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안 인터뷰-권오준>“코로나 탓 全산업 위기… ‘대기업은 지원 필요없다’ 인식 바뀌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지난달 31일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김동훈 기자

권오준 前 포스코 회장

경제침체 속 기업 존폐 기로
위기 넘을 투자 장려 나서고
산업별 새 전기 만들어줘야

철강 등 구조개편 시급한데
정부선 전혀 신경 안쓰는 듯
美처럼 2차가공업 재편돼야

본명 외 ‘철우’란 이름 있어
말 그대로 ‘철은 내인생 자체’
책 쓰다보니 ‘철 문명사’ 돼

“철강업계를 비롯해 한국 산업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고, ‘대기업이 하는 일은 지원해줄 필요 없다’는 정치권의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은 지난달 3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사태 이후 철강업 등 우리나라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산업구조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전 회장은 포스코에서만 32년을 보내며 회장 자리까지 올랐고, 지금도 포스코 자문역으로 철강업계에 몸담고 있는 업계 최고 수준 전문가다. 지난 6월에는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철의 역할, 철강산업의 과거·현재·미래까지 망라한 교양서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를 펴내기도 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을 지내 산업 전반에 대한 풍부한 이해도 갖추고 있다.

―철강산업 전반이 위기에 빠져 있는데, 코로나19 여파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코로나19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백신이 가까운 시일 안에 나오기도 힘들 것 같다. 앞으로 1년은 상당히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다. 세계 경제가 죽어가니까…. 세계화 추세도 퇴조하고 있다. 또 철광석의 경우 글로벌 3사가 시장의 70∼80%를 장악하고 있어 시장 상황과 철광석 가격이 연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포스코도 호주 로이힐에 투자한 것이다. 철강제품 가격은 내려가는데 원료 가격은 오르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포스코는 절반 이상이 고급 제품이어서 잘 버티고 있는 편이다.”

―수요산업이 어려워서 철강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최근까지 자동차 생산이 많이 떨어져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금방 판매가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에 따라 철강 공급도 늘 것으로 예상한다. 공유경제 시대에 자동차 소유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다고 해서 자동차 생산이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개인 소유의 차는 줄어드나, 공유업체가 자동차를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역발상을 해보자면,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기존에 차를 타지 않던 사람도 차를 쓰게 된다. 운전을 못 하던 사람들이 차를 갖고 남해로 여행을 가는 등 그런 새로운 수요가 상당히 늘어날 것이다.”

―국내 철강업의 생존·발전을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철강산업 구조개편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 철강업 구조는 고로 업체, 2차 가공업체, 전기로 업체가 있다. 전기로 제강업체는 고철을 이용해 제품을 만드는데, 고철은 가격이 비싸다. 또 고철은 불순물이 많은데, 전기로로 완전히 제거하기 힘들다. 2차 가공업체는 포스코 등에서 만든 열연코일, 냉연코일, 슬라브 등 제품을 갖고 가서 가공만 하는 업체다. 이런 압연 전문 업체는 미국·유럽에서도 사라져 고로 업체와 합쳐지는 추세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아 있다. 철강산업 전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런 구조가 빨리 정리돼야 한다. 이걸 정부가 나서서 정리, 구조조정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그런 쪽으로는 신경을 전혀 안 쓴다. 우리 철강업 경쟁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철강업 스마트화를 완성해야 한다.”

―산업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기했는데, 4차 산업혁명 시대로 갈수록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무조건 현재 산업의 고용을 유지하라는 정책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산업구조에서도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국가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창출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해줘야 하는데, 그런 게 약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참으면서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건 잘 안 하잖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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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과 경총 등 양대 경제단체 부회장을 지냈다. 코로나19로 세계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투자가 많이 일어날 수 있게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지금 철강뿐 아니라 모든 산업이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할 시기다.”

