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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지식카페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12일(水)
고조선 붕괴의 충격… 유라시아 대륙 3단계 민족대이동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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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만조선의 기술로 제작된 금제 허리띠 고리. 용틀임하는 여섯마리의 용 도안.(BC 1세기~ AD1세기,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 출토, 국보 89호 지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9) 고조선 고대연방제국의 해체

연방제국 후국족들 서방이동 감행… 고조선문명 계승·변용시켜 새 정착지에 적응
고조선 문명 요소들 발칸반도·핀란드·갈레리아 지방까지 확산…우랄·알타이어족 생겨


고조선 고대연방제국은 고조선 문명을 형성·발전시키면서 BC 4세기 말까지 크게 발전했다. 고중국의 서변 국경은 고죽, 불령지, 불도하, 산융(Huns·흉노) 등이 지금의 중국 베이징(北京)을 지나가는 영정하(永定河)를 국경으로 지키면서 크게 융성했다. 그러한 고조선이 BC 3세기 초에 연(燕)의 장군 진개(秦開)의 치밀한 기습공격을 받고 서변 1000여 리의 영토를 잃게 됐으며, 서변의 고죽국도 연에 멸망하게 된다. 뒤이어 진(秦) 시황이 BC 2세기에 난하 부근 갈석산(碣石山) 아래부터 북서쪽으로 조양(造陽)·양평(襄平)을 지나는 연의 장성을 연결해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음으로써 고조선의 기병부대가 구토를 회복할 수 있는 기마로가 차단됐다.

일찍이 연의 진개에게 뺏긴 1000여 리 옛 고조선 땅에 남아 있던 조선족 후예 위만(衛滿)은 BC 209년경 피란민 1000여 명을 이끌고 후조선에 피란해 준왕(準王)에게 투항했다. 준왕은 위만을 신임해 고중국 쪽 서변 국경 부근에 그를 정착시키고 국경을 방어하게 했다. 위만이 국경을 잘 지키자 준왕은 그를 후왕에 임명했다. 지금의 창여(昌黎)현 험독(險瀆)이 위만의 주둔 도읍지였다.

하지만 BC 195년 고중국 한(漢)에서 연왕(燕王) 로관이 반역해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나 한의 중앙군이 로관을 토벌하러 출동하자, 위만은 이를 기회로 후조선 준왕에게 “한의 대군이 10개 길로 쳐들어오니 내가 가서 왕궁을 지키겠다”고 거짓 보고해 승낙을 얻었다. 위만은 준왕이 있는 왕검성(王儉城·지금의 랴오둥(遼東)반도 개평 부근)에 대군을 이끌고 입성한 후, BC 194년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고 고조선 왕이 된다. 고조선의 후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위만 왕조’가 수립된 것이다. 후조선 준왕은 따르는 대신과 궁인을 데리고 바닷길로 남쪽 진국(辰國, 震國)에 피란해 마한 왕이 됐다가 사망하고, 진왕계가 복귀했다. 위만은 속임수로 군사정변을 일으켜 위만 왕조를 세우고 조선 국호를 그대로 사용했으나, 고조선 고대연방제국은 실제로 큰 타격을 입고 급속히 약화돼 사실상 해체됐다.

첫째, 고조선 주민 중 예족은 끝까지 위만에게 불복했다. 위만은 속임수로 ‘정변’을 일으켜 후조선 왕좌를 찬탈했으니, 당시 예족 후왕의 입장으로서는 위만을 제왕으로 봉대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심각한 갈등 후, BC 128년 예군(濊君) 남여(南閭)는 28만구(萬口)의 예족을 이끌고 한(漢)에 투항해버렸다. 한은 이를 맞아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해 남여에게 줬다가 2년 후에 이를 폐지했다. ‘한’에의 투항을 거부하고 후왕 남여를 따라가지 않은 예족은 동쪽으로 이동해 동예(東濊)로 호칭됐다.

둘째, 고조선 후국 진반(眞番)과 임둔(臨屯)의 위만조선에 대한 반란이다. 이들도 예군 남여와 동일한 이유로 위만 왕조에 불복했으나, 한에 투항하지 않고 독자적 반란으로 대응했다. 위만은 진반과 임둔의 반란에 대해 무력으로 이를 진압한 후 회유했다.

셋째, 정통성과 명분이 높은 왕검성 강동 아사달(朝鮮)지역의 불복이다. 연의 진개에게 빼앗겼던 고조선 서변 땅 유민 출신 위만의 왕위 찬탈에 대해 끝내 불복한 강동 아사달지역 행정책임자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은 추종자 2000명을 거느리고 위만 왕조에 반대해 남쪽 진국에 투항해 가버렸다.

