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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14일(金)
‘내 안의 악마를 봤다’… 日병사들의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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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악한 사람들│제임스 도즈 지음│변진경 옮김│오월의봄

농민·의사·지식인이었던 日帝 시민들
‘神國 시스템’에 길들여진뒤 전쟁터서 괴물로 살아
생사람 목을 베고 여성 강간하면서도 죄의식 없어
오히려 쾌락 느끼며 동료와 경쟁의식까지
종전뒤 ‘중귀련’결성해 전쟁범죄 실상 알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5주년을 맞은 현시점까지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는 역사 왜곡과 무시를 이어가고 있지만, 진작부터 가해자로서 자신들의 행위를 증언하고, 속죄하고, 같은 일의 반복을 막기 위해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중일전쟁(1937∼1945년) 당시 상상하기도 어려운 잔학 행위를 저지르고 전범으로 체포된 병사들이다. 난징(南京) 대학살의 가해자이기도 한 이들은 10년간 옛 소련 시베리아 수용소와 중국 푸순(撫順) 전범관리소에서 참회의 시간을 보낸 뒤 귀국, 1957년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를 결성했다. 2002년 사망과 고령화로 해산할 때까지 전쟁범죄의 실상을 알리고 반전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종전 기념일이자 광복절을 앞두고 출간된 ‘악한 사람들’(원제 ‘Evil Men’)은 이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쓰였다. 영문학자이면서 폭력과 트라우마, 인권 등을 연구해 온 저자는 생생한 ‘악의 연대기’를 쓰는 것을 지양한 채 어떻게 평범했던 사람들이 극악무도한 가해자가 됐는지, 또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역사의 증언자로 나섰는지, 이들의 고백을 듣는 게 어떤 의미가 있고 이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 등 쉽지 않은 주제를 다층적으로 다뤘다. “트라우마를 보여줘야 할 도덕적 의무”와 “보여주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를 동시에 갖고 있는 딜레마 속에서, 역사 기록이 자칫 ‘악의 포르노그래피’로 둔갑하지 않을지 극도로 경계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악마를 보았다”는 저자의 말이 보여주듯, 인터뷰에 응한 전범들이 전시에 행한 범죄는 잔악무도하기 이를 데 없다. 민간인을 학살하고, 고문하고, 여성을 강간하고, 살아 있는 사람을 생체실험과 해부 실습 대상으로 삼았다. 처음엔 주저하고 괴로움을 느꼈지만, 이내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만행을 이어갔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많은 홀로코스트(대량학살)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자도 가해자를 특이한 성향을 가진 인간으로 분류하는 ‘악마화’에 거리를 둔다. 대량학살 행위의 원인을 개인적 성격이 아닌 조직의 정체성, 사회적 상황, 국가 이데올로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저자가 만난 전범 상당수는 첫 인터뷰 대상이었던 구보테라처럼 전쟁 전 농민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731부대에서 일한 유아사는 의사였고, 심지어 에바토는 도쿄(東京)대에서 윤리학을 전공하고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동했었다.

이런 평범한 사람들을 괴물로 만든 것은 천황을 정점으로 한 ‘신국(神國)’의 ‘신민(神民) 만들기’ 시스템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시작된 공교육은 ‘일본 = 신의 나라’ ‘다른 민족 = 열등 국민’ 식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흔들림 없는 충성심과 애국심을 강조했다.

▲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민간인 집단 학살, 일본도를 이용한 학살, 위안부 성 착취, 생체 실험(위부터 시계 바늘 방향)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자료사진

