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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M 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11일(金)
기후변화로 작물보존 필수인 시대…한국선 벼·보리 유전자원 멸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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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기 전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으로 작물을 꼽는다. 경기 수원 광교에 위치한 그의 아파트 주변 산책로는 책 집필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운 소중한 공간이다. 신창섭 기자

■ ‘阿기아 해결 한국인 추장’ 유명 새 책 펴낸 한상기 박사

쌀·수박 원산지는 西아프리카
콩 처음으로 난 곳은 한반도
작물엔 인류 역사 기록돼있어

신대륙에 해바라기만 있던 美
1850년대부터 농대 세워 연구
식량대국 이뤄 세계최강 우뚝

국내 작물 하나둘 사라지는데
종자 중요성 몰라도 너무 몰라


아침저녁은 선선하지만, 오후는 그늘을 찾지 않으면 10분도 서 있기 힘들 정도로 햇볕이 따가운 9월 초, 작물의 기원을 밝히는 작업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노교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한상기(87·원예학) 전 조지아대 명예교수는 경기 수원 광교에 위치한 자신의 아파트 단지 주변에서 기자와 만나 산책하며 담소를 나눴다. 그는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병충해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카사바(구황작물 일종)’를 개발해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주민들을 기아 문제에서 구해 아프리카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본보도 독자들에게 소개(2014년 9월 24일 자 35면)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최근 책을 한 권 냈다. 이젠 쉬고 즐길 때인데 또 애써 책을 낸 이유가 궁금했다. 이상 기후로 인해 전 세계에서 자연재해를 겪고, 또 식량난 우려도 커지는 터라 이를 바라보는 그의 생각도 궁금해 수원 광교에 위치한 그의 아파트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신작 ‘작물의 고향’(에피스테메)은 우리 식탁을 지배하고 있는 주요 작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고 어떤 경로로 전파됐는지를 정리한 책이다. 아프리카를 기아 문제에서 구한 업적이 그간 많이 두드러졌지만, 그가 육종학자로서도 세계가 주목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거뒀음을 이 책이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작물은 인류 문화와 역사의 뿌리”라며 “작물에 인류의 모든 역사가 다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물론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농업실태를 경험했는데, 나라마다 식물이 모두 다르고 특징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쌀은 우리의 주식이지만 쌀의 원산지는 우리나라가 아니다. 이 쌀과 같은 작물이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고 처음 정착농업을 시작한 데서 어떤 농작물로 취급됐는지를 밝히는 것은 해당 문화의 근원을 밝히는 일이다.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인류 유산이라고 말하는 것 중에 유명한 게 해골(최초 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골)과 원시벽화 등이 있는데,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아프리카를 원산지로 한 각종 작물이 아프리카의 유산이죠.”

사실 이 같은 작물의 기원을 밝힌 선구자는 러시아의 세계적 육종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다. 한 전 교수 역시 1960년대 미국에서 공부할 당시 그의 책에서 깊은 감명과 영향을 받았다. 바빌로프는 오대주를 다니며 식물을 조사했고, 주요 식물의 발생지를 8개로 지정했다. 하지만 그는 바빌로프의 연구에서 빈틈을 보았다.

“서부 아프리카는 정말 중요한 작물의 발상지입니다. 바빌로프는 책에서 그 부분을 빠뜨렸죠. 바빌로프는 중국을 포함해 한국도 중요한 작물의 발상지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세계인들의 식탁을 지배하는 콩이 처음으로 나온 곳이 바로 한반도입니다.”

콩의 원산지가 우리나라라는 말은 이 농작물을 개량해 식량자원으로 삼았다는 의미고, 곧 문명국을 의미한다는 게 한 전 교수의 주장이다.

“서구인들의 경우 작물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자신들의 고향이 근원지가 아니더라도 이를 자신들의 땅으로 가져가 개량해 식량으로 삼았습니다. 일례로 미국은 세계 유수의 식량 생산국가 중 하나이지만 그곳에서는 곡식 작물이 전혀 나질 않았습니다. 해바라기만 있었죠. 하지만 미국인들은 신대륙에 정착함과 동시에 그곳 기후에 맞는 작물을 도입해 재배했죠. 미국은 1850년대 각 주에 농과대를 세웠습니다. 미시간주를 비롯해 일대 주요 주립대들이 그 농과대를 기반으로 성장했죠.”

▲  한 전 교수가 아프리카에서 활동할 당시 사용한 여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증을 찍을 공간이 모자라 외교부에서 다른 여권과 달리 별도의 페이지를 달아줬을 정도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농업적 발전 덕분에 가능했다는 얘기다.

