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신희영>“北 어린이, 흔한 질병에도 목숨 잃어… 이념 떠나 먼저 살려야하지 않겠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반도 건강공동체’ 소신

신희영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취임사에서 제안했던 ‘한반도 건강공동체’ 개념은 북한 의료봉사 과정에서 느꼈던 경험에서 나왔다.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대북 퍼주기 지원’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환자 치료가 어떤 이념이나 정치적 행위보다 먼저라는 그의 소신과도 무관하지 않다.

북한을 8번 방문했던 신 회장은 “치료해주지 못했던 한 북한 어린이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2008년 10월 서울대 의대 소아과 의료진 30여 명과 북한에서 1개월여 동안 진료봉사를 했다. 병원을 찾아온 어린이를 진찰했는데 보통 5세 이전 아이들이 한 번쯤 걸릴 수 있는 로타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판명됐다. 설사를 유발하는 급성 장염을 일으키는 로타바이러스 감염 시 한국 어린이의 경우 보통 하루 정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낫는다. 신 회장은 일단 수액을 놓아주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며 집으로 아이를 돌려보냈다. 하지만 아이는 다음 날 아침 병원에 오지 않았다. 수소문해보니 밤사이 설사를 다섯 번 정도 하더니 숨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크게 자책했다. 설사 몇 번에 죽을 정도로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 결핍 상태는 좋지 않았다. 그는 “영양 상태를 끌어올리고 면역력도 길러 북한 어린이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지난 8월 21일 대한적십자사 회장 취임식에서 “현실에 맞게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계획을 세워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남과 북의 건강과 안전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현재 북한에는 13만 명 정도가 결핵에 걸려 있는데, 갑자기 휴전선이 뚫려 이들이 한국으로 대거 내려온다면 보건의료 측면에서 대혼란이 빚어진다”고 설명했다. 한반도 통일 현실화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북한의 질병 통제를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핵무장에 전념하는 북한 정부가 할 일을 한국에서 대신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건강공동체라는 개념이 없으면 통일이라는 개념이 없다”며 “북한 주민들도 남북 경제 격차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안내원이 없으면 환자 보호자가 ‘남쪽이 잘사니까 많이 도와줘요’라고 조용하게 말한다”고 전했다.

신 회장은 북한에서 2004년에 어깨동무 어린이병원 건립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모자 치료가 전문인 평양 강남군 장교리 인민병원, 2008년에는 평양의대에 220병상 규모의 소아병동 등을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 당시 문을 연 병원들은 지금도 어린이를 위한 진료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제3국을 통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