5만 원권 몇 장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지예가 나의 손녀딸임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문장 중 가슴을 울린 이 문장. 내가 귀찮다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할아버지의 모든 행동은 모두 나에 대한 관심, 애정의 표현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무뚝뚝한 옛날 사람 할아버지껜 그게 최선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속에 혼자 쌓아왔던 오해를 풀고 더 잘하는 손녀딸이 되겠다고 다짐하며 뒤늦은 효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다짐을 하고 3년 후, 할아버지는 간암 3기 진단을 받으셨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병 또한 치료 잘 받고 건강한 음식 먹으면 이겨낼 수 있다며 할아버지의 성격대로 원칙적이고 정석적인 관리와 함께 투병 생활을 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생활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듬해 영영 우리 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의 행동은 틀린 적이 없었기에, 바보 같지만 암이라는 난관도 극복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아버지 또한 평범한 한 ‘인간’이었다고, 성년의 날 이후로 난 또 한 번 느꼈다.

할아버지가 떠난 지 이번 달로 정확히 4년이 지났다. 한창 무더운 여름에 고생하셨던 모습, 그 좋아하던 수박을 잘 못 드셨던 모습이 기억에 선명해 아직도 문득 눈물이 고이곤 한다. 가장 애교 많이 부리고 귀여운 손녀딸이었어야 할 시기에 그러지 못했던 게 참 많이 죄송스럽다. 그렇기에 지금 할아버지가 더 그립고 애틋하다. 그 죄송함과 그리움을 이 짧은 글로나마 할아버지께 전달해본다.

손녀 백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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