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소아병동의 아이는 어떤 꿈을 꿀까

건강해진 날 |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마쓰모토 다케시 글·엄혜숙 옮김 | 미디어창비

기분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날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에도 유효기한이 있다면 그 경계를 시험하는 것 같은 날들이다. 아침마다 10시 무렵에 뉴스를 확인하면서 오늘은 좀 좋아졌을까 살피는 일도 일과가 돼 버렸는데 한결같은 표정과 음성으로 6개월이 넘도록 상상초월의 책무를 감당하는 분들을 보면서 한 번 더 힘을 모으려고 마음먹는다. 이럴 때 다 같이 읽으면 반짝 기운이 나는 그림책이 나왔다.

‘건강해진 날’은 제목만으로도 뭉클하다. 지금도 소아 병동에는 입원과 퇴원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있지만 아픈 어린이에 대한 그림책은 드물다. 이야기의, 꿈의 사각지대다. 그런데 우리들의 주인공 ‘치이’는 아파서 입원했거나 어딘가에 격리 중이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종이접기, 오리기, 그리기도 아주 잘하게 됐지만 엄마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아직 이 방에서 나가면 안 된다고 말한다. 놀던 것만 가지고 놀다 보니 아무 재미도 없어져 버린 장난감이 덩그러니 바닥에 있다. 끝나지 않는 투병의 초조함을 나타내듯 시곗바늘만 재깍재깍 돌아간다. 그러다가 치이는 꿈처럼 방을 빠져나간다. 희끄무레한 방에 엎드려 있을 때와 달리 두 갈래로 야무지게 머리를 묶고 빨간 운동화도 신었다. 배를 타고 나가 새로운 계절의 땅에 내렸는지 챙이 넓은 모자도 꺼내어 쓴다. 그러나 상상은 현실을 회복시키지 못한다. 꿈에서 깬 치이는 다시 열을 재야 했고 종일 나가지 못한 채 또 하룻밤을 자야만 한다.

2020년을 예언한 것 같은 이 책은 나온 지 40년이 넘었다. 이와사키 치히로가 세상을 떠나고 3년 뒤인 1977년에 아들 마쓰모토 다케시가 어머니가 남긴 그림으로 ‘건강해진 날’을 만들었다. 2006년에 손을 보았으나 오래된 이야기인 셈이다. 이와사키는 어린이의 서정성이 무엇인지 예술적 극치를 경험하게 하는 작가다. 그가 그린 어린 인물들은 약한 존재의 한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아쉬운 마음만은 감추지 않는다. ‘작은 새가 온 날’에서 치이는 사랑하는 새를 숲으로 돌려보낸다. ‘포치가 온 바다’의 치이는 사랑하는 친구 포치가 온다면 헤엄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편지를 쓴다.

‘건강해진 날’로 그간 재출간된 책을 포함해 시리즈 일곱 권이 완간됐다. 각별히 의미가 있는 마지막 책이다. 이와사키의 책을 읽으면 책을 읽고 마음이 따끔거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치이는 어떻게 됐을까. 친구에게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두 손을 모은다. 모두 당연히 건강해질 것이다. 32면,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