―구조개편과 관련, 환경 규제 강화가 철강산업의 변화를 강제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철강업 하면 공해산업으로 생각한다. 물론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 석탄을 사용하는 한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등 탄산가스는 나온다. 그런데 철을 안 쓰면? 알루미늄을 쓰면 탄산가스가 5배, 시멘트를 쓰면 10배는 더 나온다. 플라스틱은 완전 화학물질이다. 철이 상대적으로 환경친화적인 것이다. 철은 100% ‘리사이클링’된다. 그럼에도 공해물질을 내뿜는 것은 사실이니까,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낼 때 탄산가스가 안 나오게 하는 제강법에 대한 고민으로 나온 게 수소환원 제철기술이다. 광석은 철과 산소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산소를 떼어내야 철이 된다. 석탄으로 떼어내면 탄산가스가 나온다. 수소를 이용해 떼어내면 물이 나오고, 물은 무공해다. 그런데 엄청나게 많은 수소가 필요하다는 게 문제다. 또 수소환원은 흡열반응이라, 외부에서 열을 주지 않으면 반응하지 않는다. 열은 전기에서 가져와야 한다. 이 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석탄을 쓰면 또 탄산가스가 나온다. 태양전지, 풍력발전으로는 아직 경제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결국 가격이 올라가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과도기적으로라도 원전을 이용하면 좋을 텐데. 원전은 탄산가스를 내뿜지도 않고.

“정확한 지적이다. 원전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우리나라는 원전을 못 쓰게 하고 대안도 없이 원전을 닫아버린다고 하니까…. 핵폐기물 문제는 기술이 발달해서 상당 부분 해결되기도 했고, 나중에는 방사선이 아예 안 나오는 기술도 결국 개발될 텐데.”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은 없나.

“유럽연합(EU)은 바다에 풍력발전소를 엄청 지어 거기서 만든 전기를 수소 생산에 필요한 열로 전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소환원 제철기술 개발을 포스코가 혼자 해왔다. 정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보려고 포스코 회장 재임 때 그렇게 노력했는데 번번이 정치권 논리에 걸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떨어졌다. 이런 사업은 사실 공익사업인데, 탈락시키는 이유가 ‘대기업이 연구하는데 왜 나라에서 돈을 지원해주느냐’는 거다. 다른 나라는 오히려 정부가 주축이 돼서 하는데, 기업이 알아서 시작한 것을 도와만 달라는 데도 거부당했다. 최근에야 정부 프로그램으로 포함됐다.”

―한국 철강협회장도 지냈는데, 한국 철강업의 경쟁력은 어느 수준인가.

“생산량으로는 세계 5∼6위 정도 된다. 물론 그걸로만 얘기하면 안 되고 질을 따져야 한다. 질은 가격경쟁력과 품질이다. 그런 면에서 포스코는 세계 1위가 돼 있다. ‘월드스틸다이내믹스(WSD)’에서 20개 항목에 대해 평가해 경쟁력 순위를 매기는데, 지난해 포스코가 10년째 1위를 했다. 종합경쟁력도 1위고, 특히 기술 부문은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2018년 4월, 포스코 회장 임기가 2년이나 남아 있음에도 사임했다. 포스코는 분명 공기업이 아니고 민간 기업인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 취급을 하는 구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내가 대답할 사안이 아닌 것 같다.”

―저서의 맺음말 제목을 ‘철과 함께 한 삶의 궤적’으로 붙였던데, 권 전 회장에게 철은 어떤 의미인가.

“본명 외에 철우(鐵宇)라는 이름이 하나 더 있다. 갓난아기 때 고열로 사경을 헤맨 적이 있는데, 할머니께서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한 후 지어진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포대기 속에서 며칠 동안 젖도 먹지 않고 힘들게 숨을 쉬던 내가 다음 날부터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몰라보게 건강해져 청·장년기까지 잔병 없이 지냈다. 지금도 그 이름을 호(號)로 쓰고 있다. 또 고향인 경북 영주에 철탄산(鐵呑山)이라는 산이 있는데, 그 산자락에서 뛰어놀며 자랐으니 철의 기상이 몸에 깊이 배어들었을 것이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박사 학위 연구 주제로 철을 선택한 이후 40여 년간 철은 내 인생 자체였다. 포스코 연구원으로서 연구결과를 실용화하기 위해 제철소 현장을 뛰어다녔고, 기술 총수로서 최고 수준의 고유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힘썼다. 경쟁력이 높은 외국 철강사와의 교류도 활성화했다. CEO로서는 회사의 종합 경쟁력을 국내외 타 철강사보다 더 높일 수 있는 총합적 경영 혁신활동에 매진했다.”

