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美 ‘팬데믹 피난민’ 몰려 교외 집값 들썩…‘실직 직격탄’ 도심은 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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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가 초래한 美부동산시장 양극화

재택근무 늘며 교외 선호현상
일부 지역은 거래 112% 폭증
전체 주택가격 상승까지 견인

세입자 18% 7월분 월세 못내
집주인들은 대출금 연체 속출
부동산發 금융위기 우려까지

지난 7월 미국 뉴욕주 이스트오렌지에서 28만5000달러(약 3억3763만 원)에 매물로 나온 방 3개짜리 집은 사흘 만에 97명이 집을 둘러봤고, 24명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결국 원래 호가보다 21% 높은 가격에 팔렸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통해 공개된 롱아일랜드주 밸리스트림의 49만9000달러 상당의 주택도 직접 와 보지도 않은 6명이 구매 의사를 밝혔다. 허드슨밸리에 있는 98만5000달러짜리 집에는 14명이 집을 보러 왔고 이 중 4명이 전액 현금 일시불로 집을 사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신용할부 거래가 기본인 미국에선 이례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가장 심한 미국에서 때아닌 주택 매매 활성화가 이뤄지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 및 상업 부동산 수요는 급감했지만, 바이러스 전염 위험이 높은 도심을 떠나 교외로 나가려는 수요가 크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소득 감소로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세입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고, 동시에 월세를 받지 못해 주택구입 자금 대출을 갚지 못하는 도심 내 집주인들도 아우성치고 있다. 미국 내 부동산 경제의 ‘불균형’이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 총 4000만 명이 집에서 쫓겨나는 등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발(發) 위기 이후 가장 큰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대도심 ‘엑소더스’에 부동산 시장 상승세=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미국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리얼터닷컴의 조사결과 지난 2분기(4∼6월) 미국 100대 대도시 거주자의 주택 매물 검색 51%가 대도시 인근 교외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해당 사이트가 도시 데이터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리얼터닷컴의 분기 시장수요조사 보고서도 구매 수요자 상당수가 도심 변두리의 해변이나 산이 있는 지역의 집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뉴욕 등 북동부 대도시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심했다. 뉴욕의 경우 주변의 나소나 서포크, 또는 몬머스나 뉴저지 해변가 등으로 몰리는 형태다. 온라인 부동산회사 레드핀이 집계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났는데, 현 거주지 밖으로 이사하려는 사람의 비중이 많은 도시 상위 10곳을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워싱턴DC, 시카고, 시애틀, 덴버, 보스턴, 밀워키, 일리노이주 록퍼드 등 대도시가 휩쓸었다.

과거에도 교육 문제 등을 위해 대도시 거주자들이 교외로 나오는 경우는 있었지만, 최근의 외곽지역 부동산 거래 활성화는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수요자들이 감염 위험이 높은 도시보단 여유가 있는 교외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을 피하기 위해 도심 외곽으로 나가겠다는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

또 팬데믹이 진정된 이후에도 재택근무나 원격근무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이면서 도심에 거주할 필요성도 크게 줄었다. 지난 2분기 미국에서 가장 강한 코로나19 피해를 봤던 뉴욕주의 경우 지난 7월 도시 주변 교외 도시의 주택 매매가 전년 대비 44% 증가했다. 특히 뉴욕시 북서부 웨스트체스터의 경우 112%, 역시 인근인 코네티컷주 페어필드카운티의 경우 73%나 주택 매매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뉴욕 도심지인 맨해튼의 주택 거래는 56%나 급감했다. 실제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다 지난 6월 가족과 함께 교외로 이사한 변호사 조 샐즈먼은 뉴욕타임스(NYT)에 “그동안 교외로 이사하는 것을 고민만 했지만 팬데믹 이후 마음을 굳히게 됐다”며 “브루클린에서 살 때 우리 가족은 서로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도시를 떠나려는 시민이 많아 뉴욕시 등은 줄어들 세수 걱정을 하는 처지가 됐다.

교외 지역의 부동산 수요 급증은 미국 전체의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전국 기존 주택 중간가격은 30만4100달러로 전년 대비 8.5%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월과 4월 주택 판매가 급감한 이후 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여 주고 있는 신규 주택 시장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NAR의 로렌스 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택 시장은 이미 회복 국면을 지나 활황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8월 전국 주택건설업 신뢰지수도 1998년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세입자들은 ‘퇴거’, 임대업자들은 ‘빚더미’에 금융위기 우려 급등=가디언, NYT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실직이 이어지면서 미국인 1900만∼2300만 명이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직장을 잃으면서 집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폭증했기 때문으로, 지난 3월부터 8월 사이 미국의 실업률은 11.1%에서 14.4%로 추산된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최고실업률 10.7%를 뛰어넘는 수치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설문조사에서도 세입자의 약 18%가 7월 임대료를 지불하지 못했고, 33%는 8월 임대료를 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 경영교육기관 아스펜연구소 및 매사추세츠공대(MIT), 프린스턴대 연구진은 “올해 내에 집에서 쫓겨나는 사람은 총 1700만 가구, 4000만 명 정도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 전체 세입자(1억80만 명)의 30∼40%가 집에서 쫓겨날 처지인 셈이다. 특히 백인 가정 중 8월 집세를 장담하지 못하는 비중이 전체 세입자의 22%인 반면, 히스패닉·라티노 가정은 49%, 흑인 가정은 42%에 이르는 등 인종 간 격차도 크다. 이들 가정 중 약 43%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어 아이들도 거리로 내몰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집주인들의 사정도 여의치 않다. 미국의 임대인들 대다수는 다주택 소유자로 남는 집을 이용해 임대료를 챙기기보단, 자신의 집을 임대하고 자신 또한 임차인으로 살고 있다. 이 같은 개인 임대인이 1100만 명에 달하며,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 물량이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8%다. 실제로 자기가 살던 집에서 쫓겨나 친지의 사무실에서 살고 있는 티나 브라운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에 “누군가는 내 집에서 집세도 안 내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짐짝이 된 것처럼 사무실 매트리스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일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에 대한 강제퇴거 절차를 4개월간 중단시키겠다고 발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국 주택금융위원회, 모기지은행협회, 전국부동산협회 등은 행정명령이 임대사업자에게 큰 부담을 지울 것이라며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연 소득 9만9000달러 미만에, 자신들이 집세를 내려는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복잡한 조건이 따라붙어 실제 혜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란 주장도 나오고 있다. 각 주 법원이 이미 세입자들에게 퇴거를 명령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 행정명령이 이를 뒤집는 것도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미국 정부에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정부 세수 감소가 예상되면서 의료 서비스 확충 예산을 수급하기 힘든 상황이다. 여기에 임대인들의 파산이 이어지면 은행 등 대출 기관에도 타격이 커지면서 2008년 금융위기 못지않은 부동산발(發) 위기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에서는 집주인 대부분이 집을 담보로 모기지 대출을 받는데, 미국 국가소비자법센터는 “오는 2021년 초까지 전체 모기지 대출자의 약 5%에 이르는 300만 명이 제때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