넷째, 고조선 고대연방제국 종래의 모든 후국이 위만 정변의 불법성에 반감을 갖고 연맹을 포기해 부여·옥저·구려·진·동예·읍루·실위·흉노 등이 사실상 각각 독립 고대국가로 돼버렸다.

다섯째, 결국 고조선 고대연방제국은 2800년 동안 장기지속해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고조선 문명권으로 남아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BC 195년 정당성이 결여된 속임수 군사 정변으로 세워진 위만 왕조의 수립을 계기로 사실상 해체된 것이다. 고조선 후국들은 각각 독립국가로 분립해버리고, 때로는 적대적이기도 했다.

고조선 위만 왕조의 위만은 군사정변의 정당성 결여와 취약성에도 불구, 개인적 능력과 정략으로 수공업과 농업을 장려하고 군사력 강화에 주력하며, 한 및 흉노와의 외교에도 힘써 이 시기는 한때 안정되고 부강했다. 그러나 손자인 우거왕(右渠王) 시기 BC 109년에 위기가 닥쳐왔다. 한 무제(武帝)가 ‘천하통일’을 꿈꾸며 위만 고조선 침략 정복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 무제는 BC 141년에 즉위하자 흉노와 돌궐로부터 기마와 철제무기 제조술을 도입해 대군을 양성하더니, BC 111년 남방 원정을 단행해 양쯔(揚子)강 이남 월족을 평정해서 10개 군을 설치하고 만리장성 이남 중국의 통일을 완성했다. 이어 한 무제는 문제(文帝, 재위 BC 180∼BC 87) 때부터 꿈꿔오던 고조선 병탄을 위해 화평파의 반대를 눌러가며 육군과 수군의 대군을 동원해 BC 109년에 고조선을 공격했다. 큰 전투는 3차례 있었다.

1차 전투는 BC 109년 한 무제의 좌장군 순체(荀체)가 지휘하는 한나라 공격 육군과 위만조선의 전진 방어군이 패수(대능하 하류) 서편에서 격전을 벌여 한나라 침략군이 참패하고 위만조선 방어군이 대승리를 거둔 전투였다. 2차 전투는 한 무제의 군대가 왕검성을 포위하고 연속 공격했으나 우거왕의 수성군이 잘 방어해 어느 편도 승리하지 못한 지리한 전투였다. 3차 전투는 통합된 한 무제 침략군의 포위 총공격과 항복 회유 공작에 맞서 우거왕이 방어전을 용감히 전개하는 도중, 우거왕의 조정 안에서 한 나라의 회유 공작에 넘어간 반역자가 암약해 우거왕을 암살하고 왕검성을 함락한 전투다. 우거왕은 BC 108년 여름까지는 왕검성을 잘 방어했다. 한나라 순체는 전투에서 승리가 어려워지자 위만 조선 신하들을 회유한 암살공작을 자행했다. 이에 우거왕 신하 이계상 참(參)이 사람을 시켜 우거왕을 암살하고 한나라 순체의 군대에 항복하는 대반역사건이 일어났다. 우거왕이 죽으면 왕검성이 함락되리라 예견됐는데, 우거왕의 아들 장(長)까지 항복했음에도 뜻밖에 죽은 우거왕의 대신 성기(成己)가 군사지휘자가 돼 끝까지 방어전을 전개했다. 무제의 좌장군 순체는 항복한 우거왕의 아들 장과 로인(路人)의 아들 최(最)를 보내 성기를 암살했다. 위만조선군은 끝까지 저항했으나 총지휘자를 잃고 중과부적으로 패전해 왕검성은 함락되고, 고조선 위만 왕조는 BC 108년 가을에 3대 86년의 단명으로 멸망했다. 위만 왕조의 멸망으로 고조선 국가도 BC 108년 사라지게 됐다.

한 무제의 침략군은 결국 왕검성을 점령했으나 전투 자체는 패전이 거듭된 졸전이었고, 비열한 암살공작들이 난무한 수치스러운 전쟁이었다. 한 무제는 침략군이 귀환하자 장수들에게 상을 준 것이 아니라 졸전을 책망해, 좌장군 순체를 참형에 처했다. 무제는 위만조선의 직령지에 한(漢)의 4개 군(郡)(낙랑군, 진반군, 임둔군, 현도군)을 설치하고, 그 주위 이전 고조선 후국들과의 병탄전쟁은 더 이상 힘에 겨워 단념했다.

이에 과거 고조선 연방제국의 후국들은 각각 독립국가가 돼 한(漢)의 침략과 4군을 퇴치하고 고조선의 옛 강토를 회복하기 위해 격렬한 저항과 투쟁을 전개했다. 이에 밀린 한나라는 한사군 설치 16년 후(BC 82년)에는 진반군과 임둔군을 폐지했고, 그 후 낙랑군도 북방으로 밀려 이동시키지 않으면 안 됐다.

