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말이야”… 아가들이 전하는 ‘탄생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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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났어 | 핫토리 사치에 글·그림, 이세진 옮김 | 책읽는곰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는 걸까? 코와 귀, 간과 심장에 대해서는 편안히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아기의 탄생과 관련된 기관의 이름은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여기거나 어린이와 과학적인 자료를 두고 몸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린이의 몸조차 대상화하는 불법적인 콘텐츠가 넘쳐나는 현실에서 이런 대응은 착오적이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어린이도 몸의 원리를 진지하게 이해하고,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한 알맞은 책임감을 배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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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생명의 탄생을 문학적으로 상상해보고 싶은 욕구는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의 눈앞에 나타나기 전에 이 사랑스러운 아기들이 과연 어디에 존재하고 있었을까 한 번쯤 그려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기적처럼 파릇파릇한 새 생명은 세상의 예술가들에게 큰 동력이다. 해묵은 편견으로 과학적 이해를 허물어버리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독창적인 작업이다.

핫토리 사치에의 그림책 ‘나는 태어났어’는 담백한 그림과 서술로 돼 있지만 태어난 아기를 만날 때의 벅찬 느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낸 세련된 탄생 설화다.

주인공은 엄마에게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들려준다. 백 개도 넘는 별이었던 아이들은 살고 싶은 곳이 다 달랐고, 어떤 아이는 깜짝 놀랄 만큼 추운 나라를, 다른 아이는 작은 섬을 선택한다. 열 달 동안 이어지는 긴 여행에서 아이들은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지만 “길을 잃을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겁이 없었고, 항상 함께였다. 그리고 저 끝에서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안개를 헤치고 나아갈 힘이 됐다.

아기들이 이 세계에 착륙하는 순간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그려졌는지 단숨에 읽어나가게 된다. 최근에 아기를 맞이했거나 곧 맞이할 가족들에게 선물한다면 환호를 들을 것이다. “내가 아기였을 때는 말이야”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기 시작하는 어린이들에게도 멋진 프리퀄이 돼줄 작품이다. 40쪽, 1만3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