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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주철환의 음악동네 게재 일자 : 2020년 09월 28일(月)
좌충우돌해도 솔직한…‘화개장터’를 닮은 종합예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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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 ‘화개장터’

직업박람회는 장터를 방불케 한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조영남 ‘화개장터’ 중). 부스에 앉으면 일단 사람을 끌어모아야 한다. “환자 매일 만나고 싶으면 의사, 죄인 자주 만나고 싶으면 변호사, 연예인 많이 만나고 싶으면 예능PD 지원하세요.” 이 말만 듣고 시험 쳐서 방송사 들어온 후배들은 지금 만족하며 사는지 궁금하다. 그때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아픈 사람 낫게 해주는 의사, 억울한 사람 한 풀어주는 변호사, 고단한 사람 즐겁게 해주는 방송인이 된다면 진짜 보람 있겠죠. 누군가 불행해졌을 때 행복으로 전환시켜주는 일을 찾아보세요.”

음악동네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공짜는 없지만 가짜도 있고 괴짜도 있다. 무대와 스튜디오만 있는 게 아니다. 병원도 있고 법원도 있다. 최근 5년간 공연장이 아니라 법정을 들락거린 사람. 노래보다 구설, 쇼보다 뉴스에 깜짝 등장한 사람. 이쯤 하면 짐작이 갈 것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영탁이 부른 노래 제목에 어울리는 가수 조영남. 그가 돌아왔다.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 없이 이곳에서 저곳으로’(조영남 ‘물레방아인생’ 중).

고난은 있을지언정 지루함은 없는 인생처럼 보인다. ‘지루한 사람과 어울리지 마라.’ 이건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듀이 왓슨의 자서전 제목이다. 그는 1951년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 구조를 발견했다. 조영남은 음악적 재능은 기본이고 문학, 미술 등 예술 전반에 걸쳐 다채로운 DNA를 지녔다. 한마디로 ‘종합예술인’이다. 종횡무진이다보니 팬도 많고 적도 많다. 박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다. 마치 ‘고운 정 미운 정 주고받는/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같다.

▲  주철환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한때 나는 그를 6다(多)로 규정한 적이 있다. 다재다능, 다정다감하면서도 한편으로 다사다난한 인물로 묘사한 거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좌충우돌은 있는데 우왕좌왕은 없다. 욕을 먹는다고 소신을 바꾸진 않는다. 세상 어느 누가 이런 솔직한 고백을 하겠는가. ‘세상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많고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그중엔 내가 최고지/ 나보다 잘난 사람 또 있을까/ 나보다 멋진 사람 또 있을까’(조영남 ‘겸손은 힘들어’ 중).

스스로 ‘화개장터’ 빼고는 딱히 히트곡이 없는 가수라고 칭하는데, 그건 유머의 영역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불 꺼진 창’ ‘사랑 없인 못 살아요’ ‘삽다리’(‘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 ‘도시여 안녕’ 같은 오리지널부터 데뷔곡 ‘딜라일라’ ‘제비’ ‘내 고향 충청도’ 등 히트한 번안가요가 즐비하다. 성악을 바탕에 둔 크로스오버 창법으로 다른 가수의 원곡을 재해석해 노래의 생명력을 확장시켜주기도 했다. ‘때론 슬픔에 잠겨서/ 한없이 울었던 그대 그리고 나/ 텅 빈 마음을 달래려 고개를 숙이던/ 그대 그리고 나’(소리새 ‘그대 그리고 나’ 중).

양희은의 노래 가운데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는데 그 말은 다름 아닌 ‘그대’다. PD에게나 연예인에게나 가장 소중한 ‘그대’는 오로지 관객이고 시청자다.

1990년대 예능 프로그램 ‘일밤’(MBC)의 ‘몰래카메라’를 연출할 때 두 가지를 고민했다. 어떻게 시청자를 즐겁게 해줄까, 어떻게 스타를 기분 안 나쁘게 망가뜨릴까. 스타를 골탕 먹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기인 ‘조영남 편’에선 가짜 마라톤대회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나는 어느 지점에서 그가 눈치를 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연기하듯 끝까지 완주했다. 악동 이경규가 나타나 ‘지금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선언했을 때 비로소 가슴을 치며 난감해했다. 나는 그것이 그의 영리한 계산이라고 가늠했다. 힘들고 지치고, 게다가 속고 있다는 걸 알고서도 ‘그대’들의 즐거움을 위해 끝까지 달린 것이다. ‘세상은 바람불고 고달파라’(조영남 ‘모란동백’ 중). 그의 인생 마라톤도 물레방아처럼 지속돼 모란동백처럼 피길 바란다.

프로듀서·작가·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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