서부 아프리카의 연구는 그에게 많은 질문을 안겼다. 서부 아프리카는 우리 주식인 쌀의 원산지다. 오래전 원주민들은 나이저강 유역에서 수수, 조, 얌(뿌리채소 일종)을 농사지었다. 수박·참외는 물론 팜나무의 원산지도 그곳이다. 작물 원산지로서 보고(寶庫)와 같은 곳인데 바빌로프의 책에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바빌로프가 구분한 8개 센터(카테고리)에 저는 서부 아프리카를 포함시켜 9개로 만들었어요. 이곳의 작물들이 중동을 거쳐 중국으로 그리고 한국까지 전해진 것이죠.”

바빌로프는 동아시아에서 한국을 종자 원산지 주요 지역으로 봤다. 한국이 거대한 중국 문명 옆에서 고유의 종자를 보유했다는 점을 우수하게 평가한 것이다.

그는 작물의 이동 관계를 규명한 내용도 넣었다. 바빌로프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한국을 작물기원 연구에서 중요한 곳으로 인식했지만 어떻게 작물들이 이동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2년간의 집필 과정에서 그는 한국으로의 작물 이동 경로도 유심히 연구했다. 그는 광교 아파트 방 한곳을 가득 메운 각종 연구메모 노트로도 성에 차지 않아 중국 농업고서까지 동원했다. 집 근처에 사는 제자이자 동료 학자인 구자옥 교수의 도움을 얻어 제민요술(齊民要術·6세기 전반 중국 위진남북조시대에 펴낸 중국 최고 농업기술서)과 범승지서(氾勝之書·중국 전한시대의 농업서) 등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우리 목화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건너왔죠. 그럼 목화에 대한 기록이 제민요술과 같은 고려 이전의 고서에 있을 텐데 목화에 관한 내용은 없어요. 기록 당시 중국에 없었다는 의미죠. 이후에 중동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온 것이에요. 사과·배도 중앙아시아가 원산지인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 우리나라로 유입됐는지 중국 고서를 통해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힘들게 작물의 기원을 밝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사람들이 작물의 중요성을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특히 어느 순간 우리 곁에서 작물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음을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종자도 멸종될 수 있다는 게 한 전 교수의 설명이다. ‘유전자원의 사태(沙汰·무너져내림)’ 현상인데, 이미 국내에서도 주요작물인 벼, 보리, 콩 등의 유전자원이 사라지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최근 이상 기후로 인해 식량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작물을 보존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게 한 전 교수의 지론이다. 작물이 없으면 사람도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책을 통해 알리고 싶었단다.

한 전 교수는 책에 작물의 기원과 함께 한국의 보릿고개 이야기도 넣었다. 식량이 부족해 하루 끼니를 잇는 게 절박하던 시절 작물의 중요성을 지금 세대에도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에서 오래 생활하며 여러 곳을 다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요즘 한국 사람들은 힘든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먹을 게 없어 생산량을 늘리는 게 농학자들의 지상과제인 적도 있었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은 보릿고개 경험은커녕 보릿고개란 말의 뜻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과거를 잊어버릴까 봐 책에도 보릿고개 관련 챕터를 만들었어요. 어렵던 시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청년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보릿고개를 이야기하며 젊은이들이 당시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취업문제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지금의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보면 더욱 딱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연구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본인이 영국행을 포기하고 아프리카로 발길을 돌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젊은 연구자들이 미개척의 영역에 도전하는 패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할 입장은 아니지만 힘들어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렵다고 문제를 피해선 해결할 수가 없죠. 누구나 편한 것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렇게 해선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1971년 아프리카행을 결정했는데, 앞선 1970년에 밀 개량으로 식량난을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 농학자 노먼 볼로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도 볼로그에게 자극을 받아 농학으로 인류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아닌 나이지리아 농학연구소를 선택했죠.”

우리 농촌에 대한 안타까움과 조언도 잊지 않았다.

“요즘 농촌은 옛날과 같지 않죠. 너무 잘삽니다. 세상이 달라진 거죠. 문제는 너무 늙었다는 겁니다. 농업인들이 늙다 보니 농촌이 늙는 겁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많이 갔으면 합니다. 새로운 고부가가치 작물이 나오고, 그에 따른 새로운 농법도 개발되고 있어요. 농업인들이 전문인으로서 고소득을 올릴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젊은이들이 농촌으로 갈 수 있도록 환경을 잘 조성해주면 좋겠어요.”

수원 =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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