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모의 지식카페>세종 “내 결점 열심히 찾아내 꾸짖으라”… 정책 비판 않는 신하들 다그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세종과 소헌왕후가 합장돼 있는 경기 여주의 영릉(英陵) 능침에서 바라본 정자각. 세종은 “나라를 다스리는 제일의 원리로 신뢰”를 국가 경영의 철학으로 삼았다. 문화재청 제공

■ 박현모의 한국형 소통이야기 - (12) 태종·세종 ‘국가 기강 확립’

위기 상황에도 잘잘못 토의 않고 눈치보며 유야무야…“강직하게 간언하는 이 없어” 개탄
태종은 言路 바로잡고 人事에 최대 역점… 나라 질서 어지럽히는 ‘亂言’ 반역죄로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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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얘기 정말 세종이 한 것 맞나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세종의 말을 인용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자 많은 분이 궁금해했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는 가끔 연구소인지 아니면 역사고증센터인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지난주 연구소로 전화를 걸어온 대구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은 “외국의 기자가 세종어록을 언급한 것이 놀랍다”면서 ‘세종실록’에서 그 대목을 읽어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그분에게 인터넷 조선왕조실록(sillok.history.go.kr)을 활용한 교육법(SIE)과 세종실록 영어번역작업 등에 대해 알려드렸다.

내가 보기에 놀라웠던 것은 이코노미스트 기자가 어떻게 그 대목, ‘세종실록’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그 구절을 정확히 인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기자가 인용한 구절은 “나는 고결하지도 나랏일을 잘하지도 못하오. 하늘의 뜻에 어긋난 점이 분명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내서 나로 하여금 그 꾸짖음에 답하게 하시오”라는 ‘세종실록’ 7년(1425) 12월 8일자 기사다. 기상이변이 계속되는 것으로 봐 장차 큰 재앙이 올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왕의 허물이나 잘못된 정책에 대해 비판하지 않느냐면서 세종이 한 말이었다.

세종의 위기감은 공연한 것이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지 일곱 해 동안 “한 번도 풍년 든 해가 없었”으며, “시정의 무리가 일시적 혈기를 참지 못하고 대낮에 길거리에서 구타를 자행하는” 등 사회기강이 무너져 있었다. 외국의 정세도 매우 불투명했다. 명나라 영락제가 원정(遠征) 중에 사망하더니(1424.7), 뒤이은 인종 황제도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일본 역시 국왕이 사망하면서(1425.5)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 계속됐다.

그런데도 신하들은 떼 지어 밤늦도록 술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고리대금업으로 재산 불리기에 열심인 재상 때문에 조정 전체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어전회의에서 정책의 잘잘못을 토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세종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옛날 사람들은 임금의 옷을 붙잡으면서까지 강력하게 간언(諫言)해서” 정책의 허점을 사전에 찾아냈는데, 요즘은 왕 앞에서 날카롭게 직언하는 신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세종의 지적이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태종 헌릉의 비각.

1425년 12월 8일의 대화에서도 신하들은 ‘그리 말씀하시니 온 나라의 복’이라면서 유야무야 넘어가려 했다. 오로지 그 자리에 있던 형조판서 정진(鄭津)만이 화폐제도가 백성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고 말했다. 백성들에게 편리하고 나라 재정에도 도움이 되도록 ‘조선통보’라는 동전을 2년 전부터 사용하게 하고 있는데, 정부의 일방적인 조치 때문에 백성들의 불만이 크다는 것이다. 화폐를 쓰지 않고 물물교환을 하면 사고파는 자의 재산을 압류하고, 압류된 재산의 절반을 고발한 자에게 상금으로 주는 제도 때문에 민심이 흉흉했다고 사관은 기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신하들에게 세종은 절실 강직(切直)하게 말해 달라고 당부했다. 세종에 따르면 나라에 꼭 필요한(切實) 말이라면 왕이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강직(剛直)하게 말해야 하는데, 신료들 사이에 눈치 보는 풍토가 생겨서 “한 사람이 옳다고 하면, 다 옳다고 말하고, 한 사람이 그르다고 말하면 다 따라서 그르다”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었다. ‘조선통보’만 해도 중요한 것은 ‘신뢰를 보여주는 것(示信)’인데, 신료들이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로 일을 추진해놓고, 요즘 반대 여론이 나오니 슬그머니 그만두려는 게 아니냐고 꾸짖었다.

