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北경제 파탄…核폐기 결단 이끌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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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식 前 통일부 차관

“김여정이 국정 전반에 있어 위임통치하고 있다.” 이 말은 뜬금없긴 하나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북한의 수령유일영도체제와 권력의 상식으로 볼 때 적절한 말은 아니다. 새 국정원장이 특별한 내부 정보가 있든지 아니면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했을지 모르겠으나, 그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훗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행사하며,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통치를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한 권력 체제 내에서 일어난 업무 분장과 지시 복명 관계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북한을 이해하는 데 오해를 줄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북한의 권력 관리가 아니라 경제 실패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일 노동당 중앙위에서, 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성장목표가 심히 미진하며 인민생활이 향상되지 못했음을 실토했다. 실제로 북한이 추진하는 거의 모든 경제건설 사업이 부진하다. 북한의 수령체제에서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건 이례적 일인 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다. 이런 사례는 27년 전에도 있었다.

1990년 동유럽 소련 사회주의 붕괴 이후 북한 경제는 엉망이었다. 1980년대 북한이 ‘사회주의 완전승리’의 기치를 내걸고, 연간 철강생산 1500만t, 전력 1000억kwh 등의 경제 10대 전망목표나 연 성장률 10% 내외를 제시한 계획들은 휘황찬란했다. 그 계획들은 1980년대 말 허구임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냉전 붕괴와 함께 북한 경제는 몰락했다. 1993년 12월 6기 21차 당중앙위원회에서 3차 7개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하고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로 정책을 전환했다.

아사자가 속출했던 경제난으로 인해 북한은 내부적으론 경제정책을 전환했다. 그리고 남북관계에선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1994년에는 남북 정상회담을 함으로써 우리의 지원을 받아 경제를 살리고자 했다. 대외적으론 미국에 관계 개선을 요청하면서 핵사찰을 받았고,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이후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하고, 핵 동결의 대가로 에너지 지원을 받았다. 북한이 약속한 대로 핵시설 폐기와 특별사찰까지 이행했다면 벌써 미국과 수교하고 경제는 크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핵 개발을 계속함으로써 기회를 잃었고, 그 결과 경제 실패를 또다시 말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북한이 처한 정세의 구조는 1990년대 초와 비슷하다. 대외 경제협력이 불가능한 것도 유사하고, 경제 실패를 인정한 것도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북관계와 미·북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도 유사하다. 문제는 핵 보유 집착을 버리지 않는 것까지 똑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과도 뻔하다. 북한은 이것을 바꾸지 않으면 경제를 살릴 수 없고, 더 참혹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행하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해 도움을 받는 게 좋은 선택이다. 북한은 새로운 정세에 맞게 노선을 제시할 것이라고 했다. 내년에 나올 북한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에는 비핵화 결단이 반영되길 기대한다. 우리 정부도 북한 경제 실패를 맞아 당장의 성과를 몇 개 내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북한이 비핵화를 확고히 결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비핵화 없는 남북 간 경제 협력은 공허한 일이다.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도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