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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0문10답 게재 일자 : 2020년 10월 13일(火)
‘나라곳간 안전망’을 쉽게 뜯어 고칠수있는 시행령으로 추진… 시행은 5년 뒤로 기준은 적자 어려운 지표로…‘무늬만 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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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티이미지뱅크

■ 여야 모두 반대하는 ‘한국형 재정준칙’

시행시기 2025년 못박아
“재정 빠르게 악화되는데
다음 정부에 책임 떠넘겨”

GDP 대비 국가채무 60%
‘재정 마지노선’ 40% 폐기
관리재정수지 기준대신에
통합재정수지 적자 3%로
“재정 건전성 담보 어려워”

與 “재정운용 발목” 난색
野 “있으나 마나 한 준칙”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한국형 재정준칙’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정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의 위험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부랴부랴 도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재정 상황을 판단할 기준과 방식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아 ‘면피용’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시행시기도 2025년으로 다음 정부에 재정 관리 책임을 넘긴 면죄부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할 때 사실상 이에 제동을 거는 재정준칙 도입은 시기상 적절하지 않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국회에서 본격적인 입법 논의가 펼쳐지기도 전에 여야의 화약고가 된 한국형 재정준칙의 내용과 함께 논란이 벌어지는 배경과 이유, 그리고 향후 전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본다.

1. 재정준칙이란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재정준칙(Fiscal Rules)이란 “예산 총량에 대한 수치적 제한(numerical limits)을 통해 재정 정책을 장기적으로 제약하는 것(a long-lasting constraint)”을 말한다. 재정준칙의 3가지 구성 요소로 헌법이나 법률 등을 통한 법적 토대, 국가채무·재정수지·지출총액 등 총량적 재정 목표,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가해지는 제재 조치가 거론된다. 이런 것이 있어야 제대로 기능하는 재정준칙이라는 뜻이다. 재정준칙을 만드는 이유는 재정준칙이 없으면 위정자(爲政者)들이 나라 곳간을 마구 허물어 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표(票)’를 의식하므로 어느 정도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정치인이 가장 쉽게 대중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나라 곳간을 헐어서 국민에게 나눠주는 일이다.

2. 국가채무 비율 등 한국 재정 건전성은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안 기준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3.9%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36.0%에서 3년 만에 8%포인트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역대 정부가 고수했던 재정 건전성 마지노선인 40%를 이미 훌쩍 넘긴 상태다. 지난해 38.0%였던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차에 걸친 추경을 편성하며 40%를 넘긴 후, 2021년 47.1%, 2022년 51.2%, 2023년 55.0%, 2024년 58.6%로 해마다 오를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는 현 상태로면 2045년에 99.6%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형 재정준칙의 또 다른 기준인 통합재정수지 역시 2020년 본예산 기준 30조5000억 원 적자를 기록한 이후 4차 추경까지 84조 원에 이르고 있다. 이에 GDP 대비 통합재정수지도 올해 -4.4%, 2021년 -3.6%, 2022년 -4.0%, 2023년 -4.0%, 2024년 -3.9%로 -4% 내외라는 저조한 수치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3. 한국형 재정준칙 주요 내용

정부가 지난 5일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의 핵심은 2025년부터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그동안 ‘재정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국가채무 비율 40%는 공식 폐기됐다. 더 나아가 두 가지 수치를 동시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 기재부는 “하나의 지표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를 하회하면 기준에 충족하도록 상호보완적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대규모 재해, 글로벌 경제위기 등엔 한도 적용을 면제하고 경기 둔화 등으로 재정 조치가 불가피한 경우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4%로 더 완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4. 시행령에 적용한 해외 사례 있나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여러 의원이 제출한 재정건전화법과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해외 사례에 대한 분석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연구용역보고서인 ‘세대 간 회계 및 재정준칙 법제화에 관한 연구’(홍근석·김성찬, 2017년 12월)를 참조했다. 국내에서 재정준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게 사례 조사를 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재정준칙을 갖고 있는 159개국 중 재정준칙의 근거를 법률로 규정한 나라가 103개국, 헌법에 규정한 나라가 14개국으로 나타났다. 법률과 헌법에 재정준칙을 규정한 나라가 전체의 73.6%(117개국)에 달한다는 뜻이다. 그 이외의 국가는 정치적 협약(23개국), 정당 간 합의(19개국) 등에 재정준칙의 세부 내용을 담았다. 해외에서 재정준칙을 이번 기재부 방안처럼 시행령에 규정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시행령에 재정준칙을 규정하면 정권(政權)의 부침에 따라 재정준칙이 쉽게 바뀔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5. 통합재정수지를 적용한 이유는

한국형 재정준칙은 이제까지 정부가 재정 관리의 척도로 삼은 ‘관리재정수지’가 아닌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지표이고, 통합재정수지는 여기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를 합친 것이다. 현재 대규모 흑자를 내고 있는 국민연금 탓에 통합재정수지는 관리재정수지보다 수치가 1∼2%포인트가량 좋게 나온다. 실제로 올해 관리재정수지 비율은 -6.1%지만,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4.4%다.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2019년 등으로 극히 드물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국제사회와의 비교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관리재정수지는 우리 내부적으로 만든 수치”라며 “국제사회에서는 이 개념을 모른다”고 말했다.

