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내 큰오빠 극진히 모시더니… 고모인 나에게도 정성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큰딸 같은 조카 이경미

밤 9시가 지나 공원 산책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하루 중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시간이다. 낮에는 시간의 포로가 돼 안부를 묻지 못한 지인들에게 전화를 한다. 휴대전화 전화목록을 열자 빠르게 지나가는 이름 중 낯익은 한 사람. 그 위에 중지 지문을 살짝 얹는다. 여느 때처럼 신호음이 길게 울린다. 아! 이 시대의 통신 기술은 먼 그곳까지도 전화가 되나 싶어 반갑다. 그런데 안 받는다. 다시 한 번 꾹 눌러봐도 안 받는다. 소름이 확 돋는 순간 손가락은 어느새 다른 이름 위에 옮겨져 있다.

“큰딸! 너의 아버지 전화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 받네.”

“네 아직 전화를 못 없앴어요.” 전화를 받는 큰딸 목소리는 물 먹은 스펀지처럼 흠뻑 젖어 있다. 내가 큰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내 조카 딸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부재중인 그 사람은 나의 큰 오빠다.

지난 5월 4일. 오빠는 전날 밤 배가 약간 아파서 대학병원에 갔는데 장이 꼬였다며 밤 11시에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아침이 돼도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아 의사 선생님께 이럴 수도 있느냐 하니 통증이 심한 것 같아 잠을 재우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낮 12시쯤 “고모, 아버지가 위험하다는 전갈을 받고 저 내려갑니다.” 경주에 사는 큰딸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오빠는 이미 손과 발, 얼굴이 싸늘해져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그렇게 허망하게 가셨다.

큰딸은 어렵사리 집을 장만해서 이삿날이 잡혀 있었는데 장례식으로 미뤘다가 사십구재 때 산소에 가서 마지막 하직 인사를 하고 이사를 했다. 큰딸의 이사한 집을 방문했을 때 큰딸은 언제나처럼 반겼다. 번거로움을 마다하고 손수 지은 밥을 드려야 한다며 정성껏 차려 내었고 저녁에는 불국사를 끼고 있는 한식명가에서 저녁까지 사주며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라고 한사코 잡았다.

큰딸은 늘 작은딸(친딸) 효심을 앞질러 가려고 한다. 크게 부유하지도 않지만 수년 전부터 나에게도 용돈을 매달 보내준다. 아무리 만류해도 안 듣는다. 2018년 유방암 수술을 받았을 때 병원비로 준 몇 푼 안 되는 돈도 계좌로 돌아왔고, 올해 자기 딸 결혼 축의금도 되돌아와서 나를 울렸다.

요즘 길거리에서 지팡이에 의지한 노인들을 보면 큰딸은 “아버지는 왜 그리 빨리 가셨을까? 아마도 내가 아파트 담보 대출금 갚는 게 힘들까 봐 용돈을 받지 않으려고 급히 가신 것 같다”며 애통해한다. 그리고 월급날이면 살아생전 드리던 대로 용돈을 넣은 봉투를 “아버지 용돈 쓰세요”하고 어느 서랍 속에 꼬박꼬박 넣는다며 말끝을 흐린다.

큰딸아! 그만하면 너는 효녀였어. 우리 이제 슬픔을 털어내자 그래야만 아버지가 좋은 곳으로 가실 수 있어. 네 아버지는 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진주사범학교 4학년 때 이곳 부산의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꿈이 좌절된 줄을 너는 잘 모를 거야. 이젠 좋은 곳에 가셔서 못다 이룬 꿈도 이루고 먼저 가신 너의 엄마도 만나서 행복하게 지내시는 것만이 우리 남은 자의 바람 아니겠니. 고모도 너희들도 슬픔을 털어내기는 아직은 힘들겠지만 노력하자. 그리고 너의 건강을 우선으로 하고 살기를 바란다.

이석련 시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