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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07일(水)
“적십자 재난재해병원 만들어 외상센터서 이국종 일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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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취임한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의 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가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재난과 코로나19 등으로 지친 이웃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는 나눔 문화를 확산시킬 것”이라며 ‘천사 DNA 캠페인’과 ‘마즐따(마음이 즐겁고 따뜻해지는) 증후군’ 등을 설명하고 있다. 김선규 기자

■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

한달 1004원 ‘천사 캠페인’등
새로운 나눔 아이디어 개발
‘年 300억 모금’ 고지서 대체

늘 말도 안 되는 상상했더니
조혈모세포병원 설립 이뤄져
성덕 바우만 등 치료 길 열려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 고려
의료·식량 인도적지원도 가능
작은 구멍 뚫어야 벽 허물어져


[인터뷰 = 이제교 사회부장]

1955년생으로 올해 65세인 신희영 서울대 의대 교수, 그는 오전에도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회장보다는 총재라는 명칭이 더 귀에 익은 대한적십자사를 이끄는 자리를 맡은 신 교수, 아니 신 회장의 하루는 변함이 없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주어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래서인지 인터뷰에서 “한국에 천사 DNA를 심겠다”며 봉사와 자선에 대한 소신, 적십자사의 미래 비전을 막힘없이 얘기했다. ‘한반도 건강공동체’ 개념이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북한 어린이의 죽음을 목도한 후회 섞인 경험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들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막연한 민족주의로 포장된 공허한 인기몰이식 정치인들의 흰소리와는 다르게 다가왔다. ‘인사 만사(人事 萬事)’라는데, 이번 청와대 인선엔 기대감조차 들었다. 지난 8월 중순 제30대 대한적십자사 회장에 취임한 그를 추석 연휴 전인 9월 16일 서울 중구 소파로 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올해 적십자사 창립 115주년입니다. 어떤 변신을 모색하시나요.

“홍수와 화재, 건물 붕괴 같은 재난 지원의 경우 적십자사는 가장 행동이 빠르다. 먼저 밥차 가고 보호소 짓고 담요 깔고, 6시간에서 12시간 정도면 지원체계가 꾸려진다. 조직력이 탄탄하다. 그런데 그다음이 고민이다. 보통 자원봉사자가 빠지고, 군인도 가버리면 재난 피해자는 혼자 일주일부터 몇 달까지는 직접 감당해야 한다. 적십자사는 앞으로 토털지원 서비스 개념으로 나갈 것이다. 피해자들에게 ‘어린 자녀 지원은 어린이재단에 연락하시고, 집수리는 해비타트에 전화하시고…’라는 식으로 옆에서 돌보면서 지켜주는 서비스도 필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자원봉사하는 분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적십자사는 직접 지원과 함께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과 도와주려는 봉사자를 연결하는 역할도 해나갈 것이다.”

―구체적으로 계획과 포부를 말씀해 주시면….

“사실 적십자 활동을 제대로 몰라 홈페이지를 탐독했다. 봤더니 혈액 사업, 병원사업, 봉사활동, 모금 등 나에게 익숙한 일들이었다. 사실 1990년에 처음에는 백혈병 어린이후원회로 시작한 백혈병 어린이재단을 만들어 모금활동을 했다. ‘1통화 1000원’ 모금을 비롯한 레고 탑 쌓기 같은 모금방법을 처음 개발했다. 적십자사 회장으로서 ‘앞으로 재미있는 모금활동을 펼치겠다’고 생각했다. 적십자의 인도주의 정신은 평화 정신과 맞닿아 있다. 재난안전, 혈액 사업, 병원사업의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운영을 통해 앞으로 발생할 현재 같은 위기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적십자사를 만들 것이다. 적십자의 기본은 인류의 고통경감과 생명보호를 위한 미션 수행이다. 국민이 더 신나게 적십자사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

―적십자사 모금 고지서가 세금 고지서처럼 가정에 날아들기도 하는데요.

