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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성우 교수의 맛의 말, 말의 맛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18일(金)
죽도 밥도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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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과 밥은 다르다. 둘 다 쌀에 물을 붓고 끓여낸 것이지만 물의 양을 달리 잡은 까닭에 다 된 모습도 다르다. 밥은 동사로 ‘짓다’를 쓰고 죽은 ‘쑤다’를 쓰는 것도 다르다. 쌀의 상태에 따라 최적의 물을 잡은 후 불을 조절해 만들어내니 ‘짓다’라는 동사를 따로 쓰는 것도 이유가 있어 보인다. 훨씬 더 많은 물을 붓고 쌀알이 물러질 때까지 오래도록 ‘쑨 죽’과 ‘지은 밥’은 다르다.

‘밥’은 고유어인데 ‘죽’은 한자 ‘粥’이라고 쓰는 것도 다르다. 용법이나 소리로 보면 틀림없이 고유어일 듯한데 한자에서 유래한 단어다. 죽보다 물을 훨씬 더 많이 잡고 푹 끓인 뒤 체에 걸러낸 ‘미음’도 한자어다. 한자로는 ‘米飮’이라 쓰는데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쌀이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몸이 약하거나 치아가 없는 상황에서도 한국인의 ‘밥심’을 이어주는 음식이지만 그 이름에서는 밥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밥에 대한 존중과 집착은 죽에 대한 홀대로 이어진다. 미음은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 먹는 것이니 우리말 표현에 따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죽은 관용구와 속담의 단골 메뉴이다. 일을 망치면 ‘죽을 쑨다’를 쓰고, 변덕을 부리면 ‘죽 끓듯 한다’를 쓴다.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은 죽 쒀서 개 주는 격이고, 쉬운 일은 식은 죽 먹는 격이다. 어리석고 게으른 이는 ‘밥 빌어먹다가 죽을 쑤어 먹을 놈’이라는 욕을 먹기도 한다.

‘밥이 되든 죽이 되든’에서는 밥과 죽이 같이 쓰이는데 일단은 시도해 보려는 기개가 보인다. 그러다가 ‘죽도 밥도 아니다’가 되면 후회나 책망이 따르기도 한다. 밥심을 내기 위해서는 밥이 되든 죽이 되든 쌀에 물을 부어 끓여내야 한다. 그러나 아예 불도 못 때게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거나 다 된 죽에 코를 빠뜨리는 이들도 있다. 모두가 배불리 먹을 밥을 맛나게 지으려는 노력 대신 자기 욕심만 챙기려 하면 죽도 밥도 아닌 상태를 피할 길이 없다.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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