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 박원순의 힐링북>형형색색 화려한 가을꽃…힘겨운 삶에 주는 식물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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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가드너에게 가을은 또 다른 봄이다. 봄처럼 할 일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봄만큼이나 정원이 아름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봄부터 지금까지 풍파를 견딘 온갖 잎들이 형형색색 고운 빛깔로 옷을 갈아입기 때문에 그 화려함은 배가된다.

모두 힘든 시기. 위로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가을 정원을 선보이기 위해 지난 몇 주 동안 수목원에 부지런히 꽃을 심었다. 백일홍과 맨드라미, 샐비어와 해바라기는 기본이고, 특별한 품종의 코스모스, 하늘의 별들처럼 정원을 빛낼 아스터 종류, 가을에 빠질 수 없는 강렬한 색깔의 가든멈 국화들, 겨울까지도 정원을 지켜줄 꿩의비름과 그라스들도 가을 꽃길에 자리를 잡았다. 가을 정원을 준비하며 다가오는 겨울과 내년 봄꽃들도 동시에 준비해야 하니, 가드너들은 일 중독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니 즐거운 비명 같은 소리다.

주변의 자연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귀한 책이 있다. 이유미 박사의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지오북)다. 18년 전 이야기지만 마치 오늘 아침 숲에 다녀온 것처럼 생생하다. 2002년과 2003년 2년간의 기록이니 각 계절을 두 번씩 만난다.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가드너가 아닌 출판 편집자로 일하고 있었다. 책을 만들며 식물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해 틈나는 대로 숲과 정원을 찾아다니던 때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공교롭게도 이 책의 저자와 수목원에서 함께 일하고 있으니 사람의 인연은 참 알 수가 없다. 그때도 지금처럼 안팎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이라크전이 발발했고, 대구 지하철 참사가 있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병했다. 역대급 태풍 ‘매미’와 집중호우도 있었다. 가구당 빚과 신용불량자 수가 최고치를 기록하며 너도나도 힘들다고 아우성치던 때였다.

“하늘은 청명하고 가을 기운은 맑기만 한 요즘,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참 어려운 모양입니다.” 저자는 힘든 세상 독자들을 위로하는 말을 아끼지 않으며, 이럴 때일수록 식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가령 석산은 심한 장마로 흙더미가 무너질 때 서로 뿌리를 수축시켜 흙을 뭉치고 둑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는다며 우리도 이렇게 마음을 합하면 우리 삶을 지켜낼 수 있다고 말한다. 가을에 만나는 낭만적인 꽃 이야기도 가득하다. 한 송이가 사실은 수많은 설상화(혀 모양 꽃), 통상화(통 모양 꽃)로 이뤄진 국화과 꽃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혹시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수십 송이 장미를 선사할 만큼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다면 코스모스나 구절초 같은 국화과 꽃 한 송이를 건네십시오. 이는 실제로 수십 송이의 꽃들이며, 화려한 겉멋에 치우친 꽃들보다 작은 꽃들이 모여 조화와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것처럼 서로 나누고 합하며 살아가자는 마음도 함께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식물학자인 저자의 세심한 관찰과 정확한 정보를 접하다 보면 그 계절 그 숲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요즘 같은 때, 숲과 정원을 산책하며 부모님과 자녀,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는 식물 이야기는 얼마나 귀한가. 자연을 소중히 하면 자연스레 우리 삶, 주변의 모든 사람도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