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장마철에 남부 지역 집중호우로 전북 남원시 금지면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과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뉴시스
■ ‘官災 논란’ 부른 정부 물관리 정책
컨트롤타워 없이 4대강 · 수질관리 치중… 재해예방 수량조절 실패
다목적 댐, 환경부·수자원公 - 전력 댐은 산업부·한수원 소관
작년 출범한 ‘국가 물관리委’는 4대강 보 처리만 다뤄
현장선 “4대강 평가보다 지류·지천 정비 우선해야” 호소
전문가들 “기능·조직 아우르는 관리 일원화 시급”
올해 장마철 홍수 피해는 정부의 물관리 일원화를 비롯한 치수 정책 전반의 실패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018년 대부분의 물관리 기능을 국토교통부에서 환경부로 이관하는 ‘물관리 일원화’가 진행됐지만 부처 간 이기주의와 정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이번 사태가 초래돼 결국 관재(官災)를 낳았다는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집중호우라는 점도 있지만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정부기관의 모습은 실망감을 안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을 계기로 제대로 된 ‘물관리 일원화’와 컨트롤타워 설치를 비롯한 치수 전반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환경 당국 안팎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① 물(하천) 관리, 행정 소관 이전 배경
섬진강·낙동강 등 주요 국가하천의 관리는 환경부가 담당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물관리 기능을 환경부로 일원화했기 때문이다. 홍수 예보와 경보를 담당하는 홍수통제소도 환경부로 넘어갔기에 국가하천 홍수에 대한 1차적 책임은 환경부에 있다. 당초 국가하천 관리는 국토교통부 소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방 등 하천 유지·보수 등 공사와 시설관리 업무만 하고 있다. 이처럼 역할이 바뀐 데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사업’ 영향이 컸다는 게 정치권은 물론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여당과 환경단체는 4대강 공사 이후 하천 오염 등 각종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했고,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가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환경운동가들이 환경부로 진출했다.
② 물관리, 어떻게 나뉘어 있나
2018년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물관리 기능이 환경부로 일원화된 이후 오히려 업무분담은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홍수 통제는 환경부가, 하천공사 및 시설 관리는 국토부가 맡은 가운데 도시 내 홍수관리는 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 담당이다. 세부적으로 본다면 홍수 조절 기능의 핵심인 댐 운용은 또 다른 기관이 관리하고 있다. 발전용 댐은 산업통상자원부의 한국수력원자력이, 다목적 댐과 용수 전용 댐은 환경부의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한다. 섬진강댐의 경우 수공이 관리하지만 농어촌공사, 한수원 등 총 3개 기관이 물 사용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결국 이렇게 나뉜 기능에 대해 총괄 역할을 환경부가 해야 하는데 이번 수해를 통해 컨트롤타워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국가 물관리위원회도 설치됐지만, 4대강 보 처리 문제만 건드렸을 뿐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③ 국가물관리위원회 만든 배경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우리나라의 물관리 정책을 결정하고 물분쟁을 조정하는 대통령 소속 기구로, 2019년 8월 27일 출범했다. 2018년도에 제정된 ‘물관리기본법’에 따라 출범했으며, 국가물관리기본계획과 물 관련 중요 정책 및 현안을 심의·의결하고 물분쟁을 조정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위원회는 △국가 차원의 물관리 정책 수립 △정책현안 결정 △물 관리 관련 분쟁 조정 등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들을 다루게 된다. 기구는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와 허재영 충남도립대 총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고, 물관리 관련 학계·시민사회 등 사회 각계를 대표하는 당연직·위촉직 포함 총 39인(위원장 포함)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4대강 보의 해체 문제도 결국 국가물관리위원회의 소관이다. 앞서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공동기획위원회는 2019년 2월 금강과 영산강 5개 보 중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의 해체 방안을 제안했다. 2017년 6월부터 금강과 영산강 보의 수질 및 환경을 모니터링하고, 경제성 분석을 통해 얻은 결과였다. 하지만 보 인근 주민들이 “가뭄이 잦던 유역에 보가 세워진 덕분에 농사를 걱정 없이 지을 수 있다”며 해체에 반대하고, 이에 공주시의회를 비롯해 나주시의회·세종시의회가 철거 반대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논의가 공전했다. 물관리위는 4대강과 관련해 아직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④ 물관리 일원화란
‘물관리 일원화’란 현재 환경부와 국토부로 이원화돼 있는 물관리 정책을 한 곳으로 몰아 관리해야 할 필요성과 일련의 정책을 일컫는 말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물관리 기능의 상당 부분을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옮겼다. 하천관리를 제외한 수량, 수질, 재해 예방 등 대부분의 물관리 기능이 이관됐다. 당시 인력 188명과 6000억 원의 예산도 따라왔다. 환경부가 홍수 통제 기능을 넘겨받았지만, 여전히 제방, 홍수를 방어하는 배수펌프 등 일부 시설물의 관리 업무는 국토부에 남았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하천관리법 관리 주체도 국토부로 정했다. 당시에도 ‘반쪽짜리 일원화’라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또 기능 통폐합보다는 조직 통폐합에 방점이 찍히면서 ‘맹탕 일원화’라는 비판이 나왔다.