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침략해 고조선이 멸망하기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은 2800여 년 장기지속의 평화체제가 지배한 문명 지역이었다. 그러나 BC 108년 고조선의 멸망은 이 평화체제를 근본적으로 붕괴시켰다. 그 붕괴의 큰 폭발적 충격이 ‘진원’이 돼 수세기에 걸쳐 전체 유라시아 대륙에 3차례의 민족대이동 파동이 일어났다.

1단계 민족대이동의 파동은 옛 고조선 고대연방제국 내의 민족대이동의 직접적 파동이었다. 한·맥·예족 계열의 진(辰)·부여·옥저·고죽 유민·구려·양맥 등 후국들은 각각 독립국가로 고조선 민족 그대로 남은 채 한 4군을 몰아내기 위한 강렬한 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후국 구려가 고구려로 발전하면서 한 4군을 맹렬히 공격해 결국 고구려는 낙랑군까지 몰아내고 고조선의 옛 강토를 거의 모두 회복했다. BC 1세기경 한반도와 만주·연해주에는 부여·옥저·고구려·백제·신라·가라·탐라 등을 중심으로 신채호 선생이 이름 붙인 ‘다국시대’가 열리게 됐다. 다국(多國)은 각각 자기의 주도로 통일국가를 완성하려고 치열한 상호 경쟁을 시작했다. 한편 후국들 가운데 기마유목민족인 실위족(원 몽골족)과 읍루족(원 만주족)은 고조선 계열에서 분리 독립해 독자적 민족 형성의 길을 가게 됐다. 또한 고조선 연방제국의 고조선·진국 사람들과 무장들이 바다를 건너 일본열도에 들어가 그 영향으로 일본에서도 고대국가(야마토 왕국)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2단계 파동은 BC 1세기부터 AD 2세기까지 약 300년 동안 고조선 연방제국의 후국족 일부가 고중국 북방에서 한 제국에 대반격을 감행해 결국 한제국을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지방에 이른바 5호16국(五胡十六國)을 세워 활동한 단계다. 여기서 5호(五胡)는 고조선 후예에 해당하는 흉노(匈奴·산융)·선비(鮮卑)·오환(烏桓)과 한의 서변에 있던 저(저)와 강(羌)을 가리킨다. 이들은 한(漢, 前漢)을 멸망시킨 자리에 자기들의 국가를 수립하고, 수(隋)의 발흥과 통일 때까지 약 200년간 중국의 화북지방을 지배했다.

3단계의 파동은 옛 고조선 후국족의 일부가 수·당의 발흥과 통일로 더 이상 중원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로 민족이동을 감행해 새 정착지에 머물렀다가, 또 서방으로 더 이동해 유럽지역까지 들어간 단계다. 고조선 연방제국 안의 유목기마민족 중에서 주로 산융·불령지·불도하·유연·정령(돌궐)·위구루 등이 서방으로 이동해 처음에는 중앙아시아의 발카시호, 아랄해, 카스피해, 흑해 사이의 선주민 북부지역에 정착했다. 이어서 그들은 다시 더 서방으로 민족이동을 감행해 발칸반도와 유럽지역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흉노족이 AD 375년경 판노니아 평원의 게르만족인 동고트족을 기마부대로 몰아내고 이곳을 새 정착지로 삼은 것이 도화선이 돼 결국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유럽 전역에서 다시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게 됐다. 유럽의 AD 4세기 민족대이동도 추적해보면 BC 108년 고조선 연방제국의 붕괴가 진원이 된 것이었다.

옛 고조선 연방제국의 후국족들은 고조선 문명을 분유하면서 서방이동을 감행해 새 정착지에서도 고조선 문명을 간직한 채 새 환경에 적응하고 새 나라들을 세우면서 고조선 문명을 계승·변용시켜 각각의 민족문화를 형성·발전시켰다. 그 결과 고조선 문명의 요소들이 유라시아 대륙의 중앙아시아와 서쪽 발칸반도, 중부유럽 일부와 북부 에스토니아·핀란드·갈레리아 지방까지 확산된 것이다. ‘우랄·알타이어족’의 형성도 이러한 고조선 문명권인 서변 기마민족의 민족대이동 결과와 관련된 것이다.


■ 용어설명

우랄·알타이어족 :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이 유사성이 있음이 밝혀져 어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학설하에 사용하는 명칭. 터키에서 중앙아시아와 몽골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이르는 지역에 분포하는 어족으로 몽골어·터키어·한국어·일본어·만주어·핀란드어·헝가리어·퉁구스어 등이 속한다. 19세기 중반 핀란드 언어학자 M A 카스트렌이 두 어족 간 유사점이 인도유럽어족에서처럼 발견되지는 않으나 한 어족이 될 증거가 발견될 것이라며 처음으로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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