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文정권 정책 도박과 국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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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경제부 차장

“공부도 때가 있다.”

학업에 뜻이 없는 철부지에게 늘어놓는 어른들의 잔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에는 그것을 할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보편적 진리를 담은 은유이기도 하다. 정책도 다르지 않다. 정책이 시의적이지 않다면 정책의 명분·선의는 곧 실종되고 그 의미도 왜곡되기 마련이다.

최근 의료파업이나 부동산 문제 등 일련의 사태들을 볼 때 정부 정책의 시의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온 나라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파업 중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7월 꺼내놓은 ‘의과대학 정원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추진’ 발표가 시작점이다. 정부·여당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질적·양적 개선을 위한 ‘선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의사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민감한 사안이기에 정부도 정책 추진에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신중을 기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의료인력이 방역에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책 추진 계획을 밝혔다. 결과는 처참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사들의 행동을 집단이기주의라며 비난했다.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의 전사”라고 칭송할 땐 언제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환자를 내팽개친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된 데 의사들은 분노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것은, 왜 정부가 이 시점에 의대 정원 확대 카드를 꺼내 들었냐는 점이다. 정책 시의성 측면에선 최악이다. 알면서도 추진할 땐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후년의 재보궐선거 및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나온다.

여당발 ‘천도(遷都)론’도 앞선 사안과 궤를 같이한다. 서울·수도권은 물론 지방까지 집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뜬금없이 청와대·국회·사법부 등의 세종 이전을 거론하며 행정수도 이전 논의를 재점화했다. 명분은 지방 균형발전이지만, 속내는 부동산 정책 실패에 분노한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그리고 충청권 표심을 얻기 위한 여당의 극단적 선택이란 얘기가 나온다. 부동산 문제로 시끌시끌한 서울에 대해 ‘천박한’이란 표현을 쓴 이해찬 전 당 대표의 발언도 이 같은 세간의 의심이 아주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론은 어떤가? 세종시가 역대 최대 아파트 가격 상승률을 기록한 지표만 남았다. 물론 집값도 계속 오름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정책 추진의 적절성·시의성 논의 이전에 부동산으로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던 여당이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는 행태로 느닷없이 천도론을 꺼내는 바람에 세종시 집값만 천정부지로 올랐다.

정책 추진의 정무적 판단 책임은 정부·여당에 있다.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을 위해 의사 수는 더 늘려야 하고, 서울에 집중된 국가적 역량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 정부·여당이 정책 본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의적절성을 고려한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선거승리라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정책을 도구화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여당은 국민의 목숨과 삶을 담보로 도박을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