“맞는 말이다. 적십자회비 모금 고지서를 통해 연간 300억 원가량을 모금한다. 가구주 대상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는 2023년까지 폐지할 예정이고, 기존 적십자 회원에게는 그대로 발송할 계획이다. 새로운 모금 아이디어 실행에 들어갔다. 10년 전 서울대 의대 학생들과 진행했던 방식이다. 당시 학생들이 소아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1개월에 1회씩 캔커피 빼먹는 돈을 모아 1000원씩 후원하기로 했는데, 천사 바이러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감염되면 ‘마즐따’ 증후군이 발병한다. 마음이 즐겁고 따뜻해지는 증상이 생긴다. 학생들이 교직원과 교수를 감염시키고, 강호동 씨 같은 연예인들이 참여해 1개월에 500만 원씩 돈이 모였다. 이 돈을 지금도 계속 기증하고 있다. 취임 직후 9월 11일부터 11월 9일까지 60일 동안을 천사 바이러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으로 설정해 모금캠페인에 들어갔다. 직원들이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너무 살벌하다고 지적해 ‘천사 DNA 캠페인’으로 명칭을 바꿨다. 개인이 1개월에 1004원을 기부해 장기적인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지친 이웃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하며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적십자의 기본은 나눔 정신의 전파고, 큰돈이 아닌 적은 돈으로 시작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사회적 협력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항상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한다. 안된다고 말하는 것을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를 머릿속에 그린다. 백혈병 어린이재단의 지난해 모금액이 57억 원이다. 지금은 소아암 진단을 받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를 포기하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지원금 일부로 라오스에 가서 2014년부터 치료를 시작해 300여 명을 치료했다. 자원이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연결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적십자사 노조위원장에게도 부탁했다. 민주노총에 가서 조합원 월급에서 1000원 미만인 우수리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요청하자고 했다. 민주노총이 세상을 바꾸려면 그런 일부터 나서야 한다.”

▲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적십자사 서울사무소에서 최근의 공공의대 설립 문제로 촉발된 의정갈등과 관련해 “적십자병원과 중증외상센터, 공공의대를 네트워크로 묶는다면 의료공백도 해소하고 서민 의료지원은 물론 재난재해 구호와 비상긴급의료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김선규 기자

“적십자 재난재해병원 만들어 외상센터서 이국종 일하게 하자”

전국에 적십자병원 더 지어
‘재난재해 네트워크’ 구축
국토 중심에 외상센터 세우면
전국 모든환자 커버 가능해져

재난발생시 병상 확보하고
공공의대 실습공간 활용도

환자들 완벽 치료는 내 자존심
예전에 돌봤던 백혈병 환자
수능만점받고 찾아왔을때 뿌듯



―조혈모세포병원 설립 활동도 하셨는데요.

“사실 1994년에 적십자사 회의실에서 골수은행 설립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회의실에 10명 남짓이 모였는데, 나는 제일 어린 의사였다. 김동집 가톨릭대 의대 교수님이 제일 나이가 많으셨다. 적십자 조혈모세포은행 프로젝트의 출범이었다. 그때 나는 홍보부위원장을 맡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줬다. 당시 조직적합성항원(HLA) 검사비용이 14만 원이었는데 매년 몇천 명씩 검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했다. 민간과 정부의 합작사업이었는데, 김영삼 정부의 지원이 없었다면 조혈모세포병원 설립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일화를 좀 소개해 주십시오.

“시작하고 2년째 됐을 때 미국으로 입양돼 공군사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성덕 바우만 군이 백혈병에 걸려 골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는 400만 명 정도의 골수 기증자가 있었고, 동양인도 3만∼4만 명에 달했지만 맞지 않았다. 당시 우리 골수은행 기증자가 7000명 남짓이었다. 정말 행운으로 6700번 조혈모에서 일치했다. 치료에 성공해 나중에 생모도 찾았다. 지금 성덕 바우만 군은 마이애미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가끔 연락도 오는데 자신을 돌봤던 미국인 간호사와 결혼했다고 한다. 조혈모세포은행 기증자가 현재 37만 명에 달한다. 지금은 필요한 골수를 거의 90% 확률로 찾을 수 있다.”

―적십자사 이산가족 상봉사업이 떠오릅니다. 최근 진전이 있습니까?

“일단 우리는 이산가족들이 금강산에서 만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화상 상봉이라도 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주민등록이 모두 전산화돼 있고, 누가 어디 사는지 파악이 되지만 북한은 이산가족들이 대놓고 남한에 친지가 있다고 밝히는 경우가 드물다. 아무래도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는가 보다. 이산가족 상봉이 안 된다면 평양 방문이라도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여건이 쉽지 않다. 강지영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장은 1956년생으로 연배도 비슷하고 가톨릭 쪽으로 외부를 통한 연결이 되고 있으니 노력해 나갈 생각이다. 정치적 문제는 언젠간 해결된다고 본다. 그때 허둥지둥하기보다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이 한국 지원을 거절하고 있어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길이 멀어도 가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각종 제안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들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북한 핵 문제와 무관하게 가족 상봉은 가능하다. 또 유엔 대북제재를 위반하지 않고 의료시설이나 식량 지원을 하는 방안도 있다. 남북한을 가로막은 커다란 벽이 무너지려면 먼저 작은 구멍부터 뚫어야 하는 게 아닌가.”

―잠깐 쉬어가는 측면에서, 적십자사 수장을 과거엔 총재라고 불렀는데 회장으로 바뀌었네요.

