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역전된 정당 지지율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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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섭 서울대 교수 정치커뮤니케이션

조사기관 신뢰도 제기 언론들
與野 뒤집히자 대서특필 보도
선택적 수용 民心 오판 더 키워

ARS 방식은 양극단 과대 반영
文정권 하락을 野는 흡수 못해
일희일비 말고 오만 경계해야

지난 13일 리얼미터의 주간 조사에서 미래통합당(36.5%)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33.4%)을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발표된 조사 결과도 통합당 36.3%, 민주당 34.8%로 1.5%포인트 차이가 났다. 거의 4년 만에 처음이다. 176석의 거대 여당 시대에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서 보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 조사를 인용한 많은 언론사의 과거 보도를 생각해 보면 낯이 뜨겁다.

그동안 많은 보수 언론이 리얼미터의 신뢰도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지난해 5월 정당 지지율을 둘러싸고 이 갈등이 극에 달했다. 리얼미터의 2주차 조사에서 민주당과 당시 자유한국당의 격차가 1.6%포인트(오차 범위 내. 리얼미터 측은 ‘주간 평균은 4.4%포인트 차이였다’는 입장)로 줄어든 것이다. 같은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5.0%포인트 차이를 보였지만, 기자들은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주로 인용하며 이해찬 민주당 대표에게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물었고, 이 대표는 “한 업체의 조사만 다른 기관과 다른 결과를 보이고 있다”며 리얼미터 조사의 신뢰도에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는 그다음 주 리얼미터 조사에서 다시 두 정당 간의 지지율 격차가 13.1%포인트로 급격히 벌어지면서 불거졌다. 참고로, 같은 기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는 두 정당 간의 차이가 오히려 1%포인트 줄었다. 이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오자 보수 언론들은 강경한 논조로 리얼미터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 반면, 진보 언론들은 리얼미터 조사에서 두 정당 간의 지지율 격차가 1주일 사이에 롤러코스터를 탄 것 자체를 거의 기사화하지 않았다.

지난주 리얼미터가 여야 두 정당의 지지율이 역전된 결과를 발표하자 많은 보수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신뢰할 수 없다던 리얼미터의 조사를 크게 인용한 언론사들은 ‘선택적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걸까.

이런 ‘선택적’ 보도는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에도 적용됐다. 한국갤럽은 이전보다 크게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 민주당이 통합당보다 6%포인트 정도 앞서는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리얼미터(43.3%)보다 오히려 4%포인트 이상 낮은 39%로 추정했다. 언론들은 이번에는 정당 지지율 결과는 쏙 빼고 “문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는 데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리얼미터는 지난 2018년 11월 마지막 주 이후 문 대통령과 통합당 지지율 모두를 한국갤럽보다 높게 추정했다. 대통령 지지율상으로는 ‘진보’, 통합당 지지율상으로는 ‘보수’란 얘기다. 그 반면, 한국갤럽은 대통령 지지율상으로는 ‘보수’, 통합당 지지율상으로는 진보인 셈이다.

두 기관 간 부조화가 보여주는 정치적 시사점은 무엇일까. 응답률이 극히 낮은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는 ‘중도’ 유권자들이 과소 표집될 가능성이 크다. 리얼미터의 ARS 조사는 양 정당의 적극적 지지층을 과대 표집해 통합당의 지지율이 한국갤럽 대비 높게 추정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약간이나마 리얼미터보다 중도 유권자가 더 대표될 가능성이 큰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리얼미터보다 낮게 나오는 것은 중도 유권자들이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통합당 지지율이 리얼미터보다 낮게 나오는 것은 통합당이 아직 이들을 모두 흡수하지는 못하는 현실도 보여준다. 물론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이전보다 두 정당 간 격차가 확연히 줄어든 것은 중요한 변화다.

언론의 진영 논리에 기반한 ‘선택적’ 보도 행태는 정치권의 민심에 대한 오판을 초래해 ‘오만’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크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지율이 너무 낮아 보였던 것이 당시 한국당의 공천 파동과 총선 패배는 물론, 궁극적으로는 탄핵 정국으로 가는 시발점이 됐다. 또, 불과 넉 달 전 4·15 총선 당시 70%에 육박했던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게 된 것도 압도적인 총선 승리에 나타난 민의를 오판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언론의 기억상실증적 보도와는 달리 김종인 통합당 비대위원장은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한다. 연륜과 노회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