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창수의 Deep Read >아베, 리얼리스트-이데올로그 완급조절로 장기집권… 차기는 短命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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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없는 일본 정치

Top-Down식 ‘官邸주도’ 통치술로 권력 강화… 우파 신념 정책 구현보다 정권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아베 1强’사라진 日, 파벌 영수들 총리 경쟁 재개 예고… 對韓 ‘수동형’ 외교로 한·일 관계 회복 어려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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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강력한 ‘관저(官邸) 주도’와 ‘아베 1강’ 체제를 토대로 경쟁자를 무력화했다. 그는 우파적 신념에 차 있었지만 ‘아베노믹스’의 성공을 위해 정책의 실현을 자제할 줄 아는 타고난 승부사였다. 그는 ‘리얼리스트(realist) 아베’와 ‘이데올로그(ideologue) 아베’ 사이의 완급 조절을 통해 장기집권의 동력을 확보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퇴임 이후 ‘아베 없는 일본’이 아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포스트 아베 체제의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다.

◇관저 주도와 1강 체제

아베가 장기집권을 한 배경에는 ‘관저 주도’와 ‘아베 1강’ 체제를 꼽을 수 있다. ‘관저 주도’는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총리 관저에 권력이 집중된 것을 의미한다. 과거 자민당 정권의 정책 결정 시스템은 가스미가세키(霞が關)의 관료조직과 ‘ 족(族)의원 ’이 조정하는 ‘보텀 업’의 권력 분산형이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정책 결정은 기존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베를 둘러싼 ‘관저 관료’로 불리는 측근 그룹이 정책을 기획 입안하고 이를 각 성(省)에 지시하는 ‘톱 다운’ 정책 결정 방식을 취했다. ‘관저 주도’는 정권 발족 직후 아베노믹스의 ‘ 3개의 화살 ’에서부터 납치 문제를 둘러싼 대북정책, 북방 영토를 둘러싼 일·러 교섭, 그리고 한국의 수출규제 조치 등 외교·안보 정책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아베 1강’ 체제는 일본 정국에서 아베가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아베는 야당으로 임한 2012년 중의원 총선에서 480석 중 294석으로 대승한 것을 시작으로 국정 선거에서 이례적인 4연승을 이뤄냈다. 그 결과 아베는 2015년의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무투표 재선이 가능했다. 이때부터 ‘아베 1강’ 체제는 완성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베 1강’ 확립에는 자민당 내 파벌의 약화도 한몫했다. 아베는 당내 포섭적 인사를 통해 경쟁자를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정국 장악력을 더욱더 확고히 했다. 아베의 가장 명료한 포섭 인사는 간사장 포스트였다. 과거엔 자민당 내 각 파벌의 영수는 모두 총리 후보감이었지만, 아베는 이시바 시게루(石破茂)나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등 경쟁자를 간사장으로 기용해 1인 장악력을 굳혔다.

◇아베 통치의 유산

아베는 매우 막강한 권력을 지녔지만, 자신의 우파적 신념을 마음껏 실현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초기 그는 우파적 신념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아베의 통치 특징 중 하나는 정권이 안정화할 때까지는 우파 신념의 정책 구현보다 지지율 확보를 통한 장기집권에 집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베노믹스를 강조하면서 헌법 개정은 우선순위에서 멀어지는 느낌조차 있었다. 그는 우파적 정책 추진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매달리거나 중의원 해산이라는 카드를 통해 정권을 안정화하려 했다. ‘리얼리스트 아베’와 ‘이데올로그 아베’의 완급 조절이 아베 장기집권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아베 정권의 ‘관저 주도’와 ‘아베 1강’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우선 톱 다운 방식에 따른 강권적인 수법은 최대의 싱크탱크인 가스미가세키의 관료조직을 정책의 실시기관으로 변질시키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로 인해 관료기구의 정책 검증 능력은 약화했고 관료가 출세를 위해 관저의 눈치만 살피는 ‘손타쿠(忖度)’의 폐해가 나타났다. 대표적 예가 2018년 3월 모리토모(森友)학원의 국유지 거래에 대해 재무성 관료가 행한 문서 조작 사건이다. 또 선거의 연승을 통해 확립된 ‘아베 1강’ 체제는 유사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던 자민당의 유연성을 사라지게 했다. 게다가 야당이 축소되면서 정국의 활력 또한 잃어버리게 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민의를 수렴하지 않은 아베의 독단은 종종 국민의 실망과 혼란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의 간판 정책인 아베노믹스는 지지 회복을 위한 정치적 카드로 사용되면서 종국에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관저가 쏟아낸 ‘인재 만들기 혁명’ ‘생산성 혁명’ 등의 많은 정책은 실행이 담보되지 못한 채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들어서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일제 휴교’나 관광 활성화를 위한 ‘고투 트래블(Go to travel)’ 등 많은 대책을 발표했지만, 대다수는 국민과 유리됐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외교에서도 공을 들인 일·러 영토 협상은 애매한 채로 좌초됐고 강경정책으로 일관한 대한(對韓) 정책은 한·일 양국의 대립만을 부추길 뿐이었다.

