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의 클래식>재즈·클래식 융합시킨 ‘누에보 탱고’…세계적 예술 장르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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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로 피아졸라

아르헨티나 클래식작곡가 출신
춤 보조수단 불과한 탱고 혁신
독립된 음악 장르로 격상시켜
짙은 가을 정취 느끼기에 제격

황사에 미세먼지로 매캐했던 봄과 마를 날이 없던 여름이 지나가니 가을의 하늘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반갑다. 덕분에 수시로 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좋은 날씨 덕에 하루하루 물들어가는 숲의 색깔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뺨에 스치는 바람의 숨결에도 민감해진다. 하지만 때가 되면 노란 옷을 벗어 던지고 차갑게 떠날 것을 알기에 더 애틋하다. 이맘때쯤이면 음악이 더욱 고파진다. 애수 짙은 음악 한 곡은 산책과 독서만큼이나 가을을 만끽하며 사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10월의 마지막 밤을’ 같은 마땅한 가을 음악을 찾기가 어렵다. 작곡가가 구체적인 제목을 붙여놓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호가들조차 비발디의 ‘사계’ 말고는 마땅히 계절과 관련된 곡을 떠올리지 못한다. 오늘 소개하는 진한 가을 음악은 ‘네 다리 사이의 예술’로 묘사되는 탱고에 클래식의 외투를 덧입혀 탄생한 ‘누에보 탱고’다.

탱고는 1880년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지역인 ‘보카’에서 탄생했다. 부둣가에서 찌든 삶을 살던 하층민들과 이민자들은 열정적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고된 삶의 슬픔을 달랬다.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춤사위는 상체는 고요하지만 하체는 전쟁을 치르듯이 바삐 움직여 이를 두고 ‘네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는 수식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춤에는 치명적인 유혹을 더 해 줄 탱고의 악기 ‘반도네온’이 뒤따른다. 탱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반도네온은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주했던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 유입된 악기로 아코디언과 흡사하게 생겼다. 아코디언이 멜로디를 건반으로 조작한다면 반도네온은 버튼 방식으로 연주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왼손 33개, 오른손 38개, 총 71개의 버튼으로 142개의 음을 연주할 수 있는데 조작 방법이 무척 까다로워 ‘악마의 악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나에게 있어 탱고는 발보다 귀를 위한 것이다.” 반도네온 연주자이자 작곡가였던 아르헨티나 출신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말이다. 피아졸라는 춤을 보조해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탱고 음악을 순수 감상 음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클래식 작곡가였던 피아졸라는 탱고에 과감히 재즈와 클래식의 요소들을 융합시켰고 ‘새로운 탱고’라는 의미의 누에보 탱고(Nuevo Tango)를 탄생시켰다. 반주를 돕던 오케스트라는 그 규모가 한층 더 커져 마침내 춤이 없는 독립된 음악 장르로서의 탱고 연주회가 열리게 됐다. 이는 침체기의 탱고에 혁신을 불러일으켰고 민속춤과 민속 음악에 머물렀던 탱고를 세계 속의 보편적인 예술 장르로 격상시켰다.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음악가와 무용가들에 의해 재현됐고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토대가 됐음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탱고 음악은 피아졸라의 작품이거나 그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정열적인 음악인 탱고와 함께 짙은 가을의 정취에 흠뻑 취해보시길.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부에노스아이레스 사계, 가을

피아졸라가 계절별로 다른 색을 띠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구의 풍경을 보고 작곡한 작품으로 1964년 ‘항구의 여름’을 시작으로 겨울(1969), 가을(1970), 봄(1970)의 순서로 작곡됐다.

20세기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래머가 피아졸라의 탱고 오페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마리아’를 듣던 중 우연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을 듣게 되고 크게 매료된다. 이후 피아졸라의 다른 작품들에 각각의 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모두 찾아내 편곡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