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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8월 19일(水)
情의 노래로 사람들 치유하는 ‘트로트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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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미 ‘추억으로 가는 당신’

트로트의 여왕은 누구인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그 시간, 그 자리마다 각자의 여왕이 존재한다. 나의 여왕이 너의 여왕보다 낫다고, 높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 음악동네의 여왕은 군림하지 않고 왕림한다. 권세를 가져서 여왕이 아니라 팬들과 사랑을 나눌 때 비로소 여왕이다. 지금 내 앞에서 기쁨과 감동을 주는 가수가 오늘의 여왕이다.

‘오늘’을 2행시로 지어보라 했을 때 나는 그냥 오! 늘! 이렇게 무성의하게(?) 답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 지은 2행시다. 경이로운(오!), 그러면서도 한결같은(늘!) 가수 주현미가 오늘 음악동네의 주인공이다. 데뷔곡이 대표곡인 가수도 많고 심지어 데뷔곡이 은퇴곡인 경우도 흔한데 이 분은 인생의 고비마다 살아남았고 음악의 굽이마다 빛을 발했다.

‘고비에 인삼’이라는 속담을 들어보셨는지. 일마다 공교롭게 마(魔)가 끼어 낭패를 볼 때 쓰는 말이다. 주현미의 약력을 보면 ‘고비에 인삼’은 오히려 원뜻과 반대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처음 무대가 1981년 제2회 MBC FM 강변축제였다.(이듬해부터 강변가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참고로 그해 대상은 ‘별이여 사랑이여’를 부른 사랑의 하모니였다. ‘한잔 또 한잔을 마셔도 취하는 건 마찬가지지/ 이 밤도 외로움에 잠 못 이루고 홀로이 별을 헨다네’ 별 주목을 받진 못했지만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를 불러 장려상을 받은 팀이 6인조 밴드 ‘인삼뿌리 2기’였다. 주현미는 중앙대 약학대 밴드 ‘진생라딕스’(‘인삼뿌리’라는 뜻)의 보컬로 경연에 참여했다.

▲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노래채집가
기회는 언제 오는 것일까. 기회는 전임자가 아플 때, 바쁠 때 온다. 1984년 메들리 음반 ‘쌍쌍파티’는 원래 조미미 씨가 녹음하기로 되어 있었다. 노래 잘하는 약사로 소문나있던 주현미가 얼떨결에(?) 빈자리를 대신했고 그게 어마어마한 히트를 친다. 스타를 연인으로 간주하는 팬이라면 보통 결혼 후 지지를 철회하는데 주현미는 결혼(1988년) 후 인기가 더 올라갔다. 팬들은 그를 애인이 아니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게 분명하다.

트로트 강자를 모시기 위한 방송사 간 전쟁이 치열해졌다. 이제 왕이나 황제로 불러서는 선뜻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마침내 신이라는 호칭까지 등장했다. ‘트롯신이 떴다’(SBS)에는 6명의 가수들이 매주 등장한다. 트로트를 한(恨)과 흥(興)의 노래라고 할 때 진성이 부르는 ‘보릿고개’ 같은 노래는 확실히 한에 가깝다. 남진, 김연자, 설운도, 장윤정의 노래들에는 대체로 흥이 물씬하다. 그렇다면 남은 한 사람 주현미는 어디에 속하는가? 좀 애매해서 이참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어떨까 싶다. 바로 정(情)이다.

그의 오리지널 데뷔곡은 ‘비 내리는 영동교’(1985년)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중략) 비에 젖어 슬픔에 젖어 눈물에 젖어’ 걸을 때까진 한에 가깝지만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 잊는 것은 미련 미련 때문인가 봐’로 귀결되는 지점에선 한의 정서를 넘어선다. ‘한 많은 대동강’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은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고 가르쳐줬다. ‘정이란 무엇일까/ 받는 걸까 주는 걸까’(조용필 ‘정’ 중) 한은 맺히는 것이고 흥은 일어나는 것이지만 정은 오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사 미운 정 고운 정은 소통이고 교감이다.

‘나에게 약 좀 주세요/사랑하다 병이 들어 외로운 가슴/달래주고 위로해줄 약은 없나요’(김용임 ‘의사선생님’ 중) 약국에서 오래 근무하진 않았지만 무대에서 아픈 사람들에게 노래의 처방전을 띄워준 사람. 주현미는 ‘추억으로 가는 당신’을 노래로도 부르고 책으로도 냈다. 공유한 추억이 35년째 정으로 쌓여간다. ‘세월 그 세월이 가는 줄도 모르고/ 불타던 두 가슴에 그 정을 새기면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주현미 ‘정말 좋았네’ 중)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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