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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그립습니다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22일(火)
해군 복무중 손목시계 멈췄던 날…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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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점암(1932∼2007)

돌이켜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다. 해군에서 복무 중이던 그날. 치열한 전장에서 정확한 시간은 필수였다. 분 단위로 적의 동향을 보고해야 하는 직무에 시계를 쳐다보게 되는 것은 습관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했다. 너무도 평안한 바다 앞에 순식간 상황이 변했다. 파고는 낮고 잔잔한 바다 위 분주하던 어선도, 목적지를 향해 가던 상선도, 순시하던 적함도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다.

레이더가 포착한 물표가 속력을 잃고 순식간 침로를 변경하기 시작했다. 거세지는 바람을 알았던 것일까. 감시의 시선에서 손목을 감싸고 있던 전자시계가 깜빡거렸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변해버린 배들의 목적지와 조금 전 백령도로 향한 여객선에서 “갑자기 바람이 거세지며 파도가 높아진다”는 상선검색망 소식을 듣는다. 건전지가 수명을 다했을까. 깜빡이던 손목시계는 명을 다하고 실시간 보고를 해야 했던 전시기 앞에서 정보를 파악하기 바빴던 순간들. 두세 개의 전화기를 붙잡고 상황 보고를 하는 중에 상황실로 내려온 감시대장님의 말을 듣는다.

내가 복무 중인 섬은 적함의 이상 기동으로 비상사태였다. 당직자 교대를 앞두고 벌어진 큰일에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어서 빨리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내려오는 여객선 편으로 출도를 하라는 명령이다. 적함은 피항지로 침로를 정하고 바다의 상황은 파악됐지만 지금 내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다.

여객선 도착 10분 전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갑작스러운 일기예보의 변화와 출도를 마친 나는 조금 전 외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말을 듣는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나오기 힘든 곳이니 급하게 연락을 했다며,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드리라는 당부를 듣는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삐뚤어진 행커치프와 선착장으로 가는 지프차 안에서 멈춰버린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12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른다. 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택시를 타고 늦은 밤 도착한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순간 따뜻한 목소리가 이명처럼 들린다. “재성이 왔냐∼”며, 보고 싶은 외할아버지 목소리가 들린다. 계속해서 들린다. 외할아버지 댁에 가까워질수록 열려있는 대문 앞에서 오매불망 기다리시던 외할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이면 사촌들과 함께 외할아버지 댁에서 방학을 보내는 동안 나는 외할아버지와 유년시절을 함께했다. 모기에게 물리면 간지럽지 말라며 민간요법으로 보듬어주시던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박하사탕을 물고 마당을 뛰어놀던 풍경. 그 모습을 바라보시는 외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수많은 말보다 정겹던 그 말. “재성이 왔냐∼”라는 특유의 음성에 화장터로 들어가시기 전 외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멈춰버린 시간 속 외할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의 연장선. 벌써 아버지가 돼 아들, 딸 두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한 채 쏜살같이 흘러버린 시간 앞에서.

손자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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