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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 남자의 클래식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17일(木)
과도한 장엄함·모호함에 반발… BGM같은 편안한 선율 창작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에릭 사티의 ‘가구 음악’

19세기말 주류 음악 허세 비판
집안 가구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리듬 단순 반복하며 세태 풍자


클래식 음악의 문턱이 높다고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제목을 외우기가 어렵고 귀찮다는 데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독특한 제목 때문에 작품에 눈길이 가게 되고 호기심과 함께 더 뚜렷이 각인되는 경우도 있다. 필자에게는 에릭 사티(사진)의 피아노곡 ‘짐노페디’라는 작품이 그렇다.

‘짐노페디’란 원래 고대 스파르타에서 열렸던 연중행사의 하나로 젊은이들이 합창과 군무로 신을 찬양하는 제전을 뜻한다. 완전한 나체로 말이다.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소년들’이라는 뜻이 있기도 하다. 작곡자 사티는 다른 작품들에서도 남다른 작명 센스를 드러낸다. ‘바싹 마른 태아’ ‘관료적 소나티네’ ‘개를 위한 엉성한 진짜 전주곡’ 등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적인)하고도 풍자적인 표제만 보더라도 ‘역시 프랑스 작곡가’답다는 생각과 함께 그의 반골 기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사티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음악, 당시 주류를 이루던 음악에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작곡가다. 그는 독일의 바그너나 프랑스 드뷔시의 음악들은 필요 이상으로 장엄하고 또 지나치게 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사티는 이러한 과거의 음악과 주류 음악에 대한 반발로 허식을 배제한 음악을 창작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가구 음악’(Musique d’ameublement)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집 한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덩그러니 놓여있는 가구처럼, 듣는 이로 하여금 감상에 몰입하지 않게 하고 현재의 일상을 방해받지 않게 하는 그런 음악이다. 오늘날의 BGM(Back Ground Music·배경음악)이나 집중력을 높여 준다는 백색소음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갖는 셈이다.

사티에게 음악은 편안한 것이어야 했다. 음악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선율과 리듬은 특별한 강조나 전개 없이 제자리걸음 하듯 반복된다. 사티가 20세기 미니멀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이유다. 그의 작품들은 예술가들의 팽창된 자의식과 분별없이 추앙하며 따르는 청중들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곡으로 피아노곡 ‘짜증(vexation)’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단 18개의 음들로 이루어진 단선율의 주제와 거기에 단 두 개의 변주가 더해진 매우 단순한 작품이다. 그리고 단 한 쪽짜리의 자필 악보에 사티는 아래와 같은 지시사항을 적어 넣었다. ‘매우 진지한 부동의 자세로 840번 반복해서 연주하시오’. 뻔한 18개의 음을 약 13시간 40분 동안 반복해서 연주하라는 이야기다. ‘왜 하필 840번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예술적 의미가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지만 그 어떤 의미나 답은 없다. 미련하게 840번의 반복을 감내해가며 예술가가 숨겨놓았을지도 모를 숭고한 메시지 따위를 찾아봐야 헛수고일 뿐이라는 풍자가 전부다.

사티는 주류 예술가들인 장 콕토, 피카소, 드뷔시와 교류하며 예술적 영감을 나눴지만 하루하루의 생계를 위해 카바레와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미니멀리스트인 사티가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유품은 단출했다. 12벌의 벨벳 슈트와 100개의 우산, 84개의 손수건이 전부였다.


오늘의 추천곡 : ‘짐노페디’

누구나 멜로디를 들으면 ‘아∼ ×××침대’ 하며 떠올릴 익숙한 음악일 것이다. 광고에 삽입돼 편안하게 흐르던 음악이 바로 ‘짐노페디’의 세 작품 중 1번 곡이다. 짐노페디는 ‘보바리 부인’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살람보’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에릭 사티의 초기 작품으로 그의 나이 22세이던 1888년 파리에서 출판됐다. 총 3개의 작품으로 이뤄졌으며 1번 ‘느리고 비통한(Lent et douloureux)’, 2번 ‘느리고 슬픈(Lent et triste)’, 3번 ‘느리고 무거운(Lent et grave)’이란 각각의 주제를 갖고 있는데 그 중 1번이 가장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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