◇‘포스트 아베’ 체제의 한계

아베 이후 내각은 ‘관저 주도’ 등 아베의 통치유산을 계승하거나 활용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아베처럼 ‘관저 주도’를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지 의문이다. 어느 정권보다도 강력한 ‘관저 주도’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아베에게 충실한 동반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차기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정치적 자원이 한정돼 있다. 아베는 선거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상황에서 선거를 정치적 카드로 운용하기가 쉽지 않다. ‘위기관리 내각’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차기 정권은 아베노믹스의 부정적 유산인 소자(저출산) 고령화, 재정 적자, 그리고 양극화 현상의 심화를 극복해야 할 과제도 갖는다.

1강 체제의 종식과 함께 자민당 내 파벌 영수들의 총리 경쟁이 되살아나면서 1인이 오래 자민당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다. 아베의 독주는 2012년 총재선거에서 당내 파벌 역학에 구애받지 않고 승리한 것에서 시작됐지만, 차기 총리는 아베 진영이라는 파벌의 도움을 받아 총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1년 후 총재선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파벌 역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정치적 운신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베의 부정적 유산이 오히려 차기 총리의 발목을 잡으면서 다음 내각은 단명(短命) 정권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즉 차기 총리는 아베와 같은 정권 장악력을 갖지 못함으로써 일본 정국의 유동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아베 없는 일본’과 한·일 관계

이런 정치 환경 속에서 포스트 아베가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베 없는 일본은 한·일 관계 개선에는 소극적일 수 있다. 특히 아베와 같이 정국을 운영했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가 되면 한국과의 타협은 정치적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아베의 강경 정책이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미 스가는 아베에 대한 충성 맹세를 했다. 결국 아베 없는 일본이 한·일 관계 개선을 우선적 정책 과제로 삼기는 힘들다. 차기 정권은 대신 성공적인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높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일본의 대한 외교는 한국의 대응에 따라 반응하는 ‘수동형 외교’가 되기 쉽다. ‘한국이 먼저 해결책을 갖고 와야 한다’는 일본의 인식이 한·일 관계 개선에 구조적 장애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한·일 관계 역시 아베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를 벗어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현대일본학회 회장


■ 세줄 요약

아베 장기집권의 비밀 : 아베가 최장수 총리를 한 배경으로 ‘관저 주도’와 ‘아베 1강’ 체제가 꼽힘. 아베는 ‘보텀 업’의 권력분산 대신 ‘관저 관료’ 그룹을 활용한 ‘톱 다운’ 중앙집권으로 권력을 키움. 경쟁자 포섭 인사를 통한 파벌 약화도 ‘아베 1강’ 확립에 기여.

아베 통치의 유산 : ‘리얼리스트 아베’와 ‘이데올로그 아베’의 완급 조절은 장기집권의 원동력이었음. 하지만 톱 다운 식의 강권적 통치로 ‘손타쿠(忖度)’의 폐해가 나타나고 자민당의 유연성이 사라졌으며 야당이 축소돼 정국의 활력을 잃어버리게 한 결과를 낳음.

아베 없는 일본 전망 : 아베의 부정적 유산은 차기 총리의 발목을 잡아 단명(短命) 정권을 만들 가능성 큼. 자민당 파벌 영수들의 총리 경쟁이 되살아나면서 정국 유동화 가능성 커질 것. 대한 외교가 ‘수동형’으로 되면서 한·일 관계 개선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


■ 용어 설명

‘족(族)의원’은 일본에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며 각종 이권에 관여하는 정책통 정치인을 말함. ‘건설족의원’ ‘수산족의원’ 등으로 불림. 공식명칭이나 호칭이 아닌 일본 특유의 정치문화를 반영하는 개념.

‘3개의 화살’은 아베가 취임 시 “화살 1개는 쉽게 부러지지만 3개를 한꺼번에 부러뜨리는 것은 어렵다”며 제시한 ‘아베노믹스’의 3요소. 정부 재정지출 확대, 양적 완화, 공격적인 성장전략이 이에 속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