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방역보다 여론 살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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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사회부 차장

중세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페스트는 인류에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했다. 그중 페스트 환자와 가족이 있는 집을 폐쇄했는데 이로 인해 사망률을 15% 낮췄고, 이후 공중위생제도가 정립됐다. 이탈리아에선 환자를 마을 밖 한센병 환자 수용소에 격리했고, 출입자와 물건을 일정 기간 격리하는 검역 개념을 도입했다. 라구사(현재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선 페스트가 유행한 지역에서 온 사람을 ‘40일(이탈리아어 quarantina)’간 격리했는데, 이게 오늘날 ‘검역(quarantine)’이라는 영어의 어원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인류에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하고 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첨단의료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거리두기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수학공식과 같다. 거리두기에 강력한 처벌을 시행한 대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적확진자가 509명에 불과한 대만은 사실상 코로나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코로나19를 계절 인플루엔자와 같은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은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말은 앞으로도 지금까지보다 더 긴 기간 동안 국민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은 지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거리두기를 통해 코로나19를 확실하게 통제 관리한다면, 예전처럼은 아니어도 일상적인 대면 생활이 가능할 수 있다. 대만에서 증명됐다.

여기에 정부의 일관된 지침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는 한목소리가 아닌 듯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지만, 방역보다 국민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데 더 익숙한 여권과 정부는 눈앞의 경제 지표가 더 중요해 보인다.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경고에도 정부는 지난 14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2단계로 완화했고, 많은 사람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확산세가 꺾이고 있다’는 섣부른 발언도 정부의 단골 멘트가 됐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지역경제 활성화가 시급한 지자체들은 주차장을 무료 개방하고 관광 시설을 재개하면서 관광객에게 손짓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의 비율이 25% 안팎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감염자 4명 중 1명이 어디에서 걸렸는지 모른다는 사실은 코로나에서 안전한 곳이 없다는 의미다. 언제 어디서든 환자가 발생할 수 있고, 집단감염으로 이어지면 제3, 제4의 대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 일상생활에 제한이 가해지는 상황이 반복될수록 국민의 우울감과 상실감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청와대가 미국 주간지 ‘타임 100인’에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선정됐다면서 ‘K-방역’을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선수들은 다 안다. ‘K-방역’보다 대만의 ‘타이완 모델’이 더 성공적이라는 사실을. 타임조차도 코로나 종식을 이끈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을 리더 부분 3번째에 올려, 19번째로 소개한 정 청장보다 더 비중을 뒀다.

대만은 여론 눈치를 보는 우리나라와 달리 철저하게 전문가 중심의 일관된 지침을 내렸다. 여기에 국민, 정치, 사법 모두가 일치해서 정부를 지원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바란다면 일생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일관된 방역정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