▲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6. 2025년부터 적용하는 이유는

정부는 재정준칙 시행시기를 2025 회계연도로 못 박았다. 즉 2025년 예산을 짜는 2024년 하반기부터 재정준칙을 적용하겠다는 의미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재정 건전성 악화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5년 후인 2025년에 시행하겠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역대 최대 확장 재정을 펼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2022년에 종료되는 만큼, 현 정부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 부총리는 5일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발표하면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4차례 추경을 펼치는 등 현재 적극적 재정 조치를 감안해 유예기간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 정부도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담보할 수 있는 단계적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홍 부총리도 이를 의식해 6일 기자간담회에서 “2022년, 2023년에도 해당 준칙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7. 사실상 재정준칙의 포기 선언인가

이번 기재부의 방안은 법률이나 헌법이 아니라 시행령에 재정준칙을 규정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재정 건전성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기재부는 재정준칙을 현 정부가 끝난 뒤인 2025년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재정준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약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기재부가 내놓은 계산식을 살펴보면 더욱 커진다.

기재부의 재정 한도 계산식은 ‘(국가채무 비율/60%)×(통합재정수지 비율/-3%)’이 1보다 작거나 같으면 된다. 이 계산식에 따르면 통합재정수지 비율이 0.0001%라도 흑자가 나면 국가채무 비율은 아무리 크게 높아져도 재정준칙을 준수하는 것이 된다.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가 적자가 난 것은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13조650억 원 적자),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인 2009년(17조6200억 원 적자), 코로나19 위기를 겪은 2019년(11조9970억 원 적자)이다. 경제위기 상황이 아닌 경우에도 적자가 난 해는 2015년밖에 없는데, 적자 규모가 1650억 원에 불과하다. 경제계에서는 “사정이 이런데도 통합재정수지를 이용해 재정준칙 계산식을 만든 것은 사실상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나온다.

8. 재정준칙의 예외는 어떤 경우

정부는 이처럼 느슨한 기준점을 설정했을 뿐 아니라 각종 예외 규정을 둬 경우에 따라 재정준칙을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도록 설계했다.

전쟁·대규모 재해·글로벌 경제위기 등 심각한 경제위기에 해당할 경우에는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의 상황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재정준칙 면제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잠재 GDP, 고용·생산지표 등을 토대로 경기 둔화라고 판단할 경우엔 통합재정수지 기준을 1%포인트 낮춘 -4%까지 완화해 적용한다. 기재부는 “단순한 국가 재난이나 경제위기가 아니고 심각한 수준의 국가 재난이나 경제위기 시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전문가 협의회를 통해 세부적인 안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같은 예외 상황에 대한 판단 주체 및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아직 마련되지 못한 터라 광범위하게 재정준칙 적용을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는 상존하고 있다.

9. 해외 재정준칙 기준은

해외에서 재정준칙은 국가채무 준칙과 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 준칙을 가장 많이 쓴다. 국가채무 준칙의 경우 GDP 대비 비율 60%를 상한선으로 규정한 나라가 독일,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등 40개국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그 뒤를 이어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가봉 등 13개국은 국가채무 비율 70%를 상한선으로 정하고 있다. 에콰도르, 코소보, 몽골 등 5개국은 국가채무 비율 40%가 상한선이다. 이 밖에 85%(스리랑카), 55%(말레이시아), 50%(헝가리), 45%(세르비아), 30%(나미비아)를 상한선으로 규정한 국가가 각각 1개국이었다.

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재정준칙으로 쓰는 나라의 경우 영국,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 38개국이 3%를 상한선으로 설정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3.5%(몰디브·파나마), 2%(코소보·몽골), 1%(페루·스페인·스웨덴), 0.5%(그리스·헝가리·라트비아)도 있다.

10. 국회 문턱 넘을 수 있을까

현 상황에서는 기재부가 마련한 재정준칙 방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을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는 ‘맹탕’ ‘있으나 마나 한 재정준칙’이라는 혹독한 평가가 나오고 있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코로나19 위기 확산에 따른 경제위기 상황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준칙을 만들 경우 확장 재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재정 운용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강한 경계감을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과 여당은 비판의 관점은 정반대이지만, 모두 기재부의 재정준칙 방안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기재부가 재정준칙 방안의 근거를 마련하려고 오는 11월쯤 국회에 제출할 예정인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재정준칙의 세부 사항을 담은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안도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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