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치솟는데 ‘고가주택=9억’… 정부 고집에 국민만 피해

서울 아파트 중간값 됐는데
투기 억제이유로 개정 미뤄
“현실과 괴리… 차라리 없애야”

정부가 시장 논리를 무시한 채 투기 억제 의지만을 강조한 나머지 부동산 현실과 동떨어진 법적 기준을 고집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 원을 돌파했지만, 법에서 정해진 고가주택 기준은 12년째 9억 원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각종 세금 납부를 비롯, 주택연금 등 갖가지 정책 역시 ‘고가주택 = 9억 원’을 기본으로 설정된 탓에 현실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소득세법 시행령(제156조)에 따르면, 고가주택 기준금액은 2008년 시가 6억 원에서 시가 9억 원으로 조정된 후 12년째 그대로다. 당시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4억8044만 원이었지만, KB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9억2787만 원이다. 아파트 중위가격은 2배 가까이로 폭등했지만, 고가주택 기준은 멈춰 있던 셈이다. 정부는 고가주택 기준이 심리적 저항선이란 의미가 있어서 기준을 높인다면 ‘투기 억제’라는 정책 방향이 후퇴할 수 있다는 논리 등을 펴며 개정을 미뤄왔다. 이미 서울시 부동산 중위가격이 9억 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이 같은 기준은 ‘빛 좋은 개살구’란 말도 나온다.

10일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통화에서 “정부가 공시가격을 매년 올리는 것처럼 세금 감면, 대출, 그리고 종부세 등의 기준이 되는 고가주택 개념도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현실과 괴리가 큰 고가주택 개념을 차라리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법이 부동산 가격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주택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령층은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주택연금은 소득세법상 고가주택 기준을 그대로 따라 주택 가격이 9억 원을 초과하면 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택연금은 집은 있는데 월 소득이 부족한 만 55세 이상 은퇴자 등에게 다달이 소득이 생기고 주거 불안까지 없앤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주택연금은 60세 이상 가구의 전체 자산 중 주택이 차지하는 비율이 43.5%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유용한 상품이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6월 기준 누적 7만6100명에 달하며 정책 수요가 입증됐지만, 부동산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기준이 제동을 걸고 있는 셈이다. 부동산 가격이 치솟자 주택연금 가입 상한선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입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으로 바꾸면 시가 13억∼15억 원의 주택이 주택연금 가입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이 경우 가입 대상이 약 12만 가구로 늘어난다고 추산했다.

종부세 과세 표준이 9억 원(1주택자 기준)인 것 역시 ‘9억 원 = 고가주택’이라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 부동산 시장을 고려하면 15억 원 정도로 상향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정우·민정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