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국민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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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사회부장

30년 전 학생운동 세력의 일탈
보수정권은 惡, 미국은 침략국
北 독재엔 눈감고 탈북민 억압

彼我 구분에 헌법과 정의 뒷전
광복절 서울도심 집회 재점화
국민은 주권자인가 하수인인가

‘새벽 5시, 파리는 깨어난다.’ 프랑스 68혁명에서 민중가요처럼 불렸던 자크 뒤트롱의 샹송은 한국으로 치면 87항쟁에서 거리에 울려 퍼졌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격의 노래다. 사변적인 프랑스인답게 파리의 평범한 아침 일상을 읊조리지만 낡은 권위를 깨자는 상징이 됐다.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구호에서 보듯 68혁명은 광장의 대중 시위를 통해 권위주의·전체주의 타파, 반전·반핵, 차별철폐, 페미니즘, 환경보호 운동 등으로 퍼져 나갔다. 광범위한 시민저항의 출발점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미국의 베트남전쟁 반대시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 등으로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20년 가까운 시차가 나지만 군부독재와 호헌철폐로 구제도를 붕괴시켰던 한국 상황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사회는 줄곧 정치권력 주류교체 과정을 걸었다. 한때 ‘386 세대’로 불렸던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 학생 운동권 인사들은 민주화 투사 훈장을 단 채 총선 등을 통해 정계로 잇달아 진출했다. 10일에는 또 한 명이 청와대 권력 이너서클에 합류했다. 동국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최재성 전 의원을 문재인 대통령은 정무수석 자리에 앉혔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이흥구 판사 대법관 임명 제청은 주류교체 완성 단계 진입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 위반 1호 대법관의 탄생으로 기존 체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86그룹에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은 악이고, 미국은 제국주의 침략국가라는 인식의 흔적이 엿보인다. 반면에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문재인 진보정부는 불가침 성역으로 여겨진다. 언제부터인지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요성을 언급하면 집단 돌팔매가 날아들었다. 좌파는 멋지고 세련된 것, 우파는 수구 꼴통, 꼰대라는 포장이 씌워졌다.

‘불문곡직(不問曲直), 옳고 그름을 묻지 마라.’ 86그룹 관점에서 보면 조국과 윤미향 사태에서 드러나듯 사리와 시비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피(彼)와 아(我), 네 편과 내 편이 있을 뿐이다. 전대협 1기 의장이었던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아예 헌법 가치를 대놓고 무시한다. 대북 전단살포에 대해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면, 헌법 정신이 용인하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지난 3일 말했다. 대북전단이 주민 생명을 위협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이 장관은 들이밀고 있다. 또, 개인적 행위와 국가의 주권적 행동도 혼동하고 있다. 북한 체제 비판 전단을 북한에 보내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개인 표현 자유 영역에 속해 있지만, 북한이 대남 접경지역에 방공포와 미사일을 쏘는 것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주권 침해적 도발 행위다. 86그룹은 북한의 3대 세습 독재에 눈을 꼭 감고, 북한을 공존공영할 민족국가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악에 대한 묵인은 그 자체로 악일 뿐이다. 검찰 인사는 또 어떤가. 불의한 인사라는 검사들의 온라인 상소가 빗발치지만, 완전히 귀를 틀어막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잘못하고 있다고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그들은 33년 전 타도를 외쳤던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의 어둠 속으로 스멀스멀 줄을 지어 가고 있다. 스스로가 기득권인 신(新)권위주의 체제로의 회귀다.

‘서울은 깨어나고 있는가.’ 광복절 ‘서울 도심’ 집회에 나가겠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진다. 문 대통령에게 광장은 촛불의 성지였지만, 지금은 문재인 타도가 울려 퍼지는 무대가 되고 있다.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자유연대, 제주4·3특별법폐지시민연대,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광복회 등 주최단체 이름을 대기조차 버겁다. 장소는 광화문 인근에서 종로 거리, 국회의사당 정문과 한국은행 앞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8월 13일에서 15일 사이에 열린다. 보수단체뿐만 아니다. 6·17 부동산 규제 소급적용 피해자모임, 임대사업자협회 추진위원회도 있다.

학생 운동권 인사들은 더 이상 헌신적이지도 애국적이지도 않다. 또 다른 권위주의 특권 집단일 뿐이다. 선과 도덕으로 자신을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 더 지독하고 더러운 부패와 비리, 거짓의 군상들이다. 이미 민주적 제도가 무력화되는 폭정도 시작됐다. 프랑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의 말처럼 대중은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의 손에 쥐어질 때 흉기가 된다. 그들의 개·돼지로 남지 않으려면, 흉기의 하수인이 되지 않으려면 옳고 그름을 당당히 따져야 한다. 광복 75주년을 맞는 지금 국민이 깨어나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