더 들여다보면 국토부가 관리한다는 하천도 규모가 작을 경우 관리 책임은 행안부가 맡는다. 다목적댐과 용수전용댐은 환경부와 수자원공사, 전력댐은 산업부와 한수원이 맡고 있다. 하천관리는 국토부, 전국 저수지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어촌공사·지자체가 담당한다. ‘따로국밥’ 정책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번처럼 예기치 못한 폭우에 대비해 댐과 하천, 소하천, 지류 등 위험 지역을 일률적으로 정비해야 하지만, 관리 주체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⑤ 섬진강·제방 붕괴 지역주민 반응은
섬진강댐 방류로 피해를 본 전북 남원·순창·임실, 전남 구례·곡성·광양, 경남 하동 등 영·호남 7개 지역 주민 대표단이 지난 20일 한국수자원공사 본사를 항의 방문했다. 피해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2020 섬진강유역 수해피해대책위’ 15명은 이날 오전 대전 한국수자원공사 본사를 방문해 “댐 수위 조절 실패에 따른 인재인 만큼 책임자를 문책하고 대책위 요구 사항을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수자원공사가 갈수기 때는 물을 방류하지 않으면서 이번 장마 때 엄청난 양의 물을 방류해 피해를 키웠다”며 “사정이 이런 데도 수자원공사는 매뉴얼 대로 적법한 절차를 걸쳐 방류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섬진강댐 측은 지난 8일 오전 6시 30분에 초당 600t이었던 방류량을 2시간 40분 만에 1870t으로 늘려 섬진강 하류의 제방 붕괴 등 홍수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과 함께 항의를 받고 있다.
⑥ 왜 또 4대강 탓이라고 하나
전국적인 집중호우가 내리던 지난 9일 오전 2시, 경남 창녕군 이방면 장천배수장 인근 낙동강 본류 둑 50m가 무너졌다. 낙동강 합천창녕보에서 상류 쪽으로 260m 떨어진 지점이다. 낙동강 둑이 무너지면서 이방면 장천리·송곡리·거남리 등 인근 마을의 주택과 농경지가 물에 잠겼다. 일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둑의 붕괴가 “4대강 사업으로 건설한 합천창녕보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당시 현장을 찾은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합천창녕보로 인해 강물 흐름이 느려지고, 보 상류의 수위도 상승했다”며 “이로 인해 낙동강 둑에 대한 수압이 상승하면서 둑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경남 환경단체인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운동단체들이 가세하면서 ‘4대강 사업 탓’ 논란이 가열됐다. 다만 낙동강 홍수통제소 측은 “보가 홍수 피해 방지에 도움이 됐는지,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는 추후 평가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⑦ 4대강 보의 역할 놓고 논란 왜?
