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루소·니체·사르트르 전부 말과 행동이 달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철학자의 거짓말 | 프랑수아 누델만 지음, 문경자 옮김 | 낮은산

‘인격적 성장’ 강조한 루소
다섯 자녀 보육원에 버려

페미니즘 주창한 보부아르
‘그냥 여자로 봐달라’ 호소

“전세계 영향 끼친 사상가들
자신의 철학과 반대되는 삶”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철학 공부는 늘 소크라테스에서 멈췄지만, 귀동냥으로 들었던 여러 철학자의 말들만큼은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전쟁영웅과 위대한 정치가들이 세상을 바꿨다지만, 그들의 세계관은 철학자들의 생각에서 나왔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전쟁영웅과 정치가뿐일까. 얼마 전 한 가수는 4대 성인 중 한 명을 ‘테스형’이라고 부르며 세상 이치를 알려달라고 노래했다. 철학자들은 오랜 세월, 신뢰의 대상이 돼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뉴욕대 철학과 교수인 프랑수아 누델만은 ‘철학자의 거짓말’에서 철학자들이 철학적으로 살지 못한 이유를 탐구한다. 모든 철학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철학자들의 삶이 스스로 주장한 사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조목조목 언급한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장삼이사(張三李四)는 철학자의 말이라면 모두 옳다고 여길 때가 많다. 우리 중 대개는 철학자들이 “불굴의 정신, 지혜, 자기 절제와 같은 태도로 실존에 관한 견해를 구현”한다고 믿는다. 이런 대중의 바람이 철학자의 이중성을 옹호하는 방편이 될 수는 없지만, ‘철학자의 거짓말’은 철학자도 그저 한 인간으로 볼 수 있는 새 관점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저자의 도마 위에 오른 첫 상대는 장자크 루소다. ‘고백록’만 보면 그는 “보편적 진리”보다 “실천적 진실”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루소는 “독자를 앞에 두고 아무런 허식 없이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자신의 다양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스스로의 정직함과 솔직함을 공표”했다. 그는 “표절, 배신, 절도, 음란, 불경” 등 세간의 비방을 받을 만한 일을 줄줄이 책에 썼다. 실제로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을 통해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했고, ‘사회계약론’은 인민주권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하지만 루소는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무려 다섯 아이를 공공 보육원에 버렸다. 교육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에밀’에서 한 인간의 인격적 성장을 거듭 강조한 루소였다. 하지만 ‘고백록’에는 이에 대한 변변한 언급조차 없다. 오히려 “거짓말쟁이들이 자신을 비방한다고 상상함으로써 스스로의 거짓말을 자신에게 감”추는 다소 해괴한 방법을 택했다. 루소가 ‘에밀’을 쓴 것은 50대에 막 들어서였다. 즉 아이들을 버린 후라는 말이다. 저자는 “죄의식과 자기 자신을 위한 변론 사이의 긴장”이 반영된 ‘에밀’이 결국 “명쾌하고도 부적절한 책”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루소는 스스로 모순되는 말을 하고 자신의 삶, 자신의 말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이론을 세운 것이다.”

삶과 반대되는 이론을 전개한 사람으로 장폴 사르트르도 뒤지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자기기만 내지는 거짓말에 반대하는 조예 깊은 철학자”였다. 하지만 그의 책 곳곳에는 거짓말이 등장한다. 한 책에서는 신앙과의 단절을 “갑작스러운 결심”이라고 썼지만, 일기에서는 “무신론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더뎠는지” 털어놓았다. 현실 참여도 그렇다. “전투병 같은 신체 조건”도 “탄탄한 조직망”도 없었던 그는 레지스탕스를 돕기 위해 책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저자에 따르면 사르트르는 “현재의 과잉 행동이 과거의 비행동을 만회할 것이며, 과거의 도덕적·정치적 행보를 되감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끝없는 성찰 혹은 자기비판을 통해 사르트르는 행동하지 못한 자신을 변론하는, 일종의 거짓말을 한 셈이다.

다중인격의 철학자도 있었다. “페미니즘의 중요 기본서”로 꼽히는 ‘제2의 성’을 쓴 시몬 드 보부아르는 책을 쓰는 동안 미국 작가 넬슨 앨그렌과 연인 관계였다. 사르트르와 평생 연인이었던 그는 “각자의 삶에 있어 투명성을 강력히 요구”하는 관계로, 실질적인 자유를 누렸다. 또한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되는 것”이라는 말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했던 그였다. 하지만 이 시기 보부아르는 자신을 “지식인이 아닌 한 사람의 여성으로 봐 주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 강연에서는 “내 사랑, 밤낮으로 나는 당신의 사랑에 에워싸여 있다고 느끼며, 그 사랑은 나를 모든 악에서 지켜 줍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철학자의 거짓말’에는 루소와 사르트르, 보부아르 외에도 니체, 몽테뉴, 키르케고르, 프로이트, 레비나스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스스로 주장한 사상과는 확연히 다른 거짓말 같은 삶이 읽는 이를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철학적 신념과 다른 그들의 삶이 그들의 철학에 방해물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철학자들의 담론은 모순된 행동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가 아니라, ‘바로 거기서부터’ 구성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이중적인 삶 때문에 철학은 더 발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속았다는 탄식이 나올 만도 하지만, 철학자들이 스스로의 신념대로 살지 못했다고, 아니 책 제목처럼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타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들도 욕망을 품은 사람이고, 더더욱 우리 또한 종종 (아니 늘) 내로남불하는 사람들 아니던가. 344쪽, 1만9000원.

장동석 출판평론가