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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07일(金)
발밑서 길어낸 문화사… 과거를 캐내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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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랜드│로버트 맥팔레인 지음│조은영 옮김│소소의책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땅속 세상’.
청동기 시대 매장지부터 그린란드 빙하·북극해 바다동굴까지…
6년간의 지하세계 탐사를 통해 인류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보르헤스·에밀 졸라 등 문학가부터 철학이론·예술작품 등을 통해
살아 꿈틀대고 있는 지하 세계가 인간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도 분석한다.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면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가 나온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흔한 말장난이었지만, 우주나 바다만큼은 아니어도 땅속이 그에 버금가는 신비한 세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신비한 세계를 탐사해 “지구 역사가 현재에서 한없이 멀어지며 어지러울 정도로 확장된 공간”인 심원의 시간(deep time)과 연결하며 인류가 살아온 자취를 추적한 책이 출간됐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자연 작가 로버트 맥팔레인의 ‘언더랜드’(Underland)다.

언더랜드는 말 그대로 우리가 딛고 있는 “발밑의 세상”이다. 언더랜드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일이 반복된다. 역사 이래 인간이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언더랜드를 탐사하기 위한 저자의 발길은 분주했다.

무려 6년여 동안 청동기 시대 매장지와 “보이지 않는 도시”라 칭한 카타콤, 그리고 그린란드 빙하와 북극해 바다 동굴 등을 직접 두 발로 훑었다. 그런가 하면 노르웨이 지하 세계에 숨겨진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환경을 훼손하는 대형 석유회사들, 핀란드 남서부 올킬루오토섬에 건설 중인 핵폐기물 처리장 등을 답사하며 오늘 우리 시대가 인류세, 즉 인간이 지구에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저자가 보기에 인간은 언더랜드를 대략 세 가지 방법으로 이용해왔다. 은신처, 생산지, 처리가 그것이다. 은신처는 타임캡슐을 생각하면 쉽다. 우리는 오늘의 기억을 땅속에 묻고 몇십 년, 심지어 몇백 년 후에 꺼내보려고 한다. 그렇게 소중한 물건도, 메시지도 언더랜드에 묻는다. 타인에게 들키지 않고 쉽게 지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동묘지도 보관(은신처)의 한 방법이었다. 18세기 후반 파리가 확장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죽은 자들”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있던 공동묘지에 묻힌 “죽은 파리지앵들이 산 파리지앵들을 압박”하면서 대안이 필요했는데, 건축가 샤를 악셀 기요모가 그 중책을 맡았다. 그는 채석장 공동(空洞)을 시체들의 새로운 안식처, 즉 카타콤으로 만들었다. 이후 카타콤을 숭배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아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카타필(Cataphile)도 늘어났다. 현대의 카타필들은 채팅방과 웹사이트를 이용해 그 활동 범위를 더더욱 넓히고 있다.


사실 언더랜드가 인간에게 가장 각광받는 이유는 생산지 역할, 그중 석유나 석탄 등 인류의 역사를 바꾼 광물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석유보다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의 언더랜드에 더 주목하는 듯하다. 고대의 동굴벽화들은 당대 생활상을 담아낸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각종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보고(寶庫) 역할도 담당했다.

노르웨이 남쪽 네뢰위에서 북쪽 로포텐 제도까지 총 800㎞에 걸쳐 열두 군데에 이르는 해안동굴에는 저자가 “춤추는 붉은 형상” 혹은 “붉은 댄서”라 명명한 벽화들이 산재해 있다. “세계 가장 혹독한 장소에서 창작”된 벽화들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죽은 자가 반대편에서 돌에 손을 올리고 산 자의 손과 손바닥, 손가락과 만난다.”

성서를 보면 보물을 감추기에 좋은 곳이 언더랜드다. 오늘날에도 어떤 졸부들은 현금을 땅속에 묻어둔다. 하지만 인간은 좋은 것을 묻기보다 나쁜 것을 한사코 더 많이 묻으려고 한다. 저자 표현에 따르면 “물려주길(보관) 바라며 묻기도 하고, 망각하길(보관) 바라며 묻기도” 하는데, 현대에 이르러는 망각을 위한 방편이 더 힘을 얻는다. 핵폐기물이 대표적이다. 핀란드 온칼로는 “보트니아만 450m 아래 19억 년 된 바위”에 건설됐는데, 앞으로 10만 년 동안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핀란드어로 ‘동굴’ ‘숨겨진 장소’를 뜻하는 온칼로는 인간의 미래를 위해 지어진, 그러나 인간의 미래를 가장 불안케 하는 요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언더랜드’는 역자 조은영의 말마따나 “장르 불문”이다. 언뜻 보면 땅속 세상을 답사한 자연과학책으로 보이지만, 저자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위시해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에밀 졸라, 코난 도일, 알베르 카뮈 등의 소설 속 문장들이, 그런가 하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구도 적재적소에 덧붙인다. 바타유, 비트겐슈타인 등의 철학이론과 각종 예술작품도 숱하게 언급된다. 한마디로, 땅속 세상을 통해 읽어낸 세계사이자 문화사라고 할 수 있다. 언더랜드는 여전히 우리 발밑에서 “살아 꿈틀대며”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혹시 인간의 미래를 알려주는 것은 아닌지, 귀 기울일 때다. 520쪽, 2만8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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