이번 4대강 보 역할 논란은 경남 창녕군 합천창녕보 상류 260m 지점에서 낙동강 제방이 유실되면서 촉발됐다. 4대강 사업을 줄곧 반대해온 대한하천학회와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제방이 유실되자 입장문을 내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합천창녕보가 홍수 위험을 가중했다”고 주장했다. 보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상류 쪽 압력이 가중되면서 제방이 붕괴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권이 ‘아전인수’격 해석을 내놓으면서 가세해 논란이 증폭됐다. 하지만 이번 제방 유실로 침수 피해를 본 창녕군 죽전마을의 임성관 이장은 “4대강 사업 후 수심이 깊어져 집중호우에도 물이 빨리 빠져나가 제방 붕괴를 합천창녕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주민은 없다”며 “제방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유실된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부의 감사원도 2018년 7월 연세대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의뢰해 제출된 ‘4대강 살리기 사업 치수·이수 성과분석’에서 “보 설치가 치수 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⑧ 환경부, 4대강 조사 왜 또 하나
환경부는 지난 12일 “4대강의 홍수 예방 효과에 대해 실증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이번 홍수와 관련해 댐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린 지 이틀 만이었다. 환경부는 그러면서 같은 날 4대강 보의 홍수 조절 효과에 대해 “홍수 예방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조사가 있었다”고 밝혔다.
환경부의 이 같은 입장은 앞서 박근혜·문재인 정부 때 진행된 감사원의 결과에 근거한다. 2013년 ‘4대강 살리기 사업 설계, 시공 일괄입찰 등 주요계약 집행실태’ 감사는 4대강 사업이 본래 주장된 홍수 예방이 아닌 한반도 대운하 사업 재추진을 위한 사전작업 성격이 크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현 정부 때인 2018년 진행된 감사에서는 “4대강의 홍수 예방 효과는 0원”이라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당시의 결론은 ‘가상 홍수’ 모델을 분석한 결과여서, 환경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올해 발생한 홍수의 실측 자료를 토대로 실증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⑨ 수질 관리·수량 확보 무엇이 우선인가
홍수기 댐 수위조절과 홍수기 이후 수질관리를 위한 용수확보는 정부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두 마리 토끼’다. 그러나 이번 기록적인 홍수 피해는 정부가 그중에서도 유독 수질관리 측면에만 매몰된 탓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수 이후 예상되는 녹조 사태 해결에 방점을 두면서 ‘물 욕심’을 내다보니 홍수 시기에도 적절한 방류 시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수자원공사는 지난 2018년 관할이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관된 뒤부터 댐의 여름철 수위를 국토부 시절보다 크게 높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섬진강댐의 경우 7∼8월 저수율이 2017년엔 13∼33%에 불과했는데 올 7월 말엔 85.7%였다. 용담댐은 90.2%, 합천댐은 93.4%나 됐다. 이에 대해 야권 등 보수진영에서는 “환경부가 수질 관리에만 골몰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과거 국토부는 홍수기에는 수위를 최대한 낮춰 놓고 만일의 집중호우에 대비했는데, 환경부는 장마 후 녹조가 피기 시작하면 댐 물을 방류해 녹조를 제거하려고 댐에 물을 과도하게 담아두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종배 미래통합당 의원은 “수자원공사에 댐 방류량 조절 등 홍수 예방대책을 주문할 수 있었음에도 환경부는 이를 방관했다”며 “환경부의 치수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⑩ 전문가 의견 및 현장의 요구사항은?
이번 집중호우 참사 이후 대책과 관련, 현장 주민들의 의견은 분분하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4대강 사업의 공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산강의 경우 오염된 퇴적물이 줄어들고 건천화가 개선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던 반면, 설치된 보가 물의 흐름을 방해해 위쪽에 있는 지류의 수위를 높여 제방 붕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에서는 ‘모 아니면 도’ 식의 4대강 사업 평가에서 벗어나 4대강 사업 이후 보강할 필요성이 더 높아진 지류·지천을 정비하는 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류·지천의 제방이 본류인 4대강의 제방보다 낮은 곳이 많아 또다시 이번 집중호우 같은 큰비가 내릴 경우 사고 재발이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댐 운영부터 지류·지천, 도심 하수시설까지 홍수에 대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물 관리 주체를 국토부로 환원하는 방안, 국토부에 남아 있는 하천관리 업무까지 환경부로 이관하는 방안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박정민·송유근·박팔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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