“그게 비화가 있는데, 한국사회에 총재라는 직함을 쓰는 자리가 네 자리 있었다. 여당과 야당 대표, 적십자사 수장 그리고 한국은행 총재였다. 그런데 적십자사와 한은의 경우 총재 직함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후 적십자사는 회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후 정치권에서도 당 대표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이제 총재는 한은만 쓰고 있다. 물론 전해지는 한담 차원 얘기다.”

―지역 적십자병원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나요.

“누적된 적자 때문이다. 병원 수익은 의료보험 수가와 직결된다. 현재 의료보험 수가는 원가의 80% 수준이다. 즉 100원의 비용이 발생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80원을 보전해주는 구조다. 과거에는 나머지 20%를 특진비와 비급여 진료로 충당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부분을 정부가 싹 없애버렸다. 20%를 충당하려면 과잉진료, 즉 ‘나쁜 짓’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적십자병원 의사들은 과잉진료를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적자를 면할 길이 없다. 내가 의대 학생일 때만 해도 서울적십자병원은 의술이 뛰어난 최고의 병원 중 하나였다. 지금은 실력 있는 과장급 인사들이 떠나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는 줄어들고 수익이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결국 전국적으로 23개였던 적십자병원이 지금은 7개로 줄었다.”

―적십자병원은 서민을 위한 병원이 아닙니까.

“적십자사가 출범한 1905년에 대한적십자병원도 창립됐다. ‘대한국 적십자사 공포취지서’에 따르면 고종은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시 적십자병원 건축비로 2만 환을 내 서민구호병원 사업에 나섰다. 지금 적십자 전체 예산 중 정부의 지원액은 4% 정도다. 회장을 맡은 후 7개 적십자병원을 관리하는 직원이 적십자사에 4명밖에 안 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적십자병원이 서민을 위한 병원이 되려면 운영비용의 50%는 정부가, 20∼30%는 지자체가 내고 나머지는 병원 매출로 충당해야 한다. 적자에서 벗어나려면 병상이 800개 이상이어야 하지만 적십자 병원은 100∼200개 수준이다. 수익이 날 수가 없는 구조다. 근본적이고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적십자병원은 코로나 방역 최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전국을 20개로 나눈 권역에 공공병원을 짓는다고 하는데, 적십자병원을 지어야 한다. 적십자사가 중앙관리주체가 되는 공공병원 네트워크 체제로 가야 한다.”

―정부와 의사협회가 공공의대 설립을 놓고 충돌하고 있습니다.

“공공의대 설립은 바람직하지만 우수한 의사를 배출하려면 실습공간이 필요하다. 과거 서남대 의대가 문을 닫은 것도 실습병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십자병원을 네트워킹 체제로 묶는 재난재해병원을 짓고 실습병원으로 제공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공공의대생이 졸업하면 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종합 플랜을 세워줘야 한다. 일본에는 도쿄(東京)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위치에 재난재해병원이 있다. 450병상 규모인데 재난재해가 닥치면 900병상으로 늘어난다. 병원에는 5일분의 식량, 기름, 약을 따로 비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로 연간 1만 명 정도가 사망한다. 그중 30%인 3000명은 살릴 수 있는데 죽는다. 고속도로에서 길이 막혀 앰뷸런스가 골든타임 안에 도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국종 같은 훌륭한 의사가 아주대 중증외상센터에 있는데,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적십자병원을 묶는 재난재해병원 네트워크 체제를 꾸리고 이국종 의사를 일하게 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구체적으로 적십자 중앙 재난재해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들어설 지역으로 경기 오산시를 생각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부에 재난재해 중심병원을 짓고 헬기장까지 갖춘다면 전국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중증외상 환자를 살려낼 수 있다.”

―공공의대와 적십자병원, 중증외상센터 문제의 원샷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 그 제안을 하려고 플랜을 세우는 중이다. 오산에 적십자 중앙 재난재해병원을 세우고, 바로 옆에 재난재해에 대한 교육기관도 짓고, 또 재난재해 연구·개발(R&D) 센터가 들어서는 국민을 위한 재난재해 연구단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소명감 있는 제2, 제3의 이국종 같은 의사가 나올 것이다.”

―의사가 본업인데, 직업적 소명은 무엇인가요.

“전공이 소아암인 만큼 내게 치료받은 아이들은 전 세계에서 제일 좋은 치료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싶다. 치료가 끝나면 환자가 원래 생활로 돌아가야 의사로서 자부심도 생긴다. 백혈병 어린이재단 활동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지원하는 부분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의사로서 환자를 완벽하게 치료하고 싶은 나의 자존심 측면도 있다. 2년 전 내가 치료한 백혈병 환자가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을 받았다고 찾아왔다. 서울대 의대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정말 보람이 컸다. 내가 맡은 환자들이, 관리한 사람들이 최고가 됐으면 한다는 욕심을 갖고 있다.”

정리 = 최재규 기자 jqnote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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