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건축·재개발 壁 더 높인 ‘억지 공급대책’ 실효성 없다

현 정부 들어 22번이나 반복됐던 부동산 대책은 하나같이 공급대책 없는 ‘수요 억제’ 일변도였다. 4일 발표된 23번째 대책은 비로소 공급 방안을 고민하는 등 부동산 시장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의미는 딱 여기까지다. ‘공공참여형 고밀도 개발’을 중심으로 한 구체적 실행 방안들을 보면 대부분이 현실을 무시하고 민간 자율성을 옥죄는 탁상공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번 공급 대책은, 아파트 용적률을 최고 500%로 완화해 50층까지 짓게 한 것을 핵심으로 하고, 공공기관 이전 유휴부지 활용 방안도 함께 담아 서울 등 수도권에 13만2000가구를 추가로 공급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 소유자들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에 대한 트라우마 탓인지 재건축·재개발을 허용한다면서 새로운 규제의 벽(壁)을 더하는 등 ‘억지 대책’으로 끝났다. 공공 재건축(5만 가구)과 공공 재개발(2만 가구) 물량부터 희망 섞인 추정일 뿐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수익률 기준으로 90% 이상을 환수하겠다”고 했다. 재건축·재개발 추동 요인인 개발이익을 없애면 어느 조합이 선뜻 나서겠는가. 무너질 듯한 집에 계속 살든지, 손실을 감수하고 공공 개발에 참여하든지 선택하라는 압박이다. 이미 대형 단지 10곳 중 8곳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데, 당연한 반응이다.

공공재개발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부는 뉴타운 등으로 지정했다가 해제한 지역 재개발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해제 뒤 이미 곳곳에 빌라들이 들어서는 바람에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진 곳이 많다. 주변 환경을 고려하면 태릉골프장은 고밀도 아파트 신축이 아니라 공원화하는 게 옳다.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는 문재인 정부가 서울의료원 강남분원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발상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억지 대책을 내놓고도 여당 인사들의 ‘아무 말 대잔치’는 그칠 줄 모른다. 김진애 의원은 “부동산 값이 올라도 문제없다. 세금만 열심히 내라”고 했고, 양경숙 의원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은 전국 주택 소유자의 3.6%, 주 과세 대상인 다주택자는 1.4%’라고 했다. 증세와 ‘3% 대 97%’ 편 가르기가 속셈임을 자인한 것 아닌가. “부동산은 정치가 아니라 정책인데 정부가 부동산으로 정치를 하려 한다”는 서울시 관계자의 푸념이 정곡을 찌른다. 뉴타운식 개발을 재활성화하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낮춰 주민들이 스스로 주택 공급 및 삶의 질 개선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