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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11일(金)
“실패의 공기 가득한 현실… 소설까지 그럴 순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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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신창섭 기자

■ 두번째 장편 ‘복자에게’ 출간한 김금희 작가

제주의 실제 산재사건 모티브
불의와 싸우는 단단한 두 여성
잇단 시련에도 생기 잃지않아
“삶 자체가 ‘실패’하진 않기를”


소설가 김금희(41)는 요즘 미담 영상을 일부러 찾아본다. 최근에는 러시아의 한 여성이 불이 난 아파트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창밖으로 내던진 장면을 보고 또 봤다고. 이웃 주민들이 이불을 펴 아이들을 받아냈고, 엄마도 무사히 탈출했다. “불행에 짓눌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우울과 무기력이 ‘기본값’이 된 일상에 지지 않기 위해서.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기지와 용기를 발휘해 한고비를 넘긴 이야기. 그리고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 그런 걸 보며 기운을 내고 있어요.”

‘경애의 마음’ 이후 2년여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다. 김금희 작가의 신간 ‘복자에게’(문학동네)는 이러한 ‘의지’가 가득 담겨 있다. 아름답고 청량하지만, 태생적 서글픔에 서늘한 기운이 종종 내려앉는 섬 제주. 그곳에서 각자의 실패에 걸려 넘어진 ‘우리’가 다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책은 봄과 여름 두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쓰였다. 팬데믹의 시간. 상황이 어두울수록, 이야기는 밝아졌다. 소설에서 반복되는 말, ‘요망지게’(똘똘하다는 뜻의 제주 방언). 그렇게 헤쳐 나가자고 다독이는 김 작가를 지난 9일 서울 마포구의 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현실에 실패의 공기가 가득한데, 소설까지 그럴 순 없잖아요. 우리가 매번 ‘승리’할 수 없고, 미래가 늘 분홍빛인 건 아니지만…. ‘지금’이 ‘실패’는 아니에요. ‘우리 독자들 지켜주고 싶다!’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마구 발동된 시기였어요.”

책에는 참 ‘단단하다’ 싶은 소녀들이 나온다. 부모의 사업 실패로 제주 고모 집에 맡겨진 ‘이영초롱’과, 그와 단짝이 되는 제주 소녀 ‘복자’다. 둘은 서로 버팀목이 돼주다가 어느 날 어른들의 갈등에 휘말려 멀어지고, 영초롱이 서울로 돌아가며 소식이 끊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훗날 판사가 된 영초롱이 제주로 다시 오고, 간호사가 된 복자와 재회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영초롱은 법정에서 욕설을 쏟아낼 정도로 법관의 소임에 대해 깊은 회의감을 느끼고, 복자는 거대한 불합리와 싸우는 중이다. 근무 중에 유산한 복자는 같은 피해를 본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 산업재해 인정을 받아내려 하는데, 이는 제주의 한 의료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산재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과 그로 인해 다치거나 피해를 본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김 작가가 그동안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보여줘 온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제주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친정에 가느니 바다로 간다’는 속담이 있는 곳. 오랜 시간 여성의 노동력으로 지탱된 섬이다.

“여성인 동시에 모체인 존재들이 노동을 할 때, 사회가 그 권리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제대로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제주의 자연과 여성이 주는 에너지를 글 속에 담아보고 싶었고, 실제 산재 사건도 좀 더 많은 이가 관심 가져주길 바랐고요.”

약자들의 ‘쓰라린’ 법정투쟁으로 보이지만(그렇기도 하지만), 이야기는 ‘요망진’ 여자들의 성장기에 가깝다. 불의의 순간에 거리끼지 않고 분노하며 관행과 관습을 뚫고 나가는 영초롱, 판사인 친구가 균형을 잃을까 끝내 자신의 재판에서 “빠져달라”고 하는 심지 굳은 복자, 어린 영초롱에게 제주의 설움을 알려주고 “미안함을 아는 삶”을 일러준 고모, 느슨하지만 흔들림 없이 영초롱과 연대하는 기자 홍유 등 ‘김금희의 사람들’은 실패처럼 보이는 때에도 생기를 잃지 않는다.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는다. “삶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실패는 아프게도 계속되겠지만 그것이 삶 자체의 실패가 되게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작가의 말’처럼.

김 작가는 2018년 서너 달을 제주에서 보냈다. 픽션임을 강조하기 위해 ‘고고리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었지만 실제 생활했던 제주의 한 부속 섬의 정겨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다. “주민들께 민폐가 될까봐 섬 이름을 바꿨는데…, 다들 어떻게 아시고 댓글을 다시더라고요. 그래도 밝힐 수 없어요, ‘창작의 신비’라는 게 있어야죠, 하하.”

책은 발간 전 김 작가가 직접 읽고 녹음한 형태로 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먼저 공개됐다. 8월 초 공개된 첫 회 조회 수가 2만 건을 넘겼고, 책은 예약 판매만으로 이미 3쇄를 찍었다.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믿고 읽는 작가’로 자리 잡았는데, 이번에 오디오를 가장 많이 ‘들은’ 연령대는 40∼60대였다. 김 작가는 “새로운 독자들을 만난 감동적인 경험”이라면서도, 디지털 기술과 목소리라는 아날로그적 감성이 접목된 시도에 “내 선택이 출판계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그래도 책 밖으로, 종이 너머로 향해 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고 말했다. “수용자들의 감각 자체가 바뀌는 시대에, 작가가 머물러 있을 수는 없죠. 가만히 있는 건 재미도 없고, 불가능한 일이 돼버렸어요. 문단 중심의 관행들이 이미 많이 깨어지고 있고, 새로운 창작과 독서 경험에 어떤 경계나 한정은 짓지 않으려고 해요.”

제목에서 감지할 수 있듯 책에는 편지글이 많다. 그리고 책갈피에는 진짜 편지 한 통이 꽂혀 있다. 독자들을 위한 김 작가의 깜짝 선물이다. “제겐 독자들이 전부 ‘복자’예요. 종교에서 말하는 ‘복을 받을 사람’이라는 뜻의 ‘복자(福者)’이기도 하고…. 바닷바람 맞으며 함께 꼿꼿이 서 있는 모든 복자에게 바치는 소설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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