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명의 반란과 불안한 與 미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 연합뉴스

이현종 논설위원

李, 민주당을 조폭·군대 비유
지지율 1위 되자 親文에 반격
‘원팀’구호 외치지만 균열 조짐

민심 엇박자·정책 실패 잇따라
미래 권력이 現 정권과 차별화
大選까지 176석 유지할지 의문

최근 이낙연 의원을 제치고 여권의 대선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가 페이스북에 충격적인 글을 썼다. 이 지사는 25일 “정당은 조폭이나 군대도 아니고 특정인의 소유도 아니다”라고 했다. “당원은 누구나 당 정책에 의견을 낼 수 있고, 국민은 누구나 국가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뒤집어 얘기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조폭·군대라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전 국민 1인당 30만 원씩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주장하는 데 반해, 당·정·청이 결정을 하지 못한 데다 이낙연 의원 등 당 주류에서는 하위 계층에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자 이런 글을 올렸다. 얼마 전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그런 뜻이 아니다”며 굴욕적인 번복을 할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지지율 1위의 자신감인지도 모를 일이다.

유력 대권 주자가 ‘조폭’‘군대’라는 용어를 쓰며 격하게 반응하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당이 곡해하고 있다는 것인데 윤석열 검찰총장이 ‘독재’ ‘전체주의’ 용어를 사용했을 땐 벌떼처럼 일어났던 여당 의원들이 애써 이 지사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 친이재명계 의원들이 지원사격이라도 해야 하는데 이들도 침묵한다. 평소 같으면 버럭 했을 이해찬 대표도 속으론 부글부글 끓겠지만, 지지율 1위 이 지사에게 이젠 함부로 말할 처지가 아니다.

몇 주 전부터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을 앞서기 시작하면서 이 지사의 발언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해찬 대표를 중심으로 ‘원팀’ 정신을 강조해 왔던 ‘골리앗 여당’의 내부가 오는 29일 있을 전당대회와 코로나 정국에 대한 대처 방안을 놓고 조금씩 균열 조짐을 보인다. 이 의원의 당 대표 당선이 유력한 데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할 기미에 이 지사가 특유의 ‘속도전’ ‘사이다 발언’으로 치고 올라서자 대선 경쟁이 조기에 가열되는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하자 이해찬 대표는 열린우리당의 악몽을 언급하며 단합을 호소한 바 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대북송금 특검 문제로 호남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분당됐고, 친노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당내 노선투쟁과 정동영·김근태 등 차기 주자 경쟁으로 갈등이 폭발하면서 2007년 과반의석을 차지했던 열린우리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도 이회창 총리가 “법적 권한도 행사하지 못하는 허수아비 총리는 안 한다”는 말을 남기며 사퇴했고 대선후보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결국, 대권 비결은 ‘계승’이 아닌 ‘차별화’라는 것이 그간의 경험이었다. 이 지사도 정동영, 이회창 선례를 답습할까.

이 지사의 발언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의 재확산으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반등하긴 했지만, 지난 8월 둘째 주 한국갤럽 조사 결과 39%로 떨어지면서 불거졌다는 데 정치적 의미가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에도 대통령은 여전히 “안정되고 있다”고 우기고, 대통령 참모들은 누구 하나 국민 앞에 사과하기는커녕 삿대질을 한다. 강남 집 두 채를 못 팔겠다고 버티다 사퇴를 택한 김조원 전 민정수석의 ‘배신’이 신호탄이다. 핵심 지지층인 30대와 여성이 부동산·박원순에 실망해 부동층 내지 야당 쪽으로 옮겨가려는 조짐이 나타나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 지사의 발언은 문 대통령과 한배를 타고 가다간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차별화를 하려는 시작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이 검찰·경찰과 국세청·민정수석, 대법원·헌법재판소 등에 모두 노무현 정부 때 자신과 청와대에서 함께 일했던 인사들을 포진시켰다. 퇴임 대비 의미도 있겠지만, 역대 정권에서 봐왔듯이 ‘충견’이 ‘맹견’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동물의 세계’에서 2인자들이 우두머리가 힘이 빠지길 기다리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 사실상 당에서 쫓겨난 것도 같은 사정이다. 보통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유지하면 국정 운영에 큰 무리가 없고, 30%대로 떨어지면 공직자나 여당 의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며, 20%대가 되면 국정 마비가 찾아온다고 한다. 176석의 거대 여당이 한순간 허상(虛像)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