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민주 수호 위한 ‘反文 연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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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문재인·트럼프 편 가르기 정치
외양 흡사해도 본질 천양지차
美 의회와 대법원은 정부 견제

‘조국 흑서’ 진보內 견제 유의미
미국 보수 反트럼프 운동 비슷
朴 탄핵 때 같은 결집 이뤄내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살아온 이력이나 성향, 스타일이 전혀 다르지만, 정치 행태 면에서는 놀랄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국익보다 정파적 이해를 앞세우는 것이나 위기 때 통합보다 분열을 부추기는 행태도 닮은꼴이다. 포퓰리즘 정치가로서의 전형성을 공유한 것인데, 문 대통령은 좌파, 트럼프는 우파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미국 공화당도 포퓰리스트 대통령의 친위 조직처럼 움직인다. 학생운동권 출신 친문들이 장악한 민주당은 청와대 2중대를 자처하고, 미 공화당은 전당대회에 트럼프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버젓이 연설자로 나서게 할 정도로 트럼프 사당(私黨)으로 전락했다. 열혈 ‘문빠’ 행태도 극우 백인 트럼프주의자들과 다르지 않다.

문·트럼프 시대 한·미 양국은 “삼권분립이 지켜지지 않으면 대통령 중심제는 전제정에 빠진다”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진단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미국은 상황이 낫다.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지만, 하원은 민주당이 장악해 행정부 견제력은 강력하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며 트럼프를 비판한다. 사법부는 “오바마 판사도, 부시 판사도 없다”며 공평한 법 적용을 견지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지키고 있다. 반면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전제정 진입 초기 단계다. 거대 여당은 청와대 하명을 입법화하는 데 골몰하고 사법부는 ‘문빠 판사 모임’인 양 코드 판결을 쏟아내고 있다.

11·3대선을 2개월가량 남겨둔 요즘, 공화당 주류 인사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고위 관료들은 “이번 대선에선 트럼프를 찍으면 안 된다”며 반트럼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전 국방장관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공화당 출신 선거전략가와 홍보전문가들은 링컨프로젝트란 정치활동위원회를 결성한 뒤 ‘미국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선택’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반트럼프 광고전에 열중하고 있다. 과거엔 상상할 수 없었던 반당 행위가 벌어지는 셈이다. 뒤집어 얘기하면 미국의 헌법을 지키기 위해선 상대편인 바이든 후보를 당선시키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들의 성공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선 자기 진영이라도 비판하고 소속 당이라도 부정해야 한다는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의 애국심은 평가할 만하다. 아직 미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인 것이다.

최근 진중권·서민·김경율·권경애·강양구 5인이 ‘조국 흑서’로도 불리는 대담집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펴냈다. 문 정부를 지지했던 진보 인사들이 ‘우리 편 지지’라는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이런 책을 펴낸 것은 진보의 균열 신호탄이다. 진보 인사들이 집단으로 나선 것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끝장나는가’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문 정부가 민주주의를 허물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입법·행정을 장악하고 사법권마저 가지려는 정권과 싸우기 위해 책을 냈다”는 책 서문을 보면, 책 출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문 투쟁에 나설 기류도 읽힌다. 이들이 “보수 정당의 변신은 관심사가 아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보 진영을 떠난 게 아니다. 다만, 문 정부가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고 제도를 파괴하는 데 대한 진보 진영 내부의 비판이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이 교체돼야 현 정권의 적폐가 청산된다”는 주장을 보면, 이들이 경우에 따라선 민주당 정권 재창출을 막기 위한 ‘반문·반민주당 연대’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도 있을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중도 및 합리적 보수가 진보 진영이 주도한 탄핵 촛불시위에 가세했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는 이를 ‘탄핵 정치 동맹’으로 개념화한 바 있다. 최 교수의 탄핵 연대론을 문 정권의 법치 훼손 저지를 위한 연대에 응용하면 ‘역(逆)탄핵 연대’가 된다. 탄핵 때 ‘친박’ 이외의 모든 그룹이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연대했던 것처럼 민주주의가 전제정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친문’ 이외의 모든 그룹이 연대하는 것이다. 미 공화당 인사들이 ‘링컨프로젝트’ 깃발을 든 것처럼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인사들은 통합과 연대의 정치를 편 김 전 대통령을 기리며 ‘DJ 프로젝트’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다수의 횡포가 판치는 전제정을 막고 자유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