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그립습니다’ 국내 언론사 첫 시도… 오비추어리史 새 지평 열었다

298개의 애틋한 사연… ‘감동과 울림 1년’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한 오비추어리(Obituary) ‘그립습니다’가 2일로 1년을 맞았다. 총 298건의 갖가지 구구절절한 사연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줬으며, 언론사 오비추어리사(史)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 속의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보릿고개와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고단한 삶을 살다 가신 우리 모두의 부모님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신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인공들이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자나 깨나 자식 걱정뿐이다. 맞벌이 자녀를 위해 손자 손녀도 돌봐주시고, 병이 들어 병원과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신 분들이다. 그렇지만 자식들은 부모님 생전에 자식 뒷바라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용서를 빌고 눈물을 흘리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글 한 편 한 편은 그런 부모의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생전 불효한 데 대해 사죄하는 참회록이었다. 자신이 부모가 돼 이제야 뒤늦게 감사를 전하고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한 번만 꿈속에서라도 만나길 간절하게 소망했다.

“아버지, 북녘 고향엔 들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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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추모글 가운데 가장 화제가 됐던 글은 막내딸 채보영 씨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다. ‘인민군으로 내려와 국군이 되신 아버지…북녘 고향엔 들르셨나요’라는 제목으로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아버지에게 보낸 글은 한 편의 영화 같은 이야기로 큰 울림을 주었다.

딸은 글에서 “70년 전 평양에서 대학을 다니시던 아버지, 인민군에게 징집돼 남으로 내려오다 탈출해 산으로 숨어들었고, 외딴 산골 노인의 도움으로 민간인 옷을 얻어 입고 산을 내려오셨다지요. 이후 국군으로 자원입대, 장교로 임관해 전쟁을 치른 후 전역할 때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셨습니다”라며 이념의 골이 지금보다 훨씬 깊던 시절, 장남이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동생들을 이북에 남긴 채 남한의 군인으로서 참으로 기구한 삶을 살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그는 알츠하이머로 아버지의 별세 소식조차 알지 못한 채 요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문득 다시는 아버지의 손을 잡아볼 수도, 아버지를 안아볼 수도, 아니 이제는 뵐 수조차 없고 영원한 이별을 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면 말할 수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왈칵 눈물이 솟고는 한다.”며 “이제 ‘치열한 지상의 전투’를 모두 끝낸 아버지에게 무뚝뚝했던 막내딸이 한 번도 해드리지 못한 말을 이제야 겨우 꺼내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라고 글을 마쳤다.

“집에 가고 싶다던 아버지 잊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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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고 병든 아버지를 그토록 가기 싫어하셨던 요양원에 보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풀어드리지 못한 불효한 아들이 눈물로 사죄하고 참회하며 쓴 글도 눈시울을 적셨다.

“집으로 가고 싶다며 기를 쓰고 스스로 걸어보려 하시던 아버지를 지난주에 뵀는데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시다니…. 아버지는 요양병원을 아주 싫어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예전처럼 걸을 수만 있으면 다시 집으로 모시겠다’고 약속하고 입원시켰는데 2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버리셨습니다. 요양병원이 그렇게도 싫으셨나요. 떠밀다시피 입원시킨 자식들이 그렇게 미우셨나요. 문병을 마치고 돌아설 때, 당신도 함께 집으로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기어이 ‘나를 이런 곳에 내버려두다니…’ 하며 바위 같은 원망을 던져주고는 집이 아닌 먼 곳으로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끝까지 집에서 모시지 못하고 그렇게도 싫어하시던 요양병원에 맡겨버린 것, 정말 잘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떠나신 지 1년이 넘어가지만 아버지의 그 눈빛, 그 표정이 지금도 잊히질 않습니다.”

“생후 3일 만에 이별한 어머니 그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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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는 아들의 글은 그 표현이 절절하다 못해 처절하다.

아들은 “어머니와 생후 3일 만에 이별해 60세가 다 되도록 낳아주신 어머니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 사진도 없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육십 평생이 나에겐 온통 그리움의 시간이었으며 단 한 순간도 가슴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를 잊어본 적이 없다. 책에서나 TV에서나 어머니라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어머니. 그리운 어머니. 어느 양지바른 언덕에 잠들어 계시나요. 불꽃으로 천상에 오르셔서 별이 되셨나요. 긴긴 세월을 서러움에 눈물로 보내고도 남겨진 그리움의 시간이 너무도 긴데 어떻게 견디라고 흔적 하나 남김없이 떠나셨나요. 어머니. 이 밤도 눈물을 삼키며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건 그리움뿐, 너무나 그립습니다”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면서 그는 “보고픈 어머니! 눈물조차 말라서 떠나는 날. 천상으로 당신을 찾아서 떠나리니, 단 한 번만이라도 그대 고운 품으로 곱게 곱게 품어주세요. 안아주세요!”라고 애달파하며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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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중에도 밝은 모습 잃지 않던 딸”

사랑하는 딸을 먼저 보내 가슴에 못을 박은 아버지의 애절한 눈물을 담은 ‘암 투병 중에도 밝은 모습 잃지 않던 딸…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라는 글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

아버지는 “지수야 사랑한다. 아빠가 우리 지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지수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이다. 그리고 5분 후 우리 지수는 마지막 숨을 거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믿음으로 이 큰 슬픔 이겨내며 언젠가 천국에서 우리 딸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선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며 매일 기도 속에 지낸다. 사랑하는 예쁜 우리 딸 지수가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 하늘서 우리 이쁜딸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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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암 환자이면서 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 보낸 젊은 부부의 사연도 가슴을 아프게 했다. ‘보고 싶은 남편, 교회 오빠 이관희’로 시작하는 ‘소연이 엄마’ 글이다.