가네코는 전쟁터로 나가게 됐을 때, 어린 시절 배운 대로 어머니에게 “전선에 가서 꼭 영광스러운 일을 할게요”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공교육이 준비 단계였다면, 신병 교육은 괴물의 완성기였다. 지속적인 체벌과 학대, 살인과 강간을 포함한 교육은 병사들을 상관의 명령에 로봇처럼 따르는 ‘무념(無念)의 인간’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처음은 어려워도 두 번째, 세 번째는 그렇지 않다는 ‘첫 번째 구타 효과’가 겹치면서, 병사들은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생사람의 목을 베고 여성을 강간하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수준에 이르렀다. 강간 경험에 대해 가네코는 “(처음엔) 그저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위안소에 가지 않았다. 강간은 공짜니까” “전선에 가면 반드시 강간을 했다 … 거기에서도 일종의 경쟁의식이 생겨나곤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일본도로 생사람의 목을 단칼에 베는 장교들의 모습을 본 병사들이 작두를 이용해 이를 따라 했다는 얘기도 털어놨다. 에바토는 생체 수술 실습 경험을 고백하며 “처음에는 역겹게 느껴졌다 … 세 번째 정도 돼서는 앞장서서 세심하게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 쾌락이 되는 거다. 이를테면 사람들을 집에 가둔 채 불을 지르고 불타는 걸 지켜보는 거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름 끼치고, 잔인한 쾌락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이들과의 충격적인 인터뷰를 마친 뒤 “녹음테이프를 캐비닛에 넣어 둔 채 몇 달간 외면했다”고 전했다.

전후 일본 사회의 주류는 전쟁범죄를 숨기고 왜곡하는 데 급급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귀련 회원들이 ‘중국에 세뇌당한 공산주의자’ 취급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저자는 “어떤 범죄는 사죄를 넘어서기도 한다”며 이들에 대한 섣부른 용서에 거리를 두면서도 “적어도 이들의 진실은 중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는 그들의 고백을 기록으로 남긴 이유다. 실제로 전쟁 책임자에 대한 중귀련 회원들의 분노는 현시점에도 큰 울림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단 한 명의 윗사람도 ‘여러분에게 미안합니다. 내가 명령을 내렸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천황조차도. 그는 ‘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만 했다.” 너무도 늦은 항명이지만, 마치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지금의 일본 권부를 향한 질타로 들린다. 356쪽, 1만9000원.


■ 같이 읽으면 좋은책

연구서·에세이·소설·만화까지 ‘광복 75주년’을 말하다


광복 75년(8월 15일), 경술국치 110년(8월 29일)을 앞두고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문 연구서뿐 아니라 만화, 에세이, 소설, 시 등 형식도 다양하다.

두드러지는 것은 만화 역사서다. 조선왕조실록을 20권짜리 만화로 그려내 인기를 끌었던 작가 박시백이 이번에는 일제강점기를 다룬 7권짜리 연작 ‘35년’(비아북)을 완간했다. 1000명이 넘는 인물을 등장시켜 일제의 폭압적인 식민지 정책,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과 독립운동가들의 저항, 친일파들의 부역의 역사를 그려냈다.

정용연이 그리고 권숯돌이 쓴 ‘의병장 희순’(휴머니스트)은 위정척사파 유학자 집안의 여성으로 ‘안사람 의병단’을 이끈 조선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여성 의병장 윤희순의 일대기를 담았다. 윤희순은 2018년 방영된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의 실제 모델로 여겨진다. 의열단을 이끌며 과감한 폭력 투쟁을 전개해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약산 김원봉은 베스트셀러 작가 허영만의 ‘독립혁명가 김원봉’(가디언)으로 되살아났다.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 같은 삶을 다룬 ‘아리랑’은 ‘노근리 이야기’ ‘짐승의 시간’ 등 사회성 짙은 만화를 그려 온 박건웅의 동명 만화(동녘)로 부활했다.

한국계 이민자로, 미국 문단의 떠오르는 시인인 에밀리 정민 윤은 시와 에세이를 모은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한유주 옮김·열림원)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뤘다.

한민족 디아스포라 작가 문영숙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을 이끌고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최재형의 일대기를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우리나비)이라는 제목의 평전으로 그렸다. 올해는 최재형 순국 100년이다.

현직 기자 길윤형이 쓴 ‘26일 동안의 광복’(서해문집)은 조선이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부터 조선총독부 청사에 성조기가 게양된 9월 9일까지를 다큐멘터리식으로 재구성했다. 저자는 이 시간이 ‘한반도의 오늘’을 결정지었다고 말한다. 도서출판 이숲이 펴낸 ‘‘잿더미’ 전후공간론’(사카사이 아키토 지음·박광현 외 옮김)은 ‘전후 일본’의 풍경이자 국가적 서사의 출발점이 된 ‘잿더미’의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다뤘다. ‘잿더미’라는 표상이 가해자성을 가리고 피해자성을 증폭했다는 것이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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