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권호영 기자
- 美, 화웨이 제재 전방위 확대
화웨이 작년 매출 145조원 글로벌 통신 거물 급성장… 각국 통신망서 정보 수집 의혹 ‘진짜 주인은 中 공산당’ 의구심
美 “AI·자율주행 5G 핵심 中에 주도권 뺏기면 끝장”… 동맹국에 제재 동참 압박 ‘고사 작전’ 나서
미국이 세계 통신장비 1위 회사인 중국의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위해 입법·사법·행정 당국을 총동원하고 있다. 먼저 사법 당국은 지난해 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화웨이의 미국 현지연구소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 후 ‘위장 스파이 기업’으로 규정해 연방법원에 기소했다. 미국 의회에서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통과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자국 기업은 물론 유럽과 일본, 호주 등 주요 동맹국을 대상으로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미·중 무역갈등이 5세대(G) 통신시장의 미래 표준 선점 경쟁인 ‘정보기술(IT) 패권’ 전쟁으로 확산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이 같은 ‘디지털 패권 경쟁’은 경제적 성격보다 정치적 의도에 더 방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최근 ‘클린 네트워크(Clean Network)’ 정책을 표방하면서 미국 통신 및 인터넷 시장에서 중국 흔적을 지워버리겠다고 사실상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반면 중국은 화웨이를 미래 중국 기술의 상징으로 규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위해서라도 강력히 반격하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전 세계 통신 시장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美, ‘화웨이 = 위장 스파이’ 전방위 공세 = 화웨이는 올해 1분기 5G 통신장비 시장 점유율이 35.7%로 에릭슨(24.6%), 노키아(15.8), 삼성전자(13.2%) 등을 앞선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첨단 제조업 육성 정책인 ‘중국제조 2025’의 핵심 기업이다. 화웨이의 2018년 매출은 1085억 달러(약 121조 원)로 전년 대비 21% 증가하며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매출도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20% 가까이 늘어난 145조 원에 이른다. 1987년 인민해방군 출신 런정페이(任正非) 회장이 자본금 2만1000위안(약 365만 원)으로 설립한 회사가 30여 년 만에 ‘글로벌 통신 거물’로 급성장한 것이다. 런 회장이 1.4% 지분을 갖고 종업원들이 나머지 지분을 가진 비상장 민영기업인 화웨이는 폐쇄성과 비밀주의로 유명하다. 지분도 중국 군부나 정부기관, 지방정부가 실질적으로 갖고 있어 런 회장은 중국 공산당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무엇보다 인민해방군 출신인 런 회장의 이력과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 없이는 설명하기 쉽지 않은 급성장 배경 때문에 의구심이 높아졌다.
화웨이가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로부터 국가안보를 침해당할 위협이 있다고 배척당하는 가장 큰 이유는 ‘위장 스파이 기업’ 논란이다. 화웨이가 전 세계에 구축한 통신망에 심은 ‘백도어(뒷문)’를 통해 민감한 정보를 중국 정부와 공산당에 제공하고 있다는 게 핵심 의혹이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도 2012년 “화웨이 등의 장비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나 사이버전쟁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장비 구매 금지를 권고했다. 2016년에는 실제 미국 내 화웨이 스마트폰에서 백도어가 발견돼 해킹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해 8월 의회를 통과한 2019년 국방수권법을 통해 정부기관이나 정부 거래기업에 대해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의 통신장비나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4월 화웨이 계열사 114곳을 거래한 블랙리스트를 발표했고, 지난 5월에는 미국 반도체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활용하는 기업이 화웨이(계열사 포함) 설계로 생산된 제품을 수출하려면 사전 승인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5일에는 화웨이 해외 계열사 38곳을 거래 제한 명단에 추가로 올렸고, 미국 반도체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활용해 생산된 제품을 화웨이에 공급하려면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제도를 즉시 발효했다.
일단 중국은 본토에 진출한 애플, 퀄컴, 시스코 등 미국 기업을 퇴출하는 조치 같은 최악의 대응은 자제하고 있다. 트럼프식 일방적 행보에 휘말리지 않고 단계별 시나리오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미 중국 정부는 반(反) 화웨이 연대에 대응할 자국의 최대 위탁생산(파운드리) 반도체 회사인 SMIC에 22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래 중국 기술을 확보하려는 행보에 나서고 있다.
◇5G 네트워크 선점 패권 경쟁, 동맹국 압박 강화 = 미국의 화웨이 압박에는 미래 산업의 중추신경인 5G 네트워크 기술에서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초조함이 깔려 있다. 5G 네트워크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서비스 기반이다. 5G 통신장비는 이런 첨단산업에서 오가는 정보의 고속도로로 군사기술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전투 요원들이 5G 기술이 적용된 장치를 착용할 경우 다른 전투원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긴급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전투원 중 1명이 부상하면 즉시 대처할 수 있다. 화웨이는 레이더, 군용 전자기기 등을 생산하는 국영기업과 함께 중국 5G 네트워크 구축의 핵심이다.
이런 만큼, 미국은 다른 동맹국에도 화웨이 통신장비에 이어 반도체 부품까지 사용 자제를 요청하는 등 공세를 확대하고 있다. 당장 일본이 미국 요청에 호응, 정부 입찰에서 화웨이를 배제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5G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 화웨이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며, 영국 보다폰과 브리티시텔레콤(BT), 프랑스 오랑주, 독일 도이체텔레콤 등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중단하거나 이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반면 러시아·브라질·태국은 30% 낮은 화웨이 통신장비의 가격 경쟁력에 안보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 한국도 미국의 압박에서 예외는 아니다. 국무부가 지난 5일 ‘클린 통신사’ 25개를 올리면서 SK텔레콤과 KT를 포함해 한국에도 화웨이 배제를 수차례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현재 정부와 통신사들은 “화웨이 장비 사용에 따른 국내 정보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작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민철·정유정 기자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