“자고 일어나면 늘 내 옆에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고 ‘은주야∼’ 하고 다정하게 이름 부르며 꽃을 한 아름 사 들고 퇴근할 것만 같은데… 눈을 뜨면 가슴 시리도록 나 혼자라는 사실이… 퇴근 후 혼자 차를 타고 집에 갈 때마다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나눌 오빠가 없다는 사실이… 가슴 사무치게 아프고 서럽다. 소연이는 이제 제법 커서 글씨도 쓰고 자전거도 타는데, 지난번엔 ‘아빠 보고 싶어. 사랑해’라고 편지를 나 몰래 써놨더라. 오빠도 봤지? 당신 닮아 똑똑한가 봐. 한글도 안 가르쳤는데 혼자 쓰는 거 보면 너무 신기하고 막 자랑하고 싶은데, 오빠가 있었더라면 ‘우리 딸∼’ 하며 엄청 예뻐했을 텐데…. 하늘에서 많이 기특해하고 있는 거지? 우리 소연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좋은 남자랑 결혼도 시키고 자식도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 때까지 오래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기쁜 마음으로 당신 곁으로 갈게.”

“난 당신과 이별 인사 한 적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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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을 함께 살다 떠난 남편을 애틋하고 간절하게 그리는 사연도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부부의 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는 데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 71세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먼저 보내고 7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남편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70대 ‘연희 엄마’는 추모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희 아빠, 당신에게 줄 조화를 사 들고 꽃을 갈아 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몇 번이나 이곳을 다녀가면 당신 곁으로 가게 될까?’ 하는 생각요. 연희 아빠, 떠난 사람은 잊으라는 말이 있지만 난 그 얘기에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에 대한 생각이 나를 아프게 하고, 때로는 나를 주저앉게 한다 해도 내가 살아가는 전 과정이 당신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니까요. 난 당신과 이별 인사를 한 적이 없으니까요.”

“왜 그리 급하게… 안아드리지도 못하고 보낸 시부모님”

친정부모도 아닌 시부모를 이토록 아련하게 그리워하는 사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라도 우리 곁에 좀 더 계실 줄 알았는데 뭐 그리 급하게 아버님 곁으로 가셨는지요. 부모님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수없이 들었건만 그걸 깨닫지 못하고 두 분을 보냈네요. 부족한 며느리인데 마음 아픈 말씀 안 하시고 장사한다고 식사 거르지 말라는 그 말씀이 얼마나 그리운지 몰라요. 문득 떠오르고 눈물이 나지만 잘 견디고 있는 어머님 아들 때문에 울지도 못하네요. 천천히 괜찮아지겠지요. 두 시부모님 바람대로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며 살게요. 두 분처럼 예쁘게 살게요. 아버님, 어머님 좋은 곳 여행도 하시고 맛난 것도 드시며 편안히 잘 지내세요. 너무 그립고, 보고 싶고, 감사합니다.”


올 7월 신설 ‘사랑합니다’‘고맙습니다’ 큰 호응

한편, 문화일보는 지난 7월 22일부터 고인을 추모하는 ‘그립습니다’에 더해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손자와 손녀, 아들과 딸을 소개하는 ‘자랑합니다’, 가족 또는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선생님에게 감춰둔 마음을 표현하는 ‘사랑합니다’, 마음 한편을 짓눌러왔던 짐을 덜 수 있는 ‘미안합니다’, 주변 분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고맙습니다’ 등의 코너도 신설했다. 그동안 모두 12편이 채택돼 이 가운데 2건을 요약해 소개한다.

▲시동생이 형수에게…‘간경화 투병 시동생에게 간 기증해주신 형수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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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부터 장기를 이식받기는 어렵다. 더구나 피붙이도 아닌 남에게 장기를 기증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시동생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떼 준 훈훈한 이야기는 아름답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간경화 진단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간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으나 6남매인 가족 중에는 형님 한 분만 이식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급성심장병으로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결국 둘째 형수님이 간을 기증해주셨고, 8년 동안의 병원비와 요양비는 막냇동생이 다 대주어 지금까지 건강하게 적십자 봉사회장으로 불우한 이웃들을 도우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지체장애인 남편 곁을 41년간 지켜준 당신… 정말 사랑해요’

지체장애인을 선뜻 배우자로 맞아 의사가 되기까지, 암 투병을 했을 때 헌신적으로 내조해 준 부인에게 감사하며 사랑한다는 남편의 스토리도 감동적이다.

“키 160㎝가 안 되고 못생기고 왜소한 나를 남편으로 맞이해 40여 년을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줘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아들 둘과 더불어 진료실을 굳건히 지킬 수 있게 된 것 또한 당신이 내 곁에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내가 오랜 기간 암 투병으로 우울증의 늪에서 자살 시도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내색도 하지 않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요. 남은 시간을 더 소중하게 가꾸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겠습니다. 의과대 재학생 신분에 하지 지체장애가 있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선뜻 나와 결혼해 준 당신. 만일 다음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건장한 청년으로 만나겠습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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