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장마 태풍…탈원전 폐기 더 화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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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美 캘리포니아 순환정전 돌입
태양광 조건 좋은데도 불안정
한국 장마와 태풍은 더 위협적

지속 가능한 電源 확보가 우선
중수로 월성1∼4호기 더욱 중요
과학 무시한 정치 대가는 참혹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최근 폭염으로 19년 만에 순환 정전에 들어갔다. 지난 10년간 태양광 발전(發電)을 늘리고 원자력 발전을 없애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펴면서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태양광과 풍력 중심의 발전이 급증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재생에너지는 간헐성으로 말미암아 전력 생산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주는 사막 등 조건이 좋아 태양광이 발전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전력 수요에 대처할 수 없는 근시안적 정책은 국민을 어둠과 더위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바람이 잦아들거나 해가 떨어진 뒤 수요가 올라가면 공급이 달릴 수도 있다. 에너지 저장 기술 개발과 함께 캘리포니아주는 5년 뒤 멈추게 될 디아블로캐니언 원전의 계속 운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국내 기업이 건설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호기가 중동 역사상 처음으로 ‘그린’ 원자력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원자력으로 국가 전력 수요의 4분의 1을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6위 산유국에 천혜의 태양광 발전국이 전원을 다각화하는 것은 캘리포니아 정전과 함께 국내 에너지 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UAE는 전력 생산뿐만 아니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원자력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월성 1∼4호기와 같은 중수로는 경수로보다 더한 대한민국 자산이다. 4세대 핵분열 연료 플루토늄 외에도 5세대 핵융합 연료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다량 보유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가 동급의 경수로보다 7배 나오긴 하지만, ‘폐기물’이 아니라 ‘재활용’ 자원이라는 사실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린 뉴딜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전원 확보가 선결돼야 한다. 예비율·탈(脫)화력·원자력·신재생을 포함, 국가 전력 정책을 초당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전력예비율이 갑자기 떨어지면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력 공급은 국가적으로 막중한 문제다. 우리에게도 다가올 위기를 정쟁이 아닌 기술로 풀어가는, 그래서 정부가 아닌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전원의 합리화, 원전의 민주화가 필요하다.

재작년 강원도 홍천군의 최고기온이 섭씨 41도까지 올랐다. 100년 넘는 국내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로, 폭염은 21세기 우리나라 최대 자연재난으로 떠올랐다. 희생자 규모에서 태풍이나 홍수를 앞섰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태풍으로 472명, 호우로 325명, 폭염으로 602명이 숨졌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과 기후변화는 존재론적 위협이다. 신기후 체제에 걸맞게 저탄소 사회로 다가가는 지름길은 신재생과 원자력이다. 그중에서도 탄소 저감과 수출 시장에서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원자력을 버리는 것은 잘못이고, 수출길은 막힐 수밖에 없다. 60년 넘게 국내 원자력은 기후변화에 맞서 왔는데, 정치 이념에 밀려 신재생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정치가 과학을 무시하면 혹독한 대가는 국민이 치를 수밖에 없다. 미국이 코로나19로 몸살 앓고 있는 것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 한국형 방역의 성공담과 함께 한국형 원전의 재점화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정부는 국내에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 원전 수출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탈원전과 함께 기자재 공급 등 기반산업은 무너져 내리고 전문 인력은 빠져나가고 있다. 원자력을 버리고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금을 올리지 않으면 세금을 올려야 할 것이다.

원전이 불안하다지만, 위험하지 않은 전원은 없다. 더 안전하게 만들면 된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각국은 안전 규제를 강화했다. 특히, 한국은 선제적 조치를 적시 적소에 취했다. 수력은 이번 중국 싼샤(三峽)댐이 보여주듯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태양광판에선 카드뮴 등 대량의 중금속이 나오지만, 규제가 딱히 없다. 이번 ‘바비(BAVI)’ 같은 초강력 태풍이 만약 한반도를 관통한다면 현재의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설비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비록 48년이나 걸리긴 했지만, 며칠 전 미국 민주당이 무탄소 기술의 하나로 원자력을 당론으로 수용했다. 원자력은 기술 개발이 아닌 의사결정의 문제다. 위기(危機)를 기회로, 신규 원전의 건설 재개, 기존 원전의 계속 운전과 소형 원전의 대량 도입 등 전방위적인 환원을 강력히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