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산사태에… “5년 가꾼 인삼밭이 쑥대밭 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0일 오후 폭우로 충남 금산군의 태양광판(흰 점선 표시 부분)이 설치된 가파른 산지에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면서 토사가 경사지 아래 인삼밭에 쏟아져 나와 있다. 나주예 기자

전국 태양광 시설 12곳 산사태

금산 인삼밭에 토사물 흘러내려
하얗게 뿌리 드러낸채 썩기 시작

태양광 업체와 허가 내준 군청
자연재해 빌미로 책임 떠넘겨

“태양광 시설 때문에 이제 인삼 농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어요.”

중부지방에 집중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호우 피해로 인해 산지를 깎아 만든 일부 태양광 시설에서 토사물이 유출되면서 태양광 시설 아래 농가에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 농민 가운데서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태양광 업체를 상대로 소송도 추진하고 있다.

10일 오후 충남 금산군 동곡리에 위치한 박서현(여·38) 씨의 약 2000평 규모 인삼밭은 인근 태양광 시설에서 흐른 토사물로 뒤덮여 있었고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인삼 뿌리들이 곳곳에서 썩고 있었다. 인삼은 파종 후 최소 7∼8년간 삼을 키워야 상품 가치가 있으나, 4∼5년간 키운 인삼을 토사물이 모두 덮쳐버렸고 예상 피해액은 5000여만 원에 달했다. 박 씨는 “2018년 밭 위에 있는 산 나무를 다 깎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산사태 방지를 위한 축대나 배수로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탓”이라며 “태양광 시설이 생긴 후 벌써 세 번째 피해지만 군청과 업체 어느 곳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강원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에 있는 한 태양광 발전시설은 지난 3일 축대벽이 무너지고 배수로가 파묻히면서 토사가 마을 입구까지 흘러내려 주민들이 피해를 봤다. 이곳은 지난 2018년 8월 집중호우 당시에도 산사태가 발생한 시설이다.

금산군 선원리 마을 주민들은 태양광 시설 업체를 상대로 소송도 준비 중이다. 김경수 선원리 이장은 “지난해부터 군청에 항의방문을 하고 진정민원을 계속 넣었지만 제대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 주민 손모 씨는 “태양광 시설 때문에 더 이상 인삼 농사를 짓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산지를 다 깎아 생긴 일인 만큼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산군의 한 태양광 업체 관계자는 “최대한 토사 유출이 안 되도록 설계했지만, 폭우로 인한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다”며 “군청이 파악한 농작물 피해 규모에 따라 보상금을 주겠지만, 농민들의 요구대로 다 지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금산군청 관계자는 “이미 준공이 끝난 시설에 대해 시정 요구를 할 권한이 없다”며 “업체와 농민이 합의하도록 조정하는 역할만 할 수 있다”고 했다. 11일 산림청에 따르면 집중호우가 내린 이달 들어 전국 태양광 발전시설 12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김석우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된 1만2721곳이 잠재적인 산사태 위험에 노출된 것과 같다”고 말했다.

금산=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 철원=이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