―제철소 건설 신문기사를 보고 전공을 금속공학으로 정했다던데.

“원래는 대학 전공으로 기계공학을 염두에 뒀는데, 좋은 기계를 만들려면 좋은 소재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하던 차에 종합제철소 건설 소식을 듣고 철강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당시에는 산업화의 초기 단계로 철강소재산업이 태동하는 시기였는데, 선구자로 철강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된다면 학문적·기술적 성과를 통해 명예와 지위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직업 안정성도 있고 수입 측면에서도 좋을 거란 생각도 솔직히 있었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철강회사에 들어가지는 않고 국책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유학을 갔는데, 우연한 기회에 포스코와 인연이 닿아 철강사에 입사하게 됐다.”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는 철에 대한 교양서다. 보통 기업인이든 정치인이든 은퇴 후 자서전 수준의 책을 내는데, 이렇게 방대한 내용을 담은 교양서적을 낸 이유가 무엇인지.

“기업인이 자서전을 내는 것은 너무 흔한 일이라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철이 생활의 필수품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금속 소재임에도, 일반인은 물론 철강사에 근무하는 사람도 철의 본성과 철이 인간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참고할 만한 책자도 없어 이에 대한 저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모자라는 책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후배들이 보완해 더 충실한 내용으로 저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했다. 철의 기원에서 시작해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이 부분은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다. 처음부터 철의 문명사를 쓴다고 인식한 것은 아닌데, 책을 쓰면서 욕심이 커지게 됐고 이에 따라 기술, 문명, 전쟁과의 연계를 비롯해 문화, 사상까지 망라하는 내용으로 저술이 이뤄졌다.”

AI 적용돼야 ‘스마트 팩토리’… 정부 구축 프로그램은 ‘자동화’일 뿐
‘스마트化’ 지론

―스마트화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실제로 최근 포스코를 보면 스마트 팩토리를 강조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그 전에는 수동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하게 됐다. 초기의 기계는 사람 손으로, 혹은 말(馬)의 힘으로 돌렸다. 그 뒤에는 증기기관이 돌리고, 나중에는 전기 모터가 돌리게 됐다. 공장에서 복잡한 여러 기계의 작동을 제어해야 하는데, 값싸게 또 일관되게 제어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자동화다. 스마트화는 자동화의 다음 단계다. 자동화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하지만, 그 단계에서는 사람이 조건을 넣어줘야 한다. 제철소를 예로 들면, 고로를 작동하기 위해 사람이 데이터를 보고 바람 부는 속도와 온도를 컴퓨터를 이용해 제어하던 것이 자동화다. 스마트화는 고로를 작동하는 최적 온도, 바람 조건을 인공지능(AI)이 저절로 찾아주는 것이다. 우리가 얘기하는 스마트 팩토리는 AI를 썼느냐, 안 썼느냐로 따진다. AI를 쓰려면 빅데이터가 같이 와야 하고, AI로 공장을 제어하려면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제어가 필요하다. 정부에 엄청나게 많은 스마트 팩토리 프로그램이 있다. 대개 중소기업에 적용한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진정한 스마트 팩토리와는 거리가 있다. 대부분이 컴퓨터 시스템만 깔아주는 거다. 자동화 단계를 구축해주면서 스마트 팩토리라고 부르는 셈이다.”


△1950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대 금속공학과 △피츠버그대 금속공학 박사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포스코 유럽연합(EU) 사무소장(상무) △포스코 기술연구소장(전무) △포항산업과학연구원장 △포스코 기술부문장(부사장) △포항공대 이사장 △한국 철강협회장 △포스코 대표이사 회장 △세계철강협회 부회장

김성훈 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