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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리뷰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25일(金)
‘돈의 정치 정복’ 막아내야 자본주의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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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홀로 선 자본주의 |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정승욱 옮김 | 세종

이 땅의 유일한 사회경제 체제인 자본주의
미국식 성과주의·중국식 국가자본주의로 나뉘어 발전
‘금수저’들, 교육·권력에 막대한 투자 … 장기 지배 노려
자본주의 미래, ‘미국식’의 진화에 달려 있어


‘홀로 선 자본주의’의 원제는 ‘Capitalism, Alone’이다. 차라리 ‘자본주의만 남았다’로 옮기고 싶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회경제 체제”다. 이 말은 “합법적 자유 임금의 노동력, 대부분 개인 소유 자본에 의해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 체제, 분권화된 조정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가 됐다는 뜻이다. 동시에 “돈벌이는 존경받아야 하고, 사람들 삶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이며,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기라는 관념을 인류 전체가 수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평등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지난 20년 동안 축적된 수많은 계량적, 실증적 연구 자료를 통해 ‘자본주의만 남은’ 현실이, 특히 서구 사회에서 “스스로 영속하는 상류층을 창출”하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해 온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불평등 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에 따라 자본주의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등을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는 두 체제로 나뉘어 있다. 지난 200년 동안 서구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 온 미국식 자유성과주의적 자본주의와 지난 40년 동안 맹위를 떨친 국가주도의 정치가 경제 발전을 이끄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다.

미국식 자본주의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과 교환 과정을 시장의 자유에 맡기고(자본주의), 직업이 능력에 따라 열려 있도록 보장해 성과를 분배하며(성과주의적), 상속세를 부과해 부의 대물림을 보정하고 교육받을 기회를 모두에게 제공해 사회적 이동성을 촉진한다(자유주의적).

그런데 신자유주의 이후 이런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은 점차 심화돼 왔다. 금융자본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상층 10%의 계급은 투자 등 자본 수익을 통해 소득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고학력에 좋은 직업을 가짐으로써 높은 노동 소득까지 얻는다. 자본과 노동을 통해 동시에 돈을 벌어들이는 이러한 자본가 계급을 저자는 ‘호모 플루티아(Homo Plouti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는 ‘금수저’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호모 플루티아들은 자녀 교육에 막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아이들 능력을 차별화하는 한편, 정치적 영향력에도 투자를 지속해 상속의 규칙을 스스로 정하고, 입시 문턱을 유리하게 조정하는 등 장기 지배를 보장받으려 한다. 또 비슷한 신분에 비슷한 교육을 받은 이들끼리 결합하는 선택적 결혼이 증가하면서 부와 능력의 대물림도 강화하는 한편, 개방성도 갖추고 있다. 자기 능력으로 부를 일구거나 고학력자가 된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여 최고의 인재들을 흡수하는 효과를 누린다.

문제는 이들의 윤리가 ‘합법’의 틀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위법만 아니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 법은 이들이 돈과 지위를 이용해 정치를 지배함으로써 만든 것이 아닌가. 합법이라 할지라도 이미 일반적인 윤리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는 돈이 정치를 정복해 지배를 보장하는 것으로, 사실상 국가자본주의와 다름없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는 서구와 비교해 저개발 상태로, 봉건적 생산관계가 만연하고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의 자본주의 이행 과정에서 생겨났다. 부르주아 대신 국가가 이행의 중심에 선 것이다. 과거의 한국이나 대만, 현재의 중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에티오피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높은 경제 성장을 목표에 두고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뛰어난 관료 집단의 존재와 이들을 재량껏 움직이게 만드는 구속력 있는 법치의 부재다. 관료들이 법의 틀 안에서 신분을 보장받고 돈을 위해 합리적으로 움직이되, 필요하면 언제든 임의로 법을 적용하는 체제인 셈이다.

약점은 관료 및 주변 세력의 고질적 부패다. 관료의 재량권이 청렴성을 약화하는 상수로 존재하니 어쩔 수 없다. 이들 국가에서 얼마만큼 정실을 인정하면서도 반부패전쟁이 반복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가자본주의는 경제 성장이 충분치 않거나, 불공정과 불평등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곧바로 내구성이 떨어지면서 위기에 빠진다. 따라서 국가자본주의가 유지되려면 정치와 경제를 분리할 수 있는, 비교적 부패하지 않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가 존재하느냐가 핵심역량이 된다. 하지만 이런 국가를 찾아보기는 너무나 어렵다.

세계화는 불평등과 부패를 확산시켜 두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한다. 20∼30년 전보다 오늘날 세계는 훨씬 부패해 있으며,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저자는 해외 조세 회피처로 돈을 빼돌렸다가 세금 혜택 등을 노리고 국내에 재투자하는 수법, 후진국의 부패가 선진국 금융 회사의 이익이 되는 구조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자본주의의 미래는 전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진화에 달려 있다. 부패 및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산층에 대한 세제 혜택, 상속세 등을 통한 부의 집중 완화,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대규모 투자를 통한 기회의 평등 확보, 시민권의 적절한 조정을 통한 이주민 문제 해결, 정치 자금의 전면 공공화를 통한 금권정치의 배제 등을 행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이러면 자본 소득의 집중이 줄어들고 소득 불평등은 낮아지며 세대 간 소득 이동성이 확산되면서 ‘호모 플루티아’의 영속화가 억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개혁에 실패한다면 돈이 정치를 정복하면서 엘리트 연합 체제가 세대를 넘어 지속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전 인류가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한마디로 불평등 해결에 실패한 미국은 중국이 된다는 말이다.

현재의 우리 역시 같은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국과 중국, 성장과 복지, 부의 대물림과 사회 정의, 기본 소득과 복지 확충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는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480쪽, 2만1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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