“나라 다스리는 제일 원리는 신뢰를 보여주는 것(爲國之道 莫如示信)”이라는 이 말은 세종의 국가경영 철학을 대표한다(세종실록 7년 4월 14일). 세종은 ‘신뢰 보여주기’, 즉 나라에서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는 믿음을 주기 위해 때론 10여 년 이상 토론과 수정을 거듭하면서 마침내 실행하기도 했다(세제개혁).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북방 경계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백성들은 물론이고 조정 신료 대다수가 반대하는 사민정책도 7년 이상 끈질기게 추진했다. 공신 및 그 후손을 보호하는 것은 또 어떤가? 특혜 논란과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면서도 건국 과정에 기여한 분들의 후손에 대해서는 국가에서 지켜줘야 한다면서 끝까지 그들을 대우했다. 국가의 기강은 말로 약속하는 데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서 자리매김한다는 게 세종의 믿음이었다.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일에 세종 못지않게 고민한 사람이 태종이었다. 그는 건국한 지 10년 된 조선왕조에서 꼭 필요한 것이 ‘통속력(統屬力)’이라고 말했다. 통속력은 기강(紀綱)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기강이 그물의 벼리를 뜻하는 것처럼, 그물의 눈 하나하나를 손대지 않아도 벼리를 잡아당기면 그물이 좍 펼쳐지고 접히는 것처럼 국가의 여러 조직이 한곳으로 통속돼야 한다는 게 태종의 생각이었다. 사병(私兵)을 혁파할 때도 그랬고, 개국 공신 조준과의 대화에서도 태종은 통속력을 강조했다. 명나라 건문제(建文帝)의 경우에서 보듯이 ‘비록 나라에서 관대하고 어진 정책을 펴더라도 기강이 세워져 있지 않으면 망한다(寬仁而亡)’는 말이 그것이다(태종실록 4년 9월 11일). 결과적으로 태종의 목표, 즉 국가의 기강 세우기는 달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왕위에서 물러났을 때 세종은 선왕 태종의 정치를 ‘강거목장(綱擧目張)’, 즉 벼리를 들면 그물눈이 펴지는 정치였다고 평가했다. 흥미롭게도 세종 사후에 그의 신하들 역시 세종이 ‘강거목장의 군주’였다고 말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헌릉의 제향 행사.

태종은 어떻게 국가의 기강 정립이라는 결코 녹록지 않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첫째, 그는 말의 질서를 바로잡았다. 태종은 말이 어지러운 데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에 금이 간다고 봤다. “천병(天兵)과 신병(神兵)을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며 요언(妖言)을 퍼뜨리는 자와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며 뜬말(浮言)로 나랏일을 방해하는 향원(鄕愿)을 태종은 가장 미워했다. 무엇보다도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난언(亂言)”의 주동자는 끝까지 색출해서 반역죄로 처형했다. 둘째, 태종은 그리고 세종 역시, 일의 순서를 바르게 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일의 순서는 말의 길(言路)을 바로잡는 데서 시작된다고 본 그들은 언로를 맑게 하는 데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 근거 없는 말로 일하는 사람을 무고하거나, 권세가에 빌붙어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려는 언관들을 멀리했다. “요즘 언관들이 세도가를 분주히 좇아다니면서 그들의 뜻에 맞춰 일을 꾸며 충량(忠良)한 인재를 무고해 해치는(誣害) 것을 일삼고”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직사(職事)에 이바지해야(供職) 하는” 본연의 임무를 잊지 말라는 태종의 경고가 그것이다.

태종과 세종이 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인사(人事)를 제대로 하는 일이었다. 인사, 즉 사람 쓰는 일을 잘하면 말은 저절로 순조로워지며, 국가의 기강도 따라서 바로 설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인사를 잘하기 위해서 그들이 한 일은 첫째로 강점 경영이었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다 만족스러운 인재는 없다고 보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쓰려 했다. 예를 들어 비록 한문은 알지 못했지만 “일을 처리할 때, 사람을 시켜 문안(文案)을 읽게 해서 한 번 들으면 정확히 처결하곤 했던” 최영지의 경우가 그 예다. 둘째로 폭넓고 다양한 인재풀을 마련하고, 승지와 긴밀한 논의를 거쳐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했다. 재위 중반에 태종은 인재의 종류와 명단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바치게 했다. 그 책을 가지고 인사 때마다 적재를 적소에 배치한 것이 그의 인사 방법이었다. 이때 비서실장 황희의 역할이 컸는데, 황희는 학벌과 문벌을 떠나 다양한 인재를 태종에게 추천했고 그 인재들은 세종시대까지 이어져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 일 년 동안 역사 속 소통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조선왕조실록을 꼼꼼히 읽는 기쁨이 컸다. 왕과 재상의 리더십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성공한 사례보다는 ‘조선왕조 인사 참사’처럼 실패한 경우에서 배울 점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번에 ‘태종실록’을 되읽으면서 가장 눈에 띈 것은 인기영합주의를 극복하려는 국왕의 리더십이었다. 인기영합주의라는 정치 세계의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태종은 ‘정치의 권위’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정치 이외의 것, 즉 제사를 지내 행운을 빌거나 불경을 외는 따위로 나랏일이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말의 질서를 바로잡고, 인재들을 신명 나게 만들어서 일의 순서를 순조롭게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 지도자는 때로 목숨을 내걸면서까지 혼신을 기울이는 것. 바로 그것이 한국형 소통의 정수이며, 태종과 세종이 국가 기강을 바로 세워간 비결이었다. 말의 길과 일의 순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지도자 양성이 속히 이뤄지길 소망한다.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 <시리즈 끝>


■ 용어설명

세종실록에서 손꼽을 만한 다섯 가지 명장면
‘세종실록’은 재위 32년간의 대화와 사건을 상세히 기록한 1만800여 쪽의 대하드라마다. 그중에서 다섯 가지를 꼽는다면 ① 1423년에 ‘고려사’를 고치면서 “역사란 모름지기 후대인들이 평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 실록 편찬의 정신 ② 전임자들의 업적을 계승하되 ‘먼저 백성들의 말을 들은 다음에 그것에 맞춰 국가정책을 세우겠다’고 말한 1418년 세종의 ‘취임사’ ③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한발 앞서 솔선수범하는 것’이라고 말한 1444년의 ‘권농교서’ ④ 1443년에 한글을 만든 취지와 특징을 설명한 ‘훈민정음 서문’ ⑤ 오늘 살핀 기상이변을 하늘의 꾸짖음으로 여기고 직언을 요청